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배우 겸 발명가 헤디 라마르가 1914년 오늘 태어났다.

헤디 라마(Hedy Lamarr, 1914.11.9~2000.1.19)는 1960년 2월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Walk of Fame)에 별 동판을 새긴 스타 배우이자, 2014년 미국발명가협회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발명가다.

1차대전이 터진 1914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수도 빈에서 은행가〮피아니스트 부모의 외동딸로 태어난 그는 12세에 빈의 한 미인대회에 참가해 수상할 만큼 미모를 타고 났고, 연기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10대 때 어머니의 서명을 위조해 빈의 한 영화사에 대본 보조로 취직해 30년 무렵부터 이런저런 영화의 엑스트라로 출연했고, 만 18세이던 33년 체코 감독 구스타프 마차티(Gustav Machaty)의 영화 ‘엑스터시’에 출연, 당시로는 파격이었던 전라의 오르가슴 연기로 일약 스타가 됐다. 그해 10월 그는 부유한 무기상 프리드히리 만들(Friedrich Mandl)의 끈질긴 구애 끝에 그와 결혼했지만, 만들의 가부장적 억압과 나치〮파시즘 사상에 질려 3년 만에 미국으로 도피, 이혼했다.

할리우드에서 그는 49년 세실 드밀의 오스카 상 수상작 ‘삼손과 데릴라’에서 데릴라 역을 맡는 등 성취를 이루기도 했지만, 할리우드의 요구 즉 이국적 관능과 섹시한 아름다움의 이미지에 갇힌 스스로에게 지치기도 했다고 한다.

첫 결혼생활 중 무기 개발자들과 교류하며 공학〮발명의 매력을 알게 된 라마는 친구였던 백만장자 사업가 하워드 휴스의 네트워크와 설비를 이용하며, 아마추어 발명가로서의 삶을 병행했다. 2차대전 중 그는 피아니스트 조지 앤타일(Geroge Antheil)과 함께 피아노 공명을 응용한 ‘주파수 도약(frequency-hoppingㆍ주파수를 빠르게 변환하면서 통신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기법)’으로 어뢰 탐지를 방지하고 안정적으로 제어하는 기술을 개발, 42년 특허를 획득해 정부에 양도했다. 그 기술은 실용화의 어려움 때문에 60년대에야 채택됐고, 이후 CDMA와 와이파이, 블루투스 기술에 응용됐다. 라마르는 60년대 은퇴했고, 6번째(마지막) 남편과 65년 이혼한 뒤 거의 잊혔다.

1997년 전자프런티어재단은 그와 앤타일에게 뒤늦게 ‘개척자상(Pioneer Award)’을 수여했고, 그의 회원 가입 신청을 거부하며 전시 채권이나 팔라고 했던 미국 발명가협회는 2014년 그를 명예의 전당에 올렸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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