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을 연구하다 보면 동서고금의 수많은 천재들을 마주하게 된다. 대부분의 천재들은 20대의 젊은 나이에 상상하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성과를 남겼다. 어쩌면 이게 천재의 정의인지도 모르겠다. 고전 물리학을 확립한 뉴턴이 운동법칙과 만유인력의 법칙, 미적분 등을 구상했던 1666년에는 그의 나이 고작 23세였다. 훗날 사람들은 이 해를 ‘뉴턴 기적의 해’라고 부른다. 과학 역사상 또 다른 기적의 해를 만든 사람은 역시 아인슈타인이었다. ‘아인슈타인 기적의 해’는 그의 나이 26세이던 1905년이다. 특수상대성이론이 이때 나왔고 브라운 운동과 광전효과를 성공적으로 설명했다.

아인슈타인에 맞서 양자역학의 기본 원리를 정초한 보어는 28세 되던 1913년 완전히 새로운 원자모형을 제시했다. 보어와 함께 양자역학을 이론적으로 정립하는 데에 큰 기여를 한 하이젠베르크는 24세에 행렬역학이라는 마법과도 같은 새로운 동역학 체계를 제시해 양자역학을 ‘창조(creation)’한 공로로 1932년 노벨상을 받았다.

숨길 수 없는 재능을 나이 스물이 되기 전에 낭중지추로 드러낸 천재들도 적지 않다. 19세기의 뉴턴이라 불리는 맥스웰은 14세에 난형 곡선에 관한 논문을 썼고, 그보다 100년쯤 전에 태어난 라그랑주는 18세에 변분법의 새로운 방정식을 제안했다. 라그랑주보다 40여 년 뒤에 태어난 가우스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수학자답게 말과 글을 배우는 것보다 계산하는 법을 먼저 배웠다고 한다. 수많은 물리학도들에게 “나는 왜 이리 똑똑하지 못한가?”라는 좌절감을 확실하게 안겨주는 ‘가우스 법칙’이 그의 작품이다.

보통 ‘천재’ 하면 가우스처럼 아주 어릴 때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인 사례를 떠올리곤 한다. 구 소련의 위대한 물리학자인 란다우는 미적분을 몰랐을 때가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모차르트가 클라비어를 처음 연주한 것이 3살 때이고 5살부터는 작곡을 시작했다. 존 스튜어트 밀은 3살 때 희랍어를 배웠다. 김시습이나 이이 같은 우리의 천재적인 선조들은 3살에 천자문을 뗐다.

그러나 모든 천재의 유년기가 경이롭지는 않았다. 어릴 적 아인슈타인은 신동과는 거리가 멀었다. 네댓 살이 되도록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해 부모의 걱정이 컸다. 1개월쯤 일찍 미숙아로 태어난 뉴턴의 유년기도 행복하진 못했다. 부친의 사망과 모친의 재혼으로 3살 때부터 외조부모 손에서 자랐고 의붓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아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자폐적이었다. 뉴턴과 아인슈타인은 여동생을 심하게 괴롭혔다는 공통점도 있다.

천재들의 압도적인 능력과 눈부신 성과를 보노라면 우리 범재들이 하찮은 능력을 뽐내며 서로 천재니 영재니 하는 모습이 너무 애처로워 보인다. 역설적이게도 압도적인 천재들이 존재하는 까닭에, 어차피 우리는 그런 인간이 될 수 없으니 그저 평범한 능력에 만족하며 각자 자기 삶의 가치를 돌아볼 여유를 가질 수도 있다.

세기의 천재들은 당대에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풀었거나 완전히 새로운 해법을 제시한 사람들이다. 이런 성과를 얻기 위해서는 기존의 질서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창의력이 꼭 필요하다. 전에 없던 새로운 규칙으로 새로운 판을 벌릴 수 있어야 새로운 해법이 나온다. 반면 한국에서 천재나 영재로 불리려면 대체로 선행학습을 잘해야 한다. 선행학습을 잘하려면 기존의 규칙을 잘 따라야 한다. 선행학습에는 체제거부자보다 체제순응자가 유리하다. 기존의 규칙을 잘 따르는 한 가지 확실한 방편은 잘 외우는 것이다. 계산능력까지 뛰어나다면 금상첨화이다.

좋은 암기력과 계산력 자체는 물론 대단한 능력이다. 그러나 암기력과 계산력이 좋다고 해서 새로운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형 천재의 대표적인 쓰임새는 예컨대 윗사람이 궁금해서 무언가를 물어보면 1초 안에 즉시 답을 주는 것이다. 이 또한 훌륭한 능력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정보통신 혁명의 결과로 이제는 기계가 훨씬 더 잘하는 일에 굳이 인간이 목을 맬 이유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세기의 천재와 한국형 천재의 결정적인 차이점을 엿볼 수 있다. 새로운 규칙을 만들 수 있는가 아니면 남이 만든 규칙을 잘 따르는가. 노벨 과학상이 아직 없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올바른 영재교육의 시작은 어쩌면 기존의 질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차별받지 않고 자기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인슈타인도 김나지움을 중퇴했고,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도 대학과정을 중도에 포기했다. 오래 전 천재소년이라 불렸던 한 청년의 굴곡진 인생사가 자꾸 언론에 나올 때마다 나는 시대가 빚은 한국형 천재의 비극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한국형 천재의 부작용은 한국형 천재의 집합소라 할 수 있는 사법부의 현재 모습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전대미문의 재판거래 정황이 낱낱이 드러나고 있음에도 제 식구 감싸기에만 급급한 이유가 결국 체제순응형 천재만 길러 온 업보라면 지나친 억측일까?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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