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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감세는 답이 아니다

입력
2018.11.02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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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로 가득하다. 증세는 절대 하지 않겠다던 박근혜 정부는 증세를 했고, 증세를 해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문재인 정부는 감세를 한다고 한다. 김동연 부총리는 다음 달부터 한시적으로 유류세를 15% 내린다고 발표했다. 역대 최대 수준의 인하 조치다. 그만큼 한국 경제가 어렵고, 민생이 힘들어졌다는 것을 반영하는 조치라고 생각된다.

정부는 유가가 배럴당 80달러가 넘으면서 취약계층의 살림살이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취약계층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차원에서 감세를 시행한다고 했다. 세금을 낮춘다니 기쁜 일이다. 가끔 세금을 내는 기쁨으로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세금을 낮추겠다는데 싫어할 이유가 없다. 더구나 그 감세가 취약계층을 위한 것이라니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감세로 경제를 살리고 서민을 돕겠다는 말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한국 경제가 어려웠던 이유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증세와 복지정책 때문이라고 주장하면서 노동공급, 저축, 투자를 늘려 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감세를 실행했다고 했다. 덕분에 한국의 조세부담률은 2007년 19.6%에서 2013년 17.9%로 낮아져 OECD 회원국과의 차이가 더 벌어졌다.

당시 경제학계의 원로 학자는 미국에서도 실패한 정책으로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감세정책에 대해 “사이비 이론이 태평양 너머 한국에서 화려하게 부활했다”고 일갈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연평균 실질 경제성장률은 이명박 대통령이 증세와 복지 때문에 경제를 망쳤다는 노무현 정부의 4.5%보다도 낮은 3.2%에 불과했다. 실업률도 낮아지지 않았다. 물론 모든 것을 감세 탓으로 돌리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감세가 민생을 살리고 경제를 활성화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당황스럽게도 휘발유 값도 내려가지 않았다. 유성엽 의원에 따르면 2008년 유류세 인하로 인한 유가 인하는 없었다. 1조 6,000억원이라는 세수만 날리고 정책효과는 거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취약계층의 살림살이가 나아진 것도 아니었다. 한국지방세연구원에 따르면 유류세 인하로 인한 가처분소득 증대 효과는 고소득층이 저소득층에 비해 6.3배나 컸다. 평범한 직장인과 서민들 대부분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작은 차를 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유류세 인하 효과가 누구에게 이로울지는 거의 상식에 가깝다.

더욱이 감세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 기조에도 반한다. 소비를 늘리기 위해서는 소득 증가에 따라 소비 지출이 늘어나는 중산층과 서민의 지갑을 두껍게 해야 하는데 유류세 인하는 소득 증가가 소비로 연결되지 않는 부자들의 가처분소득을 늘리는데 더 이롭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 사회에서 자산 불평등이 심각해지고, 공적 복지가 취약한 원인 중 하나가 중∙상층 이상의 가구가 부동산, 민간보험 등 사적 자산을 축적할 수 있게 했던 낮은 세금과 관련 있다는 점이다. 공적 복지를 확대하려면 중산층이 동의해야 하는데 낮은 세금으로 자신만의 든든한 사적 자산을 축적한 중산층이 모두를 위한 공적 복지를 확대하기 위해 세금을 늘리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부의 말처럼 서민을 위한 것이라면 차라리 2조원에 달하는 감세를 취약계층의 소득보장에 쓰는 것이 더 좋은 선택일 것 같다. 부양의무자 기준과 같은 전근대적 규정으로 기초생활을 보장받지 못하는 100만에 달하는 비수급 빈곤층이 유류세 인하로 살림살이가 나아질 가능성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서민에게 필요한 좋은 정책은 감세가 아니라 증세를 통해 공적 복지를 획기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보수정부의 실패를 반복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감세는 답이 아니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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