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권순태 “한국 팀이라 지고 싶지 않았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알림

권순태 “한국 팀이라 지고 싶지 않았다는 말의 진짜 의미는…”

입력
2018.10.26 06:00
수정
2018.10.26 08:32
26면
0 0

 가시마 GK 권순태 단독인터뷰 

 “경기 중 행동 무조건 잘못 인정” 

 “문제의 발언, 한국 악감정 절대 아냐” 

 험한 욕설과 악플 등에 가족들 충격 

 선수 향한 도 넘은 비난 지나치다는 지적 

권순태가 25일 경기 용인시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용인=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권순태가 25일 경기 용인시 카페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용인=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국가대표 출신의 축구 선수 한 명이 순식간에 ‘매국노’로 낙인 찍혔다.

일본 프로축구 가시마 앤틀러스에서 뛰는 골키퍼 권순태(34) 이야기다. 그는 개천절인 지난 3일 가시마에서 벌어진 수원 삼성과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4강 1차전에서 수원 공격수 임상협(30) 다리를 향해 발길질을 했다. 이어 자신의 머리로 상대 이마를 미는 듯한 행위를 했다. 실제 박치기로 이어지지는 않았기 때문에 주심은 권순태에게 퇴장이 아닌 경고만 줬다.

경기가 가시마의 3-2 승리로 끝난 뒤 권순태는 일본 기자와 인터뷰에서 “상대가 한국 팀이라 절대 지고 싶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 “한국 팀과 경기가 어땠나. 한국 팀이기 때문에 더 지기 싫은 게 있었냐”는 일본 기자의 질문에 그가 답하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었다. 그러나 권순태가 이 말을 하게 된 배경과 앞뒤 맥락이 뚝 잘린 채 “한국 팀이라 더 이기고 싶었다”는 문장만 부각돼 한국 언론을 통해 기사화되면서 국내 팬들의 공분을 샀다. 일부 팬들은 반일 감정을 섞어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외칠 XX’ ‘돈만 주면 나라도 팔아먹을 놈’ ‘현대판 이완용’ 등의 원색적인 비난을 쏟아냈다.

2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4강 2차전 뒤 가시마 권순태(왼쪽)와 수원 염기훈이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2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4강 2차전 뒤 가시마 권순태(왼쪽)와 수원 염기훈이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수원=연합뉴스

24일 수원에서 벌어진 두 팀의 4강 2차전은 한일전 국가대표 경기처럼 달아올랐다. 가시마 팬들은 ‘우리는 권순태를 위해 싸운다’와 같은 현수막을 준비해 원정 응원을 나섰고 수원 팬들은 그들대로 권순태를 향해 거센 야유를 쏟아냈다. 2차전은 3-3으로 끝났고 가시마가 1,2차전 합계 6-5로 수원을 제치고 결승에 올랐다. 사건 후 국내 언론과 인터뷰를 하지 않던 권순태를 2차전 다음 날인 25일 경기 용인시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차전 때 왜 그렇게 흥분했나.

“핑계 같긴 하지만 이 이야기부터 해야겠다. 경기 직전 원정 응원을 오신 수원 팬들 앞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수원 팬들의 ‘안티 콜’은 당연한 거니 개의치 않았다. 그런데 그 중 한 분이 갑자기 ‘권순태 개XX’라고 크게 욕을 했다. 당황스럽고 어이가 없었다. 같이 있던 수원 팬들도 놀란 듯 그 사람을 보고 있더라. 일본 어린이 팬들도 한국 욕을 알아들은 듯 했다. 기분 나빴지만 부끄럽기도 했다. 그 때부터 조금 평정심을 잃었던 것 같다.”

-임상협과 신경전을 벌인 상황은.

“수원 (염)기훈이 형 슛을 가까스로 쳐냈는데 파란 유니폼(수원 임상협) 선수 한 명이 문전으로 확 들어오더라. 슛을 못 하게 하려고 왼 손으로 공을 툭 쳐서 올렸는데 상협이 팔이 내 겨드랑이 사이로 들어왔다. 우리가 연이어 실점까지 한 뒤라 그런지 나도 모르게 흥분했다. 내가 자중했어야 했다. 반성한다. 다시는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날 인터뷰에는 가시마 구단에서 권순태 통역을 맡고 있는 김영하 씨도 동석했다. 권순태는 김영하 씨와 함께 20여일 전, 논란이 시작된 1차전 직후 일본 언론과 했던 인터뷰를 복기했다.

-당시 상황이 어땠나.

“공동취재구역에서 한 일본 기자가 ‘한국 팀과 경기가 어땠나. 한국 팀이기 때문에 더 지기 싫은 게 있었냐’고 물었다. 나는 ‘한국 팀이라 지고 싶지 않은 것도 있었고 수원이 나의 전 소속 팀 전북을 (8강에서) 이기고 올라온 팀이라 더더욱 그랬다’고 답했다. 그 기자는 또 ‘우치다(가시마의 간판 수비수)가 경기 후 권순태 덕분에 스위치가 들어갔다(분위기 전환이 됐다는 뜻)는 인터뷰를 했는데 알고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건 못 들었다. 나는 경기 중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을 했다. 흥분했고 감정 컨트롤을 못 했다. 잘못된 행동이지만 우치다 말처럼 팀에 변화를 줬다면 좋은 행동은 아니었어도 결과적으로는 필요했던 것 같다’고 답했다.”

권순태가 4강 1차전에서 보여준 모습은 비판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 행동과 경기 후 그의 발언을 한데 엮어 한일간 감정 싸움으로 몰아가고 선수 한 명을 역적 취급을 하는 행태 역시 도를 넘은 처사라는 지적이 높다.

권순태도 이 대목을 해명할 때 목소리가 가장 떨렸다.

“경기 중 내 행동에 대한 손가락질과 비난은 달게 받겠다. 그러나 한국 팀이라 지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 건 상대인 수원에 지고 싶지 않다는 의미였다. 일본 기자 질문에 답하다 보니 나온 말일 뿐 한국에 악감정을 품은 게 절대 아니다. 내가 그 답을 하게 된 배경과 앞뒤 맥락은 온데 간데 없이 한국 언론에 기사가 나가고 일이 커져 너무 당황스럽고 충격을 받았다.”

국가대표 훈련 중인 권순태. 그는 31세의 늦은 나이인 2015년에 A매치 데뷔전을 치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국가대표 훈련 중인 권순태. 그는 31세의 늦은 나이인 2015년에 A매치 데뷔전을 치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대한축구협회 제공

권순태 키는 184cm다. 골키퍼 치고 작은 키지만 끊임 없는 노력으로 순발력과 판단력을 키워 한국 최고 수문장 반열에 올랐다. 파주종고-전주대 출신인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선수는 아니다. 그러나 2006년에 전북에 입단한 뒤 중간에 상주 상무에 입대한 기간을 빼고 10시즌을 줄곧 한 팀에서 뛰었고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연속 K리그 최우수 골키퍼에 뽑혔다. 권순태는 실력에 비해 대표팀과 인연이 없어 ‘비운의 선수’라는 말도 들었지만 지난 2015년 9월 서른 한 살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A매치 데뷔전을 치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성실하고 한결 같던 선수가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순식간에 역적으로 낙인이 찍혔다.

“내가 일본 팀으로 이적했고 사건이 벌어진 날이 개천절이었고... 어쩌겠나. 선수의 숙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화려한 선수도 아니고 스타도 아니다. 스스로에게 ‘네가 정말 좋아하는 축구를 열심히 하고 있느냐’고 끊임없이 반문하며 운동하는 축구 선수 중 하나일 뿐이다. 앞으로도 그런 마음을 잊지 않고 운동하겠다.”

한 순간에 역적으로 낙인 찍히며 가족들도 고통을 겪어 가슴 아팠다고 털어놓은 권순태. 용인=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한 순간에 역적으로 낙인 찍히며 가족들도 고통을 겪어 가슴 아팠다고 털어놓은 권순태. 용인=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일부 사람들이 아내, 얼마 전 돌이 지난 어린 아들에게까지 입에 담기 험한 말들을 쏟아냈다고 하던데.

“(잠시 말을 잇지 못하며) 차라리 내 얼굴에 직접 대고 욕을 했으면... 그 분들은 그냥 타자를 쳤을 뿐이지만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만약 서로 반대가 된다면 어떨까... 그 생각을 한 번만 한다면 그런 글들을 쓸 수 있을까...”

-위로가 된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전북 팬들이다. 나중에 알았는데 나에게 달린 악플 밑에 그 분들이 하나하나 반박 글을 달아 주셨더라. 전북 팬들께서 ‘우리가 2차전에 100명 정도 응원 갈 테니 걱정 마라’고 아내에게 SNS 메시지를 보내셨고 진짜 경기장에 와 주셨다. 직접 보니 울컥했다. 경기 후 그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었는데 또 다른 오해를 불러올 까봐 하지 못했다.”

-1차전 3일 뒤인 6일에 후배 임상협에게 사과 문자를 보냈다고 들었다. 이 사실은 23일께 뒤늦게 알려졌다. 진작 밝혔으면 비판 여론이 좀 더 수그러들 수도 있었을 텐데.

“내가 잘못했으니 당연히 먼저 사과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당사자인 우리 두 선수의 일이다. 외부로 알려 여론을 누그러뜨리거나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사건이 커진 뒤 가시마 동료들의 반응은

“우치다를 비롯한 선수들이 ‘우리는 너의 친구다. 우리가 앞에서 막아줄 테니까 신경 쓰지 마라’고 말해줬다.”

전북 소속이던 2016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활짝 웃고 있는 권순태. 프로축구연맹 제공
전북 소속이던 2016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한 뒤 활짝 웃고 있는 권순태. 프로축구연맹 제공

권순태는 챔피언스리그와 인연이 깊다. 전북 입단 첫 해인 2006년에 신인인데도 곧바로 주전 자리를 꿰차며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섰다. 10년 뒤인 2016년에도 붙박이 수문장으로 두 번째 우승의 영광을 함께 했다. 일본의 명문 구단이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매번 16강 문턱을 넘지 못하던 가시마는 화룡점정을 위해 2016년 겨울, 전북에 약 11억 원의 이적료를 주고 권순태를 영입했다. 서른이 넘은 골키퍼에게 이 정도 이적료를 지급하는 건 드문 일이다. 가시마는 권순태에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위해 당신이 꼭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두 번이나 경험했는데.

“가시마가 나를 영입한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챔피언스리그 우승이다. 내 우승 경험이 이번 결승에서 좋은 결과로 이어지길 바란다.”

가시마는 11월 3일 홈 1차전에 이어 11월 10일 원정 2차전을 치른다. 결승 상대인 이란의 페르세폴리스는 ‘원정 팀의 무덤’으로 악명 높은 테헤란의 아자디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쓴다. 권순태는 울리 슈틸리케 전 감독 시절이던 2016년 10월 국가대표 소속으로 이란과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예선 4차전을 뛰기 위해 아자디를 방문한 적이 있다. 당시 김승규(28ㆍ빗셀 고베)가 주전 수문장으로 뛰었고 권순태는 벤치를 지켰다. 한국은 무기력하게 0-1로 패했다.

-지옥의 아자디 원정을 떠나야 하는데.

“일본 동료들에게 ‘아자디 원정은 너희들이 상상하는 그 이상’이라고 말해줬다. 10만 가까운 관중의 함성은 5~6만과는 전혀 다르다. 중동 특유의 문화, 다른 기후 등 어려운 점이 많을 거라는 걸 각오하고 있다. 동료들과 홈 1차전 때 확실한 결과물을 내놓고 2차전으로 가자고 다짐했다.”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대한 염원이 더 클 것 같다.

“가시마 구단도 나도 우승이 정말 간절하다. 한일 최초로 양 쪽 리그에서 모두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한 선수가 되고 싶다.”

용인=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