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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 말도 안 하려는 중3 아들... 틀어진 관계 어떻게 회복할까요

입력
2018.11.05 04:40
수정
2018.12.14 17:25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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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은영의 화해’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오은영 박사가 <한국일보> 와 함께 진행하는 정신 상담 코너입니다.

[저작권 한국일보]일러스트=김경진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일러스트=김경진 기자

저와 말도 안 하려는 중3 아들 때문에 너무 괴롭습니다. ‘학교에 가지 않겠다’, ‘내 목표는 오로지 자퇴다’라며 등교를 거부하고, 학교에 가도 수업을 빠지기 일쑤입니다. 공부는커녕 숙제도 안 해요.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보면 ‘간섭하지 마’라는 차가운 대답만 돌아옵니다. 컴퓨터 게임만 하고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지냅니다. 최근에는 친구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다 자살하겠다고 해서 친구의 신고로 경찰이 집으로 출동한 적도 있습니다. 다행히 해프닝으로 끝나긴 했지만 저에겐 너무 큰 충격이었어요. 아이에게 이유를 물어보니 아이는 시치미를 떼며 그런 적이 없다고 합니다.

원래부터 아이가 삐뚤어진 건아니었어요. 잘 웃고, 재미있고,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모범적인 아이였습니다. 그러다 2년 전부턴가 말수가 줄어들고, 반항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특히 학교 성적 얘기를 하면 아이가 화를 많이 냈어요. 화가 나면 소리지르고 말대꾸를 하고, 어떨 땐 울기도 하고, 원망이 많이 쌓인 듯 했습니다. 심지어 저를 때리려고도 합니다. 그러고 나면 미안하다고 서로 사과하고 풀었지만 엄마로서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합니다. 사춘기 때문에 그런가 싶었는데 아이는 갈수록 통제 밖입니다. 요즘에는 제 목소리 듣는 것조차 짜증난다고 합니다. 밥을 먹으라고 하거나, 일찍 자라고 하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할 테니 상관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상관도 없는 학교 공부를 하기 싫다며 학교에서 모든 과목을 공부하는 게 싫다고 합니다. 엄마 잔소리도 듣기 싫고, 엄마를 포함해 세상 그 누구도 못 믿는다고 말하더군요.

제가 아이의 행동에 많이 간섭하는 편이었다면 남편은 아이 하고 싶은 대로 놔두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잔소리도 별로 하지 않고, 얘기를 들어주니깐 아빠하고는 컴퓨터 등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얘기를 합니다. 하지만 남편도 아이의 불만을 다 해결해주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가 비뚤어지면서 남편은 이 모든 탓을 저한테 돌립니다. 제가 양육을 잘못해서 그렇다는 거죠. 남편과도 많이 다퉜습니다. 애가 보는 앞에서도 종종 언성을 높여 싸우곤 했습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친정엄마와의 관계가 그렇게 좋지 못했어요. 제가 중학교 무렵 일을 그만두시고 집에 계셨는데, 그때 사춘기 탓인지 엄마의 관심이 불편했어요. 그래서 학교 다녀오면 그냥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어요. 지금도 엄마와 속깊은 얘기는 안 해요. 얘기해도 속이 더 답답해지기만 합니다. 그런 엄마의 태도가 못마땅하고 싫어서 제 아이와는 잘 지내고 싶었는데, 왜 이렇게 된 걸까요. 틀어진 아이와의 관계를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요.

조다혜(가명ㆍ45ㆍ회사원)

다혜씨, 사춘기를 겪는 청소년 시기에 아이들은 부모와 티격태격 다투기도 하고, 반항도 합니다. 정상적인 발달과정의 일부이지요. 하지만 사춘기를 겪는 아이들이 모두 학교를 그만두거나 극단적인 방법을 취하지는 않아요.아이가 하는 행동은 사춘기 문제처럼 나타났지만 이 시기에 새순처럼 튀어나온 것일 뿐 이미 이전부터 쌓여온 감정일 수 있어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이는 청소년기를 지나도 같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어요.

일단 제가 생각하기에 아이의 마음은우울한 것 같아요. 연령별로 우울에 따른 현상이 다른데 유아동기에는산만한행동으로 나타나요. 노년 우울은 몸이 아픕니다. 청소년 우울은 어떨까요. 무력해집니다. 청소년기 우울은 가면 우울이라고도 하죠. 가면을 쓴 것처럼 우울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안 하던 행동을 하기도 합니다. 부모나 교사와 지나치게 다투거나 따지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안 어울리던 친구들과 몰려다니기도 하고, 학교를 무단으로 가지 않거나, 외박을 하기도 하지요. 다혜씨의 아들은 우울하면서 상황을 회피하고 싶어 합니다. 무력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죠. 우울한데 ‘엄마, 내가 많이 힘들어요’라고 말하지 않고 대화를 피하고, 자살 해프닝을 벌였어요.

아이는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된 걸까요. 아마도 진솔하게 자신의 내면과 깊게 소통해 보지 못한 것 같아요. 청소년기는 자기에 대한 고민이 많은 시기에요. 외모, 성격, 진로 등과 관련해 친구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부모나 교사 등과 활발하고 깊이 있는 상호작용을 하고 대화를 나누고 충고와 의논이 필요한 시기에요. 그런데 이게 잘 안되면 외롭고, 억울하고, 너무나 답답하고 미칠 것 같은 감정을 느낍니다. ‘왜 살까’하는 궁금증과 무력감이 느껴지고, 세상 사는 것이 썩 재미가 없고, 모호하고 막연한 불안감으로 마음이 힘들고, 자주 겪는 시행착오와 실패에서 오는 좌절감이 밀려오기도 하지요. 이런 갈등과 어려움을 가까운 사람과 대화를 나누고, 용기와 지지를 받고, 조언을 얻어 해결해 나가보는 경험을 해야 하는데, 아이는 오래 전부터 이런 상호작용이 잘 안됐을 거에요. 그게 이 시기에 터졌어요.

다혜씨도 몹시 답답할 거에요. 억울하기도 하죠. 나름대로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열심히 해왔으니까요. 다혜씨,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고 염려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부모의 마음이 잘 전달되지 않으면, 불안하고 슬프고 화나고 억울하고, 자신이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부모가 나를 이렇게 대했어도, 우리 부모가 나를 사랑해서 그랬구나 라고 이해하려면 자식의 나이가 마흔이 넘어야 되는 것 같아요.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잘되길 바라는 의도도 중요하지만, 이것을 잘 전달하는 방식도 아이에게는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자살하겠다고 밝혀서 경찰이 왔어요. 이걸 엄마가 알게 됐다는 걸 아이도 알고 있었을 거에요. 그런 경우에 엄마가 ‘어떻게 된 일이야, 왜 그랬어’라고 하기보다 ‘엄마가 네 마음을 잘 몰랐구나, 나에게 중요한 건 네 마음이 얼마나 힘든지 아는 거야. 네가 힘든 점을 엄마한테 얘기해 줄 수 있니’라는 말을 아이는 듣고 싶었을 거에요.청소년기에 자신의 잘잘못 정도는 다 압니다. 공부를 안 하면 문제가 생기는 걸 왜 모르겠습니까. 알지만 힘들고, 힘든 것을 감당하기가 아이들은 더 힘이 들지요. 이것을 ‘힘들어도 해야지’라고 하면 부모의 생각만 전달될 뿐 감정은 전달되지 않아요. ‘엄마가 다는 모르지만 많이 힘들겠구나, 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라고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는 게 중요하죠. 그럼 아이도 엄마가 나를 많이 이해해주고, 위로해준다고 느낄 겁니다. 이런 부분이 선생님이나 친구가 할 수 없는 대체 불가한 부모의 역할이지요. 다혜씨의 말투와 행동은모르지만, 아마도 상당 부분 아들의 행동을 통제하고, 아이의 마음보다는 행동의 원인을 분석하지 않았을까 우려됩니다. 엄마의 의도가 아이를 걱정해서 하는 선한 의도였을지라도 아이에게 그 의도가 잘 전달되지 않았다면 소통방식에 문제가 있는 거에요.

다혜씨는 아이에게 나의 의도가 잘 전달됐을 거라고 착각하고 있어요. 다혜씨뿐만이 아니라 자식을 사랑하고 잘 되기를 바라는 이 시대의 수많은 부모들도 이런 착각을 합니다. 어떻게 말하고 행동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고 사랑했던 마음과 의도만 기억이 나는 거죠. 그런 착각이 아이와 벽을 만들고, 아이가 엄마를 답답하게 느낀 게 아닐까 생각해요. 물론 모든 부모가 완벽하게 아이를 대하진 않죠. 잘못도 합니다. 그러나 아이가 큰 문제 없이 자라기를 바란다면 아이의 성향, 장단점, 감정, 생각 등을 잘 파악하는 것이 중요해요.

아이는 예민하고 섬세하고, 소심한 편일 것 같아요. 이런 아이들은 부모와 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때 훨씬 힘들어해요. 이런 아이들은 자신이 설정한 기준점이 100이라고 하고, 잘 할 수 있다고 생각되면, 열심히 해서 100을 다 해내요. 하지만 70밖에 못할 것 같으면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 포기해버리기도 해요. 그리고 좌절하고, 무기력해지죠. 아이가 성적 얘기만 하면 유독 화를 낸다고 했지요. 그건 아이가 공부를 잘했고, 잘하고 싶었는데 어느 순간 이 공부가 부담으로 다가오고, 다 잘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 있어요. 그래서 마음이 불안해지고, 이 불안이 진정이 안되면 불쾌해지고 짜증과 신경질, 화를 내게 되는 것이지요.

다혜씨, 제가 보기에 아이는 스스로 정해놓은 기준을 맞춰갈 겁니다. 문제는 이 기준을 맞추지 못해도 괜찮다는 걸 다혜씨나 남편이 알려줘야 해요.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하면 “학교를 그만두고 마음 편하면 정말 그만둬도 괜찮아, 하지만 학교를 가지 않으면 너의 마음이 편하지 않을 수도 있어. 어떻게 하는 게 마음이 편한지 한번 생각해봐”라고 아이를 정서적으로 이끌어줘야 해요. 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으면 어떤 문제가 생기고, 그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스스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굳이 학교를 가야 한다고 강요하고, 미래의 결과를 예측하여 겁을 주거나, 통제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아이는 굉장히 강해 보이지만 아이의 마음에는 누가 나를 좀 잡아줬으면 하는 마음도 같이 있어요. 학교에 가야 하는 100가지 이유를 대는 것보다, 왜 그런 마음이 드는지, 그런 마음이 들어도 괜찮은 건지 헤아려 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해요.

다혜씨, 아이들은 저마다의 자기 모습을 갖고 살아가요. 부모는 아이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잘 끌어줘야 해요. 아이가 이 닦았는지 밥 먹는지, 잠 자는지는 이제 알아서 하도록 놓아둬도 크게 문제가 없어요. 아이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큰 틀에서 같이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어른으로서의 부모를 아이가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다혜씨가 잘못한 건 아니지만 ‘나는 아이를 잘 알고, 배려해줬어’라는 착각을 깨고 아이를 대하면 관계가 훨씬 좋아질 겁니다. 아이가 듣던, 안 듣던 간에 아이에게 “네가원하는 것을 하면 너무 좋겠지만, 엄마한테 제일 중요한 것은 너야. 너의 마음이 편했으면 좋겠어. 너의 마음이 안 좋아서 엄마가 마음이 아프구나. 학교가 쓸모 없는 데는 아니지만 학교가 너보다 중요한 건 아니다. 우리에겐 네가 더 중요하다”라고 먼저 말을 꺼내세요.안 들으면 쪽지라도 써서 책상에 두세요. 그렇게 아이의 마음부터 헤아리는 게 갈등을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거에요.

정리=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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