이동장 안에서 새로운 가족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는 동안 주위의 시선이 불편한 작가의 마음을 그림이 대변하고 있다. 이새벽 작가 제공

그림 한 장에 울컥했다. 슬픈 내용도 아니었다. 우리 출판사에서 책을 낸 작가가 올 여름 길고양이 새끼 다섯 마리의 임시보호를 하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마리인 밀크티라는 이름의 고양이에게 입양자가 나타나서 그를 만나러 가는 내용을 그린 그림이었다. 제목은 ‘밀크티의 여행’. 올 여름의 어느 날, 사람들로 붐비는 버스터미널에서 이동장 속 고양이는 낯선 상황에 울고,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한 작가는 입양자를 빨리 만나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그림을 보며 밀크티라는 이 아이에게 앞으로 어떤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 생각하다가 혼자 울컥한 것이다. 밀크티는 길면 20년쯤 되는 자신의 여행을 잘 마칠 수 있을까.

작가는 분명 꼼꼼하게 입양자를 선택했을 테고, 입양자도 생명을 들인다는 책임감의 무게와 새 식구를 맞는다는 설렘을 안고 오는 것일 텐데 괜한 감상이다 싶었다. 하지만 오늘도 구조하지 않으면 죽을 길고양이 새끼는 넘치고, 마음만 먹으면 누구든 그 아이들을 입양할 수 있다. 그러다 보니 입양간 아이가 사라지거나 다치거나 죽임을 당하는 사고는 넘친다. 아무리 입양 계약서를 철저하게 작성해도 ‘인간의 마음’이 변하는 순간은 막을 수 없이 온다.

사람을 잘따르는 길고양이 홍보부장 갑수. 책공장대표 김보경 제공

우리 동네에는 길고양이 홍보부장인 갑수가 있다. 동네 사람 누구나 가리지 않고 잘 따르다보니 사람들도 갑수를 좋아해서 동네 마스코트가 되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간사해서 눈길도 주지 않던 사람들도 갑수가 만날 때마다 눈을 맞추며 따라오니 슬쩍 마음을 연다. 덩치 큰 검은 고양이에 예쁘게 생긴 얼굴도 아닌데도 마음을 주고 나니 “갑수가 참 예쁘게 생겼다”라며 칭찬도 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그럴 수는 없다.

어느 날 골목길을 걷는데 골목 끝에 갑수가 앞발을 모으고 앉아서 고개를 반짝 들고 지나가는 사람들과 눈을 맞추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지나가는 아저씨고 학생이고 누구도 갑수에게 알은체 하지 않았다. 인간의 선의에 기대어 산다는 건 이처럼 쓸쓸한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상수가 되지 못한다. 늘 변수. “갑수야, 밥 먹으러 가자” 크게 불렀다. 갑수는 앞선 사람들에게 거절당한 건 다 잊은 듯 기쁘게 쿵쿵 달려왔다.

북극곰 통키가 요크셔야생공원으로 가기 전 마지막 한국에서 여름을 나는 모습. 연합뉴스

올해는 동물원에서 슬픈 소식이 자주 들려왔다. 서울대공원의 코끼리 마흔 살 ‘칸토’와 고작 열네 살 ‘가자바’가 떠났고, 대전 오월드 동물원의 퓨마 ‘뽀롱이’가 사살됐고, 영국 이주를 앞둔 에버랜드의 북극곰 ‘통키’가 떠났다. 동물원 동물의 죽음은 많은 생각을 일으킨다. 그들의 죽음은 마침내 얻은 해방일까. 특히 통키는 곧 좋은 환경으로 이주를 앞두고 있었다. 통키가 갈 요크셔야생공원은 동물원에서 태어나 평생 갇혀, 매 순간 교도소 독방에 갇힌 듯한 고통을 느꼈을 통키가 삶의 마지막에 받을 선물이었다.

통키가 처한 환경을 바꾸라는 많은 요구에도 찔끔찔끔 개선하던 동물원이 갑자기 노령의 통키를 이주하기로 결정했을 때 반가우면서도 동물을 이용해서 이윤을 얻는 기업의 선의에 선뜻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에버랜드는 미국동물원수족관협회의 우수 동물원 인증을 추진하는 중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주가 덜컥 결정된 것인지 속내가 궁금하면서도 차치하고 통키가 북극곰답게 짧게라도 살 수 있기를 바랐는데 떠나고 말았다.

동물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대고 도움을 청할 사람을 만날 확률은 희박하다. 픽사베이

투견장의 미끼견으로 살다가 한쪽 귀와 얼굴 반쪽을 잃은 개의 이야기인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개 우기>에서도 인간의 선의는 마지막에나 등장한다. 우기는 미끼견으로 사용되다가 얼굴의 반이 날아가는 사고를 당한 채 버려지고, 투견장을 급습한 경찰은 우기를 병원으로 데려다 놓지만 의료진은 수술비를 낼 보호자가 없는 개이니 피를 닦고 거즈만 붙인 채 구석에 며칠을 방치했고, 곧 보호소로 보낼 예정이었는데 입양이 안 될 테니 안락사로 죽을 터였다. 며칠이라는 꽤 긴 시간 동안 처참할 정도의 상처를 입은 생후 3개월의 강아지는 어떤 사람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 우기는 한 의료진의 눈에 띄어 좋은 가족을 만났지만 99퍼센트의 투견장 미끼견은 아니다. 동물이 절체절명의 순간에 기대고 도움을 청할 사람을 만날 확률은 희박하다.

그래서 사람의 선의를 기다리기보다는 대책을 강구하는 게 낫다. 한 대학교의 학생들이 야생동물과의 공존을 위해서 교내 도토리를 지키는 ‘신박한’ 방법을 찾아냈다. 가을이면 교내 야산에 일반인이 들어와서 재미 삼아 도토리를 주워가자 겨울에 동물이 먹을 게 부족했다. 주워가지 말라고 현수막을 걸어도 소용없었다. 사람들의 선의에 호소하는 방법에 한계가 있음을 안 학생들은 아예 먼저 도토리를 다 주워서 보관하다가 겨울에 산에 뿌리거나 동물을 위한 도토리 밥 자리를 따로 마련했다. 멋진 방법을 찾아냈다. 인간의 선의는 막강하고 아름답지만 매번 필요한 순간에 맞춰 나타나지 않고, 때맞춰 나타나지 못했다고 반성하는 법도 없으니.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개 우기>, 래리 레빈,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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