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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소기업이 미래다] “40년 구두만 바라본 열정, 컴포트화 1등 업체 비결”

입력
2018.10.28 17:0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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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네르’ 김원길 대표 인터뷰

김원길 바이네르 대표가 다양한 구두를 소개하며 향후 사업 계획을 밝히고 있다. 배우한 기자.
김원길 바이네르 대표가 다양한 구두를 소개하며 향후 사업 계획을 밝히고 있다. 배우한 기자.

“중학교 밖에 졸업하지 못하고 무작정 상경해 구두만 바라봤습니다. 아버지가 부자였거나 공부를 많이 시켜줬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지 모릅니다.”

국내 1위 컴포트화(편한 구두) 업체 바이네르 김원길 대표는 자신의 성공 비결을 이 한마디로 요약했다. 어려서부터 혼자 모든 걸 결정해야 했고 인생의 험난한 고비를 넘어왔기에 현재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학교 졸업 후 무작정 상경

김 대표가 서울에 처음 올라온 것은 18살 때였다. 일자리를 찾기 위해 서울 일대 구둣방을 무작정 찾아 다니다 중곡동 구두 공장에 견습공으로 취직하는 데 성공했다.

김 대표가 다니던 구두 공장은 당시 국내 5대 구두 메이커 중 하나인 ‘케리부룩’에 제품을 납품하고 있었다. 구두를 인생의 목표로 삼은 김 대표는 ‘좀 더 큰 물에서 놀아보자’라는 생각에 케리부룩으로 이직을 결심했다.

“종종 공장에 들르던 케리부룩 사장님 눈에 들기 위해 회사 관계자들이 방문할 때마다 따라다니며 인사하고 공장 안내를 하곤 했어요. 견습공이던 저를 사장님이 잘 보셨는지 결국 채용해 주셨습니다.”

큰 회사로 이직에 성공했지만 김 대표는 거기서 안주하지 않았다. 당시 회사 대표로 기능 올림픽을 준비하던 기술자가 갑자기 회사를 그만두자 자신을 기능 올림픽에 대신 나가게 해달라고 회사에 요청했다. 대회까지 두 달밖에 남지 않았고, 김 대표 기술을 크게 신뢰하지 않았던 회사 임원은 그의 요청을 묵살했다.

“사장님한테 직접 가서 말씀을 다시 드렸더니 사장님이 그 임원을 불러서 구두를 그 자리에서 만들어 보게 하시더라고요. 임원도 제가 구두를 만드는 것을 직접 보더니 바로 회사 대표로 선발해 기능 올림픽에 나갈 수 있었습니다."

◇도약 계기 된 기능올림픽 3위

김 대표는 60여일 간 공장에서 먹고 자며 기능 올림픽을 준비했다. 일취월장하는 그의 구도 제조 기술에 회사도 금메달을 기대하며 수상을 홍보할 광고 선전물도 준비해 뒀다. 하지만 결과는 3위에 그쳤다. 급박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괜찮은 성적을 올린 거였지만 기대가 컸던 회사 내부 분위기는 실망으로 무겁게 가라 앉았다.

“무작정 휴가를 내고 부산으로 내려가 신세한탄을 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대로 무너지면 안되겠다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험한 날씨를 견뎌 낸 자연산 농작물에 사람들이 더 높은 값을 쳐주듯이 ‘자연산 김원길’도 지금 풍파를 겪는 거라고 생각하니 용기가 생겼습니다.”

다시 회사로 복귀한 김 대표는 회사 사장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구두 제조 기술자 타이틀을 벗어 던지고 관리부로 자리를 옮겨 구두 포장부터 다시 시작했다. 고임금의 기술자 지위를 버리고 저임금의 관리부 말단 일을 하는 것에 동료 기술자들은 “미쳤다”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당시의 결단이 자신을 바이네르 사장으로 만들어줬다고 믿고 있다. 실제로 관리부로 자리를 옮긴 뒤 그는 구두 제품 품질 검사, 영업 세일즈 등에서 뛰어난 역량을 보이며 승승장구 했다. 백화점에서 퇴출될 뻔하던 매장에 확성기를 들고 찾아가 한달 만에 매출 1억원을 올린 일화는 지금도 유통업계에서 유명하다.

◇’가방 끈’은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학을 나온 소위 ‘가방 끈 긴’ 직원들이 그의 성공을 시기하고 그들과 자주 갈등하게 되면서 김 대표는 결국 회사를 떠나게 된다. 김 대표는 이후 직접 회사를 차리고 ‘안토니오’라는 브랜드로 구두를 생산하면서 1990년대부터 서서히 구두업계에 탄탄한 강소기업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생산에서부터 검수, 판매까지 구두와 관련한 다양한 그의 경험이 회사 성장에 밑거름이 된 것은 당연했다.

안토니오가 국내 컴포트화 1위 업체로 부상하게 된 것은 2011년 이탈리아 브랜드 ‘바이네르’를 인수하면서부터다. 김 대표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바이네르 경영 상황이 어려워지자 자금을 끌어들여 회사를 인수하고 현재 연매출 500억원대 회사로 성장시켰다.

평생 구두밖에 모르고 살았던 김 대표지만 회사가 안정궤도에 오르고 난 뒤부터는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도 하고 있다. 매년 5월 전국을 돌며 효도잔치를 벌이는 것은 물론, 젊은 층의 취업난 해소를 위해 경북대와 손잡고 오는 2026년까지 5억5,000만원을 지원해 ‘김원길 창업스쿨’을 운영하기로 했다. 김 대표는 지난달 국립합창단 이사장이라는 직함도 새로 얻었다. 효도잔치 등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부를 노래를 직접 작사해 공연하는 등의 노력을 인정받은 것 같다고 그는 설명했다.

김 대표는 향후 계획을 묻는 질문에 자신이 직접 작사한 노래를 인용하며 이 같이 밝혔다.

“힘들어도 괜찮습니다. 오뚝이처럼 일어나면 밝은 날이 온다는 믿음을 가지고 회사를 키우고 사회에 더 많은 공헌을 하고 싶습니다.”

민재용 기자 insight@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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