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이 칼럼을 쓴 지 어느새 일 년입니다. 곧 선생님께서 떠나신 시간이기도 합니다. 슬픔과 죄책감을 가눌 수가 없는데 선생님의 공간을 이어가야 하다니, 일 년 전 참으로 당혹스러웠습니다. 선생님 평론을 언급해야 하는 글을 청탁받았을 때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몇 번을 주저하며, 그래도 저는 선생님이 남기신 작고 낡은 나무 의자에 이렇게 앉아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선물하신 색연필을 들여다보며 어떤 그림을 그릴지 종종 생각에 잠깁니다.

제가 쓰는 글에 제 시를 인용하다니… 어처구니없는 일을 처음으로 벌였습니다. 이 시는 선생님을 아는 사람만 알고, 그들끼리 아파할 수 있는 암호로 되어 있습니다. 그 땐 그만으로 충분했지만 지금은 암호를 풀이할 여유가 생긴 듯하니, 시간과 망각을 거역할 수 없는 인간의 마음이란 게 부끄럽습니다.

평론가, 편집자이면서 창작도 하셨던 선생님의 소설집 제목은 ‘첫날밤의 고백’ 이지요. 저는 책을 읽지도 않은 채, 어찌 그런 제목을 붙이셨냐며 깔깔댔습니다. 저처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여성도 존중해주시고, 제가 아는 한 권력으로 부당한 행동을 하지 않으셨기에 가능한 태도였겠죠.

아직도 소설은 읽지 못했습니다만 선생님의 평론집 ‘어린이문학을 보는 시각’과 ‘해묵은 동시를 던져 버리자’ 만큼은 여전히 몇 번씩 거듭 읽고 있습니다. 어린이문학에 대한 선생님의 철학을 새롭게 깨닫고, 되새기게 되니 엄연히 제 평론의 길잡이입니다.

선생님의 청소년기 독서 체험으로, 깊은 흥미와 관심을 갖고 연구, 활동하신 SF는 오늘날 어린이문학에 완연히 뿌리내린 듯 보입니다. 여러 은하가 뿜어내는 고유의 빛이 어린이문학을 더욱 풍성하고 활기차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10월의 마지막 날 밤에는 ‘첫날밤의 고백’과 함께 소설집 ‘사랑으로 만든 집’과 동화 ‘궁금해서 못 참아’를 읽어야겠습니다. “재미있다”고 매번 자랑하시고 자신만만해 하셨으니, 정말 그런지 아님 훌륭한 평론가도 자기 작품에는 객관적이기 힘든지, 꼭 확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선생님.

김유진 어린이문학평론가ㆍ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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