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 A8은 세계 최초로 지능형 전조등을 2014년 적용했으며 현재는 138개 LED와 1개의 레이저가 포함돼 있어 가시거리를 기존보다 2배 늘렸다. 아우디코리아 제공

짙은 어둠이 깔린 도로를 주행할 때면 어두운 곳에서 무엇인가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든다. 상향등을 켜 시야를 확보하고 싶지만, 반대편 차선에서 오는 차를 생각해 쉽사리 행동에 옮기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고민도 이젠 필요 없다. 상향등을 켜고 운전해도 반대편에 다가오는 차량 부분만 빛을 차단해 상대 운전자의 눈부심을 막을 수 있는 전조등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런 전조등 속에 여러 개의 램프가 들어가 있어, 상황에 따라 제각각 조율을 하는 기술이 숨어 있다. 단순히 빛을 밝혀주는 램프가 상황을 스스로 파악해 조절하는 지능형으로 진화한 것이다. 전조등 속에 숨겨진 과학을 살펴봤다.

현대모비스 서산주행시험장에 있는 세계 최장 터널 시험로에서 전조등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 현대모비스 제공
기아차 K9 전조등은 L자형 주간 주행등과 상향등, 하향등 등 LED램프가 조합된 가변형 전조등 형태로 제작돼 있다. 현대모비스 제공
◇전조등 지능화

최근 출시되는 전조등은 크게 보면 램프를 보호하는 외장렌즈, 빛을 내는 광원 모듈, 빛 일부를 차단하는 베젤, 전조등 부품 전체를 끼우는 틀인 하우징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런 기본적인 전조등 구조에 차량 내 전자제어장치(ECU)를 연결해 다양한 상황에 맞춰 운전자가 시야를 확보하도록 하고 있다.

고급 차에 많이 적용된 전조등인 ‘가변형 전조등’(AFLS)의 경우, ECU가 운전자가 가속페달을 밟는 정도와 운전대 조향각도, 차량의 기울기 등을 판단해 빛의 방향을 지시한다. 고속주행으로 보다 긴 시야가 필요한 고속도로에선 일반도로 주행 시보다 더 먼 곳까지 비추고, 곡선로에선 운전대와 연동해 램프가 차량 진행 방향으로 회전한다. 또 가로등이 많은 도심에선 주변 밝기가 충분한 만큼, 조명 길이를 줄이는 대신 좌우 폭을 넓혀 시야를 확보하기도 한다. 자동차의 내장 컴퓨터인 ECU가 전조등 빛의 움직임을 제어하도록 첨단화한 것이다.

국내에선 AFLS가 2007년 출시된 1세대 제네시스 모델에 첫 적용됐으며 싼타페, K5 최근 모델에는 운전대를 돌릴 때 진행 방향을 우선 비춰주는 기능을 추가한 ‘다이내믹 밴딩 라이트(DBL)가 들어가 있다.

다만 AFLS는 차량 내부 정보를 바탕으로 빛을 조절하기 때문에 반대편 차량 운전자의 눈부심을 차단해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등장한 시스템이 상향등 자동 제어 장치(HBA)다. 상향등으로 주행하다가 전방에 차량이 나타나면 자동으로 하향등으로 전환하고, 차량이 없으면 다시 상향등을 켜주는 방식이다. 사이드미러 등에 장착된 카메라 센서가 있어 가능한 기술이다. 디지털카메라 기술이 수천만화소급으로 발전함에 따라 차의 진행 방향 상황을 ECU가 읽을 수 있게 됐다. 르노삼성차 SM6에는 룸미러 뒤에 위치한 카메라가 가로등 불빛이나 반대편 차선 자동차의 불빛을 감지해 자동으로 하향등을 점등하거나 가장 밝은 등을 켠다.

HBA보다 한 단계 더 진화한 전조등은 최근 등장한 ‘지능형 램프’(ADB)다. 계속해서 상향등을 껐다 켜는 HBA와 다르게, 상향등 상태를 유지하며 전방 차량 등이 있는 부분만 빛을 차단한다. 카메라 센서가 차량을 인식하고 상대 운전자의 눈부심을 발생시키는 부분만 선택적으로 어둡게 했다가 차가 지나가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간다.

ADB는 스위블 타입과 매트릭스 타입으로 나뉜다. 스위블 타입은 두 개의 ‘L’자 형태 램프를 결합, 평소에는 두 램프의 빛이 교차해 앞을 비추다, 전방에 차가 나타나면 전동장치를 이용해 램프를 양옆으로 돌려, 가운데에 어두운 그림자를 형성한다.

매트릭스 타입은 여러 개의 LED 광원을 활용한다. 전방에 차량이 없을 때는 모든 LED 램프를 켜서 시야를 확보하다가 차량이 감지되면 해당 부위를 비추는 램프만 일시적으로 꺼주는 방식이다. 스위블 타입보다 미세한 빛 조절이 가능해 현재 대부분 업체가 매트릭스 타입을 선호한다.

국내 업체들도 이 기능을 개발했지만 아직 양산차에 적용하지는 않고 있다. 독일 아우디가 2014년 플래그십 세단 A8에 첫 적용 했다. 당시 A8은 좌우 라이트에 각각 25개 LED램프가 유기적으로 작동해 상대 차량 이동 경로에서만 선택적으로 빛을 차단한다. 현재 모델은 더욱 개선돼 한쪽 전조등에 138개의 LED와 1개의 레이저 램프가 들어가 있다. 차세대 광원인 레이저는 시속 70㎞ 이상 주행 시 활성화돼 가시거리를 LED등의 2배 수준인 600m로 늘려주기까지 한다.

◇자율주행 부품 적용으로 최첨단화

지능형 전조등은 자율주행 시대에 쓰임새가 더욱 커지게 된다. 운전자가 없어도 되는 자율주행차가 야간에도 스스로 주행하려면 차선이나 표지판 등 필요한 정보를 실시간으로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현대모비스가 최근 개발에 성공한 첨단 지능형 전조등(AADB)도 ADB의 일종으로, 자율주행차 시대를 대비한 기술이다. 악천후나 충분한 빛이 없는 구간에서는 전자파를 발사해 돌아오는 전파 시간을 측정해 주변 사물 등을 탐지하는 센서인 레이더 등을 활용해 뒤에서 추월하는 차량이나 빠르게 커브 길을 선회하는 차량까지 대응하도록 진화했다. 레이더 외에도 내비게이션과 전방 카메라로 차로 및 차선 정보를 수집해 차량의 도로상 위치를 정확하게 계산하는 알고리즘을 개발, 정교한 램프 조절로 시야를 안전하게 확보하면서도 빛이 중앙분리대를 넘지 못하도록 한다. 운전자가 주행할 길을 미리 파악해 광원을 조절하는 일종의 자율주행 원리가 적용된 것이다.

◇LED 개발이 전조등 스마트화 길 터

전조등에 이런 첨단 기능이 장착되는 것도 결국 빛을 조절하고 다스리는 광학 기술이 있어 가능했다. 전조등은 본래 밝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개발된 발명품이어서, 램프 발달사와 함께한다. 램프는 1900년대 초반까지 석유 연료를 이용한 가스등이, 그 이후는 백열등이, 1960년대 들어 할로겐이 차례로 주역을 맡아왔다.

할로겐등은 일반 백열등과 원리는 비슷하지만 유리구에 할로겐 가스를 넣어 텅스텐 증발을 억제, 상대적으로 환한 빛을 내면서도 수명이 2배 이상 길어진 것이 특징이다. 크기도 작고 가벼워서 자동차 전조등, 무대조명, 인테리어 램프 등의 광원으로 널리 사용됐다. 무엇보다도 가격이 저렴하고 교환이 쉽다는 장점 때문에 아직도 많은 차에 사용되고 있다.

다만 발열이 심해 에너지 낭비가 크다는 단점이 있어, 90년대에 개발된 고휘도가스방전(HID)램프나 발광다이오드(LED)램프 등으로 대체되고 있다. LED는 전기에너지를 빛에너지로 변환시켜주는 광반도체를 결합한 것으로, 전력 소모가 할로겐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고 수명은 반영구적이다. 자외선과 적외선, 가시광선 등을 모두 표현할 수 있어 램프색을 다양하게 제작할 수 있다.

LED의 발달로 지능형 전조등 개발이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각각의 광원을 따로 조절하기 위해선 램프의 소형화가 필수이기 때문이다. LED를 이용한 디스플레이에 마이크로칩이 사용되면 광원 부분의 부피가 작아 변형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램프 디자인적인 면에서 제약이 사실상 사라진 것이다.

글로벌 리서치 업체 DVN비전은 LED가 2025년 이후 5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할로겐과 HID 광원은 각각 2030년, 2025년을 기점으로 시장에서 퇴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현대 모비스 관계자는 “국산 차 전조등도 할로겐에서 LED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며 “같은 차종이라도 고급트림에선 LED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고, 고급 차일수록 LED를 채택한다”고 말했다.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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