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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수사기관 간부(섭섭하단 말을 달고 사는 그를 ‘섭섭이’라 해 두자)와 통화를 하다가, 역시나 서운함이 듬뿍 담긴 하소연을 들었다. 인사를 앞둔 섭섭이는 이미 자신의 앞날을 예측하고 있는 듯, 한껏 풀이 죽어 있었다.

어느덧 찬바람 부는 계절이 왔다. 관가에서는 인사 얘기가 조금씩 나올 시간이다. 바쁘기만 했던 업무 대신 삼삼오오 모인 공무원들 입에서는 온통 인사 얘기가 꽃을 피울 터. “A과장 승진 한다는데.” “그래? 그럼 B과장이 물을 먹겠네.” “너는 누구 라인이야?” “이번에 C차관 라인은 동아줄을 잡았다던데?” “D과장은 E 전 수석 친구라는데, 이번에 부이사관 승진 어렵겠네.”(최근 들은 실제 이야기들이다) ‘타고난 관운’의 소수가 나오고, 연거푸 뒷전으로 밀리면서 ‘인포공(인사 포기 공무원)’을 자처하는 이가 등장하는 것도 이 때다.

인사에 만족한 소수와 그렇지 못한 소수가 갈리면 숨어 있던 ‘섭섭이’가 여지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검사장 승진에 탈락한 검사, 후배가 1급 고위직에 오르는 걸 지켜본 정부부처 국장. 경찰의 별(경무관)을 끝내 달지 못한 고참 총경. 지금껏 물 먹은 이들 여럿을 만났지만, 공히 ‘섭섭한 마음’이 문제였다. 간과 쓸개 다 빼가면서 온몸을 던졌건만, 결과가 이것인가. 내 고생을 조직이 몰라준다는 것이다. 작년 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인사 평가가 공정하냐’는 질문을 직장인들에게 했는데, 응답자 63%가 ‘그렇지 않다’고 답했다고 하니 분명 관가의 일만도 아닐 것이다.

따져보면 섭섭함이란 게 참 질기고도 고약한 감정이다. 한 번 고개를 들면 다스리기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섭섭한 마음을 불쑥불쑥 키우는 비교 대상, 동기 후배 선배 얼굴이 문득문득 떠오른다. 마음 속에 똬리 튼 감정이 다른 얼굴 하나를 떠올리는 순간 두 배, 세 배 몸집을 키워가기 일쑤다.

옆에서 지켜보는 입장에선 해줄 말이 별로 없다는 게 안타깝다.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지냈고, 아직까지 검찰 내에서 신망을 받고 있는 한 인사는 ‘인사에 물 먹은’ 후배를 앉혀두고 “이 사람이 왜 안 되냐”고 인사담당자에게 직접 따졌다는데, 이런 사람을 만나는 건 ‘천운’에 가깝다. 그저 욕심과 기대를 내려놓자는 말 정도가 전부. 근데 그게 또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래서 다수는 결국 침잠을 택한다. 박력 있게 사표를 던지자니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저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거다. 섭섭함은 의욕상실로, 낮은 의욕은 업무성과 하락으로 이어지기 마련. 개인 입장에서야 ‘그저 낙오’지만, 조직 입장에서는 전반적인 분위기 침체로 이어지는 ‘위험 요소’다.

이때 중요한 게 리더의 자세다. 최악은 “100% 만족하는 인사 따위는 없다”거나 “리더가 조직원 불만에 일일이 대응해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찍어 누르는 경우다. 으레 일어나는 일로 여기고 덮어 버리는 리더도 마찬가지다. 조직 균열은 통상 조그만 개인의 불만에서 시작되는 법인데, 불만은 수많은 필터를 통해 걸러지고 포장돼 리더 귀에 들어갈 때가 많다. ‘내가 맡은 이후 큰 분란은 없었으니 우리 조직에는 문제가 없다’는 안일한 자세로 대처하면서 조직은 그렇게 골병을 앓게 된다.

침체의 전염력은 활력의 그것보다 강하다. “모르는 뒷거래가 있지 않았나”하며 퍼지는 의심도 치명적이다. 그래서 인사가 만사라고들 하고, 다수가 납득 못할 인사가 반복되면 조직 안정은 금방 무너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인사는 조직에 더 많은 기여를 할 똘똘이가 아니라 묵묵히 불만을 버텨 나가는 섭섭이들을 떠올려가며 채워나가는 퍼즐일 지도 모르겠다. 내 인사권이 누군가에겐 지우지 못할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리더의 배려, 지금도 어딘가에서 있을 섭섭이들의 희망사항이다.

남상욱 사회부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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