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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는 불행보다 말하는 불편을 택하라”

입력
2018.11.03 09:0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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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불편러 저자들의 생각은]

곳곳에서 프로불편러들의 순기능이 목격되고 있음에도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프로불편러=모난 돌’이라는 인식이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다. 때문에 사람들은 조직 안에서 눈에 띄게 불만을 밝혀 프로불편러로 낙인찍히지 않으려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한다.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해 “당당하게 불편해하라”며 불편함 표출의 당위를 설명한다.

[저작권 한국일보]'프로불편러 일기' 위근우 지음. 한울출판사 제공. 박구원기자
[저작권 한국일보]'프로불편러 일기' 위근우 지음. 한울출판사 제공. 박구원기자

◇불편함 해소 위한 첫 단계 ‘공적 발화’

책 ‘프로불편러 일기’를 쓴 위근우씨는 일상 속 작은 불편함도 허투루 넘기지 않아야 한다고 말한다. 작은 불편함을 표출하는 게 쌓여 누구나 마음껏 불편을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프로불편러의 사회적 효능이 적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발산할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이다. “TV 프로그램에서 ‘동네바보’라는 표현을 쓰고 일상에서 ‘연애고자’(연애를 잘 못하는 이들을 일컫는 인터넷 용어)라는 말을 하는 걸 보면서, 우리 사회가 발달장애나 성불구자를 쉽게 희화한다고 느껴져 불편했어요.” 위씨는 누군가에겐 사소해 보일 이러한 표현을 자신이 접할 수 있는 통로를 통해 자주 알려 ‘변화’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과정을 공적 발화라는 표현으로 설명했다. “특정인을 비하하는 발언이 TV에 노출됐을 때 시청자들은 방송국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 계속 불편함을 표출하고 TV, 책, 신문 등은 잘못된 표현을 바로 잡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특정 표현이 잘못됐다는 사회 합의가 생기면 일상에서도 사람들이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데 더욱 조심하게 됩니다.”

위씨는 책에서도 이러한 생각과 프로불편러로써의 다양한 경험담을 소개했다. 일례로 위씨는 언론의 부적절한 젠더(genderㆍ성) 의식에 대해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특정 언론사를 꼬집으면서 “수면내시경 진찰을 받으러 온 환자를 성추행한 의사 관련 기사에 ‘대장내시경女’라는 제목을 달았다가 비난 여론에 부딪혀 사과한 언론사가 있다”라며 “이것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 기사에서 피해자에게 ‘00女’라 부르는 걸 당연시하던 언론 관행과 연결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위씨에 따르면 이러한 지적이 공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공적 발화이다. 그는 발화에 이어 언론의 왜곡된 젠더 의식을 바꾸기 위한 실제 행동에 나섰다.

“’00녀’라는 제목이 달린 기사를 접할 때마다 언론사 트위터 계정 등을 찾아가 잘못된 표현이라는 멘션을 남겨왔어요. 최근에는 일반 시민들도 언론사 홈페이지나 SNS에 비슷한 지적을 하는 사례를 쉽게 발견할 수 있어요. 한 통신사가 이 지적을 받아들여 표현을 수정하기로 하는 등 공적 발화의 좋은 선례가 쌓이고 있습니다.”

[저작권 한국일보] '불만의 품격' 최서윤 지음. 웨일북 제공. 박구원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불만의 품격' 최서윤 지음. 웨일북 제공. 박구원기자

◇당연시한 사회 규범에 의문부호를

잡지 ‘월간잉여’의 편집장이었던 최서윤씨는 “사회구성원들이 일상에서 겪는 불편함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어딘가 닮아있다”라며 “이는 분명 (불편함을 초래하는)구조가 존재하고, 이것이 반복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소개한 에피소드를 통해 이 같은 구조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고 지적했다. “‘오빠’라는 말이 간지럽고 불편해 오빠로 불리고 싶어 하는 사람의 지속적인 강요를 귀로 흘리며 ‘00님’이라는 호칭을 고수하다가 ‘이상하고 특이한 애’라는 딱지가 붙었어요. 외모나 옷차림에 대해 놀리고 낄낄대는 걸 좋아하는 이에게 ‘개선 방향을 조언해 주는 것도 아니고 그저 놀리는 것은 상대의 자존감을 깎을 뿐’이라고 정색했다가 ‘그래 가지고 사회생활이 가능하냐’는 공격을 받았어요. 그래서 그런 사회생활을 안 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평범한 현대인들이 모두 사회생활을 거부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대부분은 조직 논리 속에서 다양한 불편함을 겪으면서도 이를 표출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최씨는 이를 타파하기 위해선 우선 그간 개개인이 당연하다고 여겨왔던 사회규범을 다 같이 의심해보고, 그것이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책 속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촉구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2016년 겨울의 광장을 예로 들면서 청와대로 통하는 길을 막고 선 차벽에 다양한 메시지가 적힌 스티커를 붙였던 시민들이 오후 10시 무렵부터 직접 이를 떼어냈던 점을 상기했다. “집에 와서 관련 뉴스를 보니 일부 언론이 ‘착하고 성숙한’ 시민들을 칭송하고 있었어요. 스티커를 떼는 행동에 의문이 생겼죠. 남의 시선이나 평가를 의식한 강박이자 내재된 억압처럼 느껴졌어요. 그동안 기득권이 공교육과 언론을 통해 주입한 규범을 하나하나 의심해 보는 자세를 가져야 해요.” 이 같은 자세를 대다수가 갖게 되면 ‘불편러’를 유별난 사람으로 취급하는 문화도 서서히 바뀌고, 쉽게 불편함을 토로할 수 있는 사회가 된다는 의미다.

문화가 바뀐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볼 수는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불편과 부당함을 겪은 사람이 이를 공론화하면 당사자도 2차 피해를 입는 일이 비일비재해요. 외부에 자신의 존재를 알리지 않고 조용히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 중요하다는 의미죠. 불편함과 부당함을 표출한 일반인이 언론이나 공권력에 기대지 않고도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회사, 학교, 커뮤니티 등에 작은 단위의 조정위원회가 많이 생겨야 합니다.”

박주희 기자 jxp93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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