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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깨, 왕서방... 화교에 대한 편견은 어디에서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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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깨, 왕서방... 화교에 대한 편견은 어디에서 왔나

입력
2018.10.26 04:40
수정
2018.10.26 08:5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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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희의 '화교가 없는 나라' '한반도 화교사' 

서울 구로 가리봉동이 재개발되면서 재한중국인들은 주거비가 비교적 저렴한 대림동으로 이동했다. 2000년대 초반 형성된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대림차이나타운에 거주하는 재한조선족만 2015년 기준 2만6,652명이다. 동아시아 제공
서울 구로 가리봉동이 재개발되면서 재한중국인들은 주거비가 비교적 저렴한 대림동으로 이동했다. 2000년대 초반 형성된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대림차이나타운에 거주하는 재한조선족만 2015년 기준 2만6,652명이다. 동아시아 제공

14일 발생한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직후 온라인에서는 범인이 조선족이라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빠르게 확산됐다. 일주일 뒤 경찰이 피의자의 얼굴과 이름을 공개하면서 루머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이번에는 그의 부모 중 한 명이 조선족이라는 추측이 나돌았다. 경찰이 나서 “피의자와 피의자 부모 모두 한국인”이라고 재차 강조하면서 루머는 잠잠해졌다.

흉악 범죄가 터지면 가장 먼저 의심받는 이는 조선족 같은 ‘내부의 외부인’이다. 같은 민족이라고 하나 중국에서 나고 자라고 삶의 근거지가 중국에 여전히 일부 남은 조선족은 편견 어린 눈으로 바라보기 쉽다. 최근엔 조선족 또는 이주노동자들이 편견의 희생양이 되기 마련이지만, 이전에는 화교가 ‘마녀사냥’의 대상이었다. 화교는 해외에 이주한 중국인 가운데 중국 및 대만의 국적을 그대로 보유한 중국인을 말한다. 그들은 언제부터 한국 사회에서 착근했고, 어떻게 외부인 취급을 받은 걸까. 다른 나라에서는 차이나타운이 건재하고, 화교가 재력을 바탕으로 만만치 않은 정치ㆍ사회적 영향력을 행사하는데 한국에서는 화교가 왜 별반 힘을 쓰지 못하는 걸까. 우리 사회가 품은 오래된 질문이다.

1882년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의 요청으로 조선에 파견된 중국 무장 오장경(吳長慶ㆍ1833~1884)의 부대와 함께 온 상인들이 한반도 화교의 시초라고 보면 이들의 역사만도 137년이다. 기자 출신인 저자는 이 긴 시간을 훑으며 앞의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다. 그는 재일 한국인의 차별문제를 취재하다 거꾸로 한국 사회 내 화교의 차별문제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를 고발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화교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는 20년이 걸렸다.

책은 대중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소재로 무겁지 않게 구성됐다. 15가지 주제로 나뉜 책은 언제부터 중국인들이 한반도에 살게 됐는지, 왜 인천에 차이나타운이 생겼는지, 짜장면은 어디서 유래한 건지, 북한에도 짜장면이 있는지, ‘짱깨’와 ‘짱꼴라’ 등 중국인을 비하하는 비속어는 어디서 유래했는지, ‘왕서방’은 누구를 말하는 건지, 명동성당 건축에 화교들이 동원된 이유는 뭔지, 서울 시내 가장 유명했던 중화요리점이 문을 닫은 이유는 왜인지, 일제강점기에 화교는 어떻게 살았는지 등 흥미로운 질문에 답하며 현재 약 60만명에 달하는 화교의 삶을 설명한다. 통시적으로 구성된 역사서라기보다 화교의 경제ㆍ사회 생활을 서술한 교양서다. 책이 유발한 흥미를 연구로 잇기 위해 방대한 양의 화교 연구 자료를 실은 ‘한반도 화교사’를 함께 출간해 대중성과 학문성 두 마리 토끼를 쫓는다.

인천 중구 신포시장 일대는 1900년대 초반 화교가 많이 거주하던 지역이었다. 한국으로 이주한 화교는 빈터에서 재배한 채소를 판매했는데, 이를 기념해 만든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동아시아 제공
인천 중구 신포시장 일대는 1900년대 초반 화교가 많이 거주하던 지역이었다. 한국으로 이주한 화교는 빈터에서 재배한 채소를 판매했는데, 이를 기념해 만든 조형물이 설치돼 있다. 동아시아 제공

책은 그간 화교에 대한 편견에 둘러싸인 우리의 민낯을 까발린다. 조선에서 포목상을 운영하던 화교 지배인을 불렀던 호칭인 장궤(掌櫃)에서 와전돼 ‘짱깨’가 됐다는 사실을 알면, 장난 삼아 내뱉은 말을 주워담고 싶다. 황색의 춘장을 사용하는 중국 본토 짜장면이 고급 요릿집에서나 맛볼 수 있었던 요리라는 사실을 알면 ‘짜장면이나 한 그릇’이라는 말이 쑥 들어간다. 신선하고 다양한 채소재배 기술로 조선의 채소시장을 좌지우지했다는 사실을 깨달을때 쯤이면 마냥 중국산이라고 손가락질할 수 없다.

책은 삶에 깊게 배인 편견을 하나씩 걷어내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국인이 화교에 갖게 된 차별적 인식은 근대 조선,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들을 핍박해 이익을 취하고, 부를 누리기 위한 것이었음을 가슴 아프게 전한다. 1920~30년대 화교가 뛰어난 기술과 특유의 성실함으로 한국 시장을 장악하면서 일자리를 잃은 조선 노동자들의 반감은 1931년 화교배척사건으로 드러난다. 중국 당국의 재만 조선인에 대한 탄압과 일제의 이간책에 의해 발생한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은 한반도에서 억눌러져 있던 화교에 대한 반감을 폭발시킨 기폭제 같은 역할을 했다. 화교배척사건으로 조선화교 200여명이 살해되고, 화교 경제는 초토화됐다.


 화교가 없는 나라 

 이정희 지음 

 동아시아 발행ㆍ240쪽ㆍ1만5,000원 


 한반도 화교사 

 이정희 지음 

 동아시아 발행ㆍ760쪽ㆍ2만8,000원 

어두운 역사를 뒤로하고 해방 이후에는 화교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고, 1992년 한중 수교로 화교 수도 점차 증가했다. 하지만 이들의 한국 내 법적 지위는 여전히 취약하다. 공무원으로 임용될 수 없고, 변호사 시험 응시 자격도 없다. 세금은 내도 복지혜택에서 제외된다. 한국민이면서 동시에 한국민이 아니다. 책 제목도 이런 그들의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우리 사회에 화교만 없을까. 당장 제주도에 도착한 예멘 난민을 비롯, 여성과 장애인, 성소수자, 비정규직 종사자 등 사회적 약자들은 같이 있지만 함께하지 못한다. 책은 화교에 대한 뿌리 깊은 한국인의 배타성만 지적하지만, 수많은 ‘또 다른 화교’를 배척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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