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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가치있게 세금 쓰는 법, 국가예산

입력
2018.11.05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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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뜨겁게 사랑하고 차갑게 다루어라’. 한 투자서 제목이다. 내년 예산을 둘러싼 여야의 뜨거운 공방이 시작됐다. 한 해 동안 국가가 수행해야 할 역할과 한계를 정하는 것이 예산이기 때문에 관심이 집중된다. 하지만 그만큼 이해관계자들로부터 휘둘릴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차갑게 다루어야 한다.

예산제도는 집단생활과 함께 시작됐다. 공동으로 필요한 것은 염출해 조달했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 한 곳에 모아 두었다. 그래서 예산을 의미하는 ‘Budget’이라는 단어는 프랑스어인 ‘부제트(Bougette)’, 즉 가방 또는 주머니라는 뜻에서 유래한다. 오늘날의 예산제도는 과거 영국의 입헌군주제와 함께 시작됐다. 의회가 납세자인 시민들로 구성되면서 세입과 세출을 통제하기 시작한 것이다.

내년도 정부 예산안은 470조 5000억 규모로 확장적이다. 그럼에도 각각의 용처가 있다 보니 여기저기서 푸대접 이야기가 나올 것은 자명하다. 이러한 주장의 주요 논거는 전년 대비 증감율이다. 그러나 절대수준이 이미 높은 경우, 불합리함을 증감율로만 판단할 수는 없다. 또 다른 불만이 나오는 곳은 선심성 약속은 있었지만, 이에 비례한 예산 배정이 없는 경우다. 그래서 월스트리트저널의 사설은 효율적이고 건전한 예산을 위해서는 모두가 정직해야 한다고 정곡을 찌른다. 예산을 받는 입장에서도 필요한 소요를 정확히 주장해야 하며, 예산을 주는 입장에서도 약속을 남발하지 않아야 한다.

확장적 재정의 정당성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린다. 재정투입이 필요한 때라는 주장과 재정남발이라는 반론이다. 확장적 재정은 세금을 더 걷거나 또는 부채를 더 늘려서 재원을 조달한다. 그런데 국민 입장에서 언제까지 풍부한 세원을 제공해주기는 어렵다. 경기가 나빠지면 세부담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확장적 재정의 또 다른 문제는 확장된 크기에 맞게 소비 패턴이 고착화하고, 이를 되돌리는 데에 엄청난 반발이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정부는 확장적 재정을 취할 때 반드시 그 이유와 재원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그래야 세부담에 동의할 수 있으며, 확대된 패턴도 그 사유가 사라졌을 때 갈등 없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예산 논의에 항상 따라 붙는 것이 재정건전성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이다. 재정적자는 그 자체로도 문제지만 국가 또는 조직이 위기에 처할 때 회복력을 상실하게 한다는 점과 좋은 기회를 맞았음에도 대응하지 못해 실기하게 만든다는 문제가 있다. 재정건전성을 달성하기 위한 방안 중 대표적인 것이 재정준칙이다. 돈을 주는 사람이나 쓰는 사람이나 모두 지킬 수 있는 기준을 규범화하는 것이다. 딜(Deal)에 의한 재정운영을 룰(Rule)로 전환시켜 투명성과 합리성을 담보하는 방안이다.

기준으로 제시되는 것 중 하나가 ‘페이고(Pay-go)’이다. 재정지출이 수반되는 새 법률이나 제도를 만들려면 반드시 필요한 예산을 확보하라는 것이며, 이 과정을 통해 그간의 사업들은 생존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게 된다. 페이고의 장점은 “네가 지키고 싶은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라는 간단한 명제가 성립된다는 점이다. 다만 예외없는 규범은 사문화하기 쉽기 때문에 합리적인 예외는 두어야 한다.

한편 예산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효율성이다. 금번 예산안에서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지적되는 부분이 일자리예산의 효율성이다. 일자리는 국민 삶에서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에서 큰 재정규모에는 동의하나, 그 성과는 명확히 검증ㆍ평가돼야 한다. 지출에 대한 책임성은 민주적 정당성의 당연한 요구이기 때문이다.

현명한 예산은 돈을 가장 가치 있는 곳에 쓰도록 만든다. 예산 합의 과정에서 여야의 합리적 공방을 통해 가장 가치 있는 곳에 국민 세금이 쓰일 수 있기를 바란다.

최승필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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