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사법부사태는 타살아닌 ‘자살’행위
사법부 개혁의지도, 개혁능력도 없다
법관선거, 시민주도 사법위원회 도입해야

정치학자들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정당화된 폭력의 독점'이라고 이야기한다. 개인이 폭력을 쓰면 처벌을 받지만 국가는 공권력이라는 이름아래 폭력을 행사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국가의 폭력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는 것이 바로 사법부이다. 이 점에서 사법부의 중립성은 너무도 중요하다. 인권의 역사를 보면, 가장 먼저 문제가 된 것이 국가에 의한 부당한 구금을 금지한 ‘헤비어스 코퍼스’(habeas corpus)였다는 것도 사법부의 중요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박정희 등 군사독재 정권들은 사법부를 장악하기 위해 엄청 애를 썼다. 개인적으로 박정희와 김대중이 부딪쳤던 1971년 대통령선거에서 대학생 선거참관인으로 참가했다가 박정희 정권의 갖가지 부정선거를 목도했다. 그래서 야당을 찾아가 국회의원 선거 보이콧을 촉구했다가 선거법, 정당법 등으로 투옥되어 재판을 받아야 했다. 당시 최후진술에서 카스트로의 최후진술을 흉내내서 “나는 3심제도를 믿지 않습니다. 재판관님이 유죄를 선고하더라도 역사라는 4심은 나에게 무죄를 선고할 것”이라고 건방을 떨었다. 헌데 인자한 얼굴의 주심판사는 나의 치기어린 진술을 웃으며 들어줬고 이후 무죄를 선고했다. 그가 게엄하에서도 구속영장을 기각시킨 전설적인 양헌 판사였다. 이에 화가 난 박정희 정권은 몇 달 뒤 이 재판의 배석판사를 사생활과 관련해 구속하려 했고 이에 판사들이 들고 일어나 사법부 파동이 일어났다. 이후 박정희는 유신을 선포하고 판사의 재임용제를 도입해 사법부를 확실하게 길들였다. 사법부는 ‘독재정권의 주구’가 되고 말았고 시국사범은 사건의 종류에 따라 정부가 정해놓은 형량을 기계적으로 판결해 ‘정찰제 판결’이라는 웃지 못할 용어까지 생겨났다.

이 같은 사법부의 시녀화는 87년 민주화 이후 사라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충격적이게도 민주화가 30년이 지난 현재 우리는 믿겨지지 않는 한심한 사법부의 타락을 보고 있다. 그러나 정말 충격적인 것은 민주화가 30년이 됐는데도 아직도 사법부가 이 꼴이라는 사실이 아니다. 과거 독재시절의 경우 정권이 압력을 가해 사법부를 살해하고 꼭두각시 사법부를 만들었다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와 밀실 야합해서 벌린 현재의 사법부파동은 정부의 압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보도에 따르면, 사법부 지도부가 자신들의 밥그릇인 상고법원을 만들기 위해 정치권으로부터 점수를 따기 위해 그렇게 한 것이라고 한다. 한 마디로, 과거의 사법부의 죽음이 독재권력에 의한 ‘타살’이었다면 이번 사법부의 죽음은 사법부가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사법부의 권위를 팔아먹은 사법부의 ‘자살’이다. 더 충격적인 것은 아직 남았다. 그것은 역사적인 촛불혁명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자살은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론에 밀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지만 사법농단에 대한 수 차례의 구속영장 기각 등 '사법부의 독립'이란 이름아래 행해진 그간의 사법부의 사법농단 수사방해가 그것이다.

분명히 사법부의 독립은 지켜야 한다. 그러나 사법부의 독립이란 정치권력의 부당한 간섭으로부터 사법부를 지키자는 것이지 사법부가 국민의 통제조차 받지 않는 자기권력화를 하라거나 자기 밥그릇이나 지키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사법부는 행정부나 입법부와 달리 선출되지 않는 권력이라는 점에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될 위험은 오히려 더 크다. 이들이 사법고시를 통과하고 로스쿨을 나왔다고 국민 위에 군림할 정당성은 전혀 없다. 양승태 사태에 대한 대응을 보건대, 사법부는 스스로 자기개혁을 할 의지도, 능력도 전혀 없다. 양승태 사태와 같은 사법부의 자살과 사법독재를 막기 위해서는, 이제 우리들도 시민들이 판사들을 투표로 선출하고 각계대표와 시민대표 등이 참여하는 가칭 ‘사법위원회’가 사법부의 운영을 최종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손호철 서강대 명예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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