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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에너지전환, 속도가 핵심이다

입력
2018.10.31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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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늦봄 한 신문에 ‘과장된 두려움’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다. 요지는 이렇다. “모든 전환에는 두려움이 수반된다. 따라서 전환의 성패는 그 두려움이 과장된 것임을 알리고 국민들이 누리게 될 편익이 무엇인지를 얼마나 구체적으로 가시화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당시는 신고리 5ㆍ6호기 건설과 ‘탈원전’ 논란이 가열되기 시작했을 때다.

그로부터 1년 반 가까이 흘렀다. 에너지전환은 서너 손가락 안에 드는 첨예한 정치 쟁점으로 떠올랐다. 특히 올해 국정감사는 ‘탈원전 국감’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여야 간 공방이 치열했다. 다음 라운드는 연말께로 예상되는 제3차 에너지기본계획 권고안 발표와 맞물려 더욱 격렬하게 펼쳐질 것이다.

에너지전환의 정치 쟁점화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수십 년간 굳어져 온 패러다임과 에너지시스템을 바꾸자는 것인데 조용하면 오히려 이상할지도 모른다. 독일에서도 에너지전환은 오랫동안 정쟁의 대상이었다. 30여년 전 찬성하는 정당은 녹색당이 유일했다. 하지만 지금은 집권 보수당인 기민당 메르켈 총리가 탈원전과 탈석탄을 주도한다.

독일과 견줘 보면 우리는 아쉬운 대목이 많다. 원전 비중 축소 등 지엽적인 쟁점에 매몰되면서 에너지시스템 혁신의 기회를 놓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전환은 단순히 어떤 에너지원을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에너지 생산과 소비 방식의 변화, 가격 및 보조금체계 조정, 설비 현대화 등 광범위한 논의를 포괄한다.

지금까지 에너지전환에 쏟아진 비판 중에는 공감이 가는 내용도 있다. 특히 태양광 산지 훼손 문제에 대한 지적은 정부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공격에 앞장서고 있는 일부 언론과 야당도 에너지전환을 대체할만한 대안을 갖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설마 원전과 석탄 발전비중이 72%에 달할 정도로 편중된 국내 전력시스템을 그대로 방치하자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신규설비 투자액 1,900억달러 가운데 재생에너지는 1,390억달러로 73.2%에 달했다. 화석연료와 원자력 투자액은 각각 22.6%와 4.2%에 불과했는데 이 수치는 에너지전환이 이미 세계적인 추세임을 말해 준다. 이처럼 세계 에너지시장은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데 우리만 과거에 안주해도 된다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소모적인 공방에서 그만 벗어났으면 한다. 기술, 금융, 시장 등 모든 영역에서 이미 대세가 된 에너지전환의 타당성 시비에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전환 속도에 대해 제대로 논의해 보자는 것이다. 방향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성패에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속도다. 남북 교류협력과 북한 비핵화, 최저임금 인상, 미세먼지 대책 등 어떤 경우에도 속도가 쟁점이 되지 않은 경우는 없었다.

속도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비용과 편익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모든 전환에는 비용이 든다. 전환은 낡은 시스템이 새것에 의해 대체되어 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공짜 전환이 있다면 그건 가짜이거나 부실덩어리일 가능성이 크다. 전환은 두려움도 동반한다. 원전과 석탄산업 종사자들은 일감과 일자리 감소를 걱정할 수밖에 없다.

지난 6월 정부가 ‘에너지전환 후속조치 및 보완대책’을 발표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물론 에너지전환에 비용과 두려움만 따르는 것은 아니다. 설비투자, 일자리 창출, 기후변화와 미세먼지 대응 등 모든 면에서 전환의 편익이 비용을 압도한다는 연구 결과는 많다.

물론 이런 문제들은 70년이 걸려야 완성되는 시간표를 ‘탈원전’으로 뭉뚱그려 공격하는 방식으로는 따져 볼 수 없다. 지금 에너지전환 논쟁은 속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진영논리에서 벗어나 에너지시스템 혁신에 기여할 수 있는 지혜로운 길이다.

안병옥 전 환경부 차관

※환경운동가인 안병옥 전 환경부 차관이 ‘아침을 열며’ 새 필진으로 참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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