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기행] <2>산시성 뤼량 치커우고진 ②시완촌과 헤이룽먀오

황하와 초수가 만나는 마을 치커우는 ‘구곡황하제일진’으로 불린다.

리자산촌에서 만난 가오보(高波) 선생 부부의 자가용을 타고 치커우고진(磧口古鎭)으로 내려왔다. 굽이굽이 흐르는 황하, 구곡황하제일진(九曲黄河第一鎭)이라 자랑할만큼 치커우고진은 예부터 상업이 발달했던 마을이다. 동북쪽에서 흘러온 초수(湫水)가 황하와 만나는 강변마을, 황토가 가라앉은 모래톱도 황하를 따라 오가는 배들이 부두에 닿을 때마다 왁자지껄했으리라.

◇중국 최초의 역사문화 명촌 시완촌

가오 선생과 함께 초수를 따라 시완촌(西灣村)으로 갔다. 치커우고진에서 약 1km 동쪽으로 떨어진 촌락이다. 명나라 말기부터 황하 운송과 장사로 번창한 진(陳)씨 집성촌이다. 담백하면서도 세밀한 벽돌 조각으로 치장한 집40여채가 나란히 들어섰다. 거의 직선에 가깝게 뚫린 골목길은 모두 다섯 개. 진씨 집안의 다섯 갈래가 각각 골목 하나씩을 차지하고 살았다. 분가하면 골목 하나가 더 생겼다. 골목길은 오행(木火土金水)을 따라 이름 지었다. 가장 먼저 자리잡은 동쪽을 목항(木巷)이라 불렀다.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누리라’는 죽포송무(竹苞松茂) 편액을 대문에 새겼다. 상인의 저택답다.

치커우고진 대략 위치. 구글맵 캡쳐.
시완촌 여행지도, 오행으로 골목 이름을 지었다.
오행으로 지은 ‘목항’ 골목길.
시완촌 죽포송무원 대문 양쪽에 재물신 벽돌 조각이 새겨져 있다.

중국 국가문물국은 2003년 10월 전국의 수많은 촌락 중에서 역사문화 명촌(名村) 12곳을 선정해 발표했다. 처음 공개하는만큼 심사숙고한 흔적이 엿보인다. 나중에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만 각각이 역사와 문화, 특히 건축 예술에서 엄청난 내공을 담고 있다. 기초 행정단위인 촌락을 대상으로 대체로 2년 간격으로 선정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276곳이 명촌으로 선정됐다. 화폭에 건축물을 담는 학생들이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도 이방인에게는 볼만한 풍광이다. 아름다운 촌락에는 늘 이런 풍경이 연출된다.

가오 선생이 길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바닥에 지도를 그려가며 설명을 하고 있다. 철도 공무원인데 인정이 넘치고 참 친절하다. 어슬렁거리며 마을을 둘러보는데 지붕 위에 연분홍 꽃이 보인다. 100년 이상 되어야만 지붕에서 솟아난다는 바위솔이다. 중국말로는 와타화(瓦塔花) 또는 와쑹(瓦松)이라 부른다. 기와 위에서 피는 모양새가 탑이나 소나무처럼 보여서다. 바위를 뚫고 나올 만큼 생명력이 강해 항암 효과가 탁월하다고 알려졌다. 기와 사이로 꼿꼿하게 자란 바위솔, 전통가옥이 더욱더 고풍스럽다.

시완촌 건축물을 그리는 학생들.
가오 선생 부부와 시완촌 골목을 거닐었다.
시완촌 지붕의 바위솔.
치커우고진의 동굴집 객잔.
||| ◇황하와 더불어 살아온 강변마을, 치커우고진

치커우고진 중심가로 이동했다. 가오 선생 부부가 전날 묵은 객잔에 방 하나를 얻어 짐을 풀었다. 황토 동굴집 야오둥(窯洞)을 개조한 객잔이다. 고진을 이미 둘러본 부부와는 저녁을 함께하기로 약속하고 마을 구경을 나섰다. 황하를 따라 산비탈에 다닥다닥 붙여 집을 지었다. 지붕 위로 올라가 유유히 흐르는 황하를 바라보니 감개무량하다. 칭하이성 바옌카라(巴颜喀拉)산에서 발원해 발해만까지 5,464km를 흐르는 황하. 지형도 바꾸고 범람도 하지만 내륙과 해안을 연결하는 무역로이기도 하다.

/치커우고진 거리, 오른쪽이 황하다.

치커우고진 지붕에서 바라본 황하.

부두가 있던 자리 바로 앞에는 저택인 쓰허탕(四和堂)이 있다. 1820년에 4명이 공동으로 투자해 지었다. 곡식과 식용유를 취급하는 상점이자 가옥이었다. ‘창밖으로 배가 100척이고 문 앞에는 낙타가 1,000 마리였다’는 과장도 재밌다. 1940년 치커우가 해방된 이후에는 마오쩌둥의 팔로군이 건물을 사들여 신화상행(新華商行)으로 이름을 바꿔 운영하기도 했다. 지금은 치커우객잔으로 영업 중인데 200년간 변함없이 성황이다. 150명이 한꺼번에 투숙이 가능할 정도로 크다.

치커우의 특산물은 대추다. 아치형 돌문에는 대추로 이어 만든 중국 전통 매듭이 걸렸다. 집 기둥마다 대추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관염국(官鹽局)과 무역국(貿易局)도 모두 동굴집 저택이다. 소금 채취와 운송은 예로부터 관이 주도하며 사염을 금지했다. 치커우는 함수호에서 생산된 지염(池鹽) 집산지로 유명했다. 팔로군이 활동하던 1940년대에도 양식과 함께 소금은 귀중한 물품이었다.

치커우객잔으로 운영 중인 쓰허탕.
쓰허탕에서 대추를 말리는 모습, 매듭으로 만들어 더욱 운치가 있다.
벽돌로 아치형 문을 만든 쓰허탕.
◇광주 출신 정율성의 가곡 입힌 드라마 ‘연안송’ 쵤영지

치커우는 2003년 마오쩌둥 탄생 11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드라마 ‘연안송(延安頌)’의 촬영지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는 광주광역시 출신으로 중국인민해방군가를 작곡한 정율성의 찬가를 기반으로 했다. 혁명작가인 모예(莫耶)의 ‘가창연안(歌唱延安)’에 곡을 입힌 웅장한 합창 가곡으로 1938년 옌안(延安)에서 발표했다. 그 자리에 있던 마오쩌둥을 비롯한 지도자들과 청중들에게 엄청난 감격을 선물했다. 당 선전부는 제목을 ‘연안송’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드라마는 대장정과 옌안에서 지도자로 부상한 마오쩌둥, 당 중앙의 처연한 여정과 열정을 담았다. 정율성의 가락은 드라마에서 가사만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전율이 돼 13억 중국인의 가슴을 녹였다.

관염국으로 사용한 저택, 지금은 객잔이다.
‘연안송’ 촬영 당시 남긴 사진들.

“석양이 빛을 뿜어 산비탈 탑 그림자에 빛나고

달빛은 떠올라 강변 개똥벌레를 비추네.

봄바람 불어 드넓은 들판에 가득 휘날리며

온 산은 모두 견고한 병풍을 두르네.

오, 옌안이여! 이다지도 장엄하고 웅장한 고도여!

항전의 노랫가락 온 사방에 널리 퍼지네.”

연안송 노랫말의 일부다.

◇기분까지 좋아지는 행운의 빵, 훙인인빙즈

치커우고진에는 작은 성곽을 중심으로 문화거리인 명청가(明清街)가 있다. 낡은 가옥의 객잔과 가게가 즐비하다. 화로에서 굽는 향기가 일품인 샤오빙(燒餠)이 발을 멈추게 한다. 밀가루 반죽 후 설탕이나 채소를 넣어 만든 빵은 꽤 많지만, 치커우의 훙인인빙즈(紅印印餠子)는 약간 다르다. 반죽에 소를 넣은 후 붉은 도장을 찍듯 행운을 뜻하는 길상(吉祥) 문양을 넣는다. 화로에서 나와도 문양은 그대로 남는다. 맛도 달콤하지만, 기분도 좋아지는 빵이다.

상업이 발달한 마을이면 늘 호위 무술 집단 십이표국(十義鏢局)과 은행이던 대덕통전장(大德通錢莊)이 있다. 약국이던 장흥점(長興店)과 음식 재료를 팔던 천원거(天源居), 밀짚모자 가게인 의성신(義誠信), 서양 담배를 팔던 상기연초(祥記烟草)도 보인다.

치커우 샤오빙인 훙인인빙즈.
치커우고진의 가게 중 하나인 장흥점(약국).
◇흑룡대왕을 모시는 헤이룽먀오

아담한 뒷산인 와호산(卧虎山)을 오르는데는 15분이면 충분하다. 마을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정상에 사당이 하나 있다. 중국 전역을 꽤 돌아다녔지만 헤이룽먀오(黑龍廟)가 있다니 놀랍다. 전형적인 쓰허위엔(四合院)의 포석으로 사당이 만들어졌다. 산문을 지나면 벽돌로 쌓은 아치형 악루(樂樓)에 신궁보계(神宮寶界)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사당에는 흑룡대왕(黑龍大王)과 황하의 신 하백(河伯), 바람을 움직이는 풍백(風伯), 재물의 신 관제(關帝)를 봉공한다. 선박이 오가는 상인 마을에 딱 어울리는 ‘신의 궁전’이라 아니할 수 없다.

헤이룽먀오를 오르며 바라본 모습.
헤이룽먀오 악루 대문과 ‘신궁보계’ 편액.

동쪽 종루와 서쪽 고루, 검은 용왕을 모시는 정전(正殿) 양쪽에 붙은 이전(耳殿) 두 칸, 마당 양쪽에 곁채인 상방(厢房)까지 갖춘 구조다. 검은 낯빛의 용왕을 만나니 다소 낯설다. 익숙해졌다 싶은 시간이 흘렀지만, 다시 보고 또 놀라고 말았다. 천정으로 불쑥, 불을 뿜고 떨어질 듯한 용 두마리가 나타났다. 문양이나 조각물로 수없이 봤지만, 이다지도 강렬한 시선으로 내리꽂는 용은 뜻밖이다. 게다가 두마리 용은 각각 푸르고 누렇다. 흑룡을 보위히는 녹룡과 금룡, 오래 잊히지 않을 듯하다. 악루로 나오는데 세 줄 현악기를 연주하는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놀란 마음을 알았던지 몇 가닥 주무른다. 10위안(약 1,700원)을 내니 민가를 연주한다. 소리는 거칠어도 서민적 가락과 현에서 솟는 울림과 튕김에 마음이 편해진다. 재주가 많고 인정도 넘쳐 보이는 할아버지와 가벼운 오락 시간을 보내고 관망대로 올랐다. 동쪽과 서쪽을 바라볼 수 있다. 황하와 고진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동쪽은 초수이고 서쪽은 황하다.

헤이룽먀오 정전의 흑룡대왕과 용 두마리.
헤이룽먀오 악루에서 들은 할아버지의 민가 연주.
치커우고진의 중심이자 작은 성문.
◇하루 두 끼, ‘얼둔판’을 배운 발품기행

서둘러 객잔으로 돌아가 가오 선생 부부를 만나 식당에 앉았다. 탕수육과 두부볶음 요리에 산시성 명주인 펀주(汾酒)로 대화를 이었다. 이 지방 특산이니 꼭 먹어봐야 한다는 ‘볶음귀리면’ 차오여우몐(炒莜面)도 주문한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이 났다. 리자산촌에서 노인들이 왜 오전에 국수를 먹는지 궁금했다. 가오 선생은 ‘얼둔판(二頓飯)!!’이라고 강조했다. 산시성 산골 사람들의 ‘하루에 두 끼’ 먹는 습성이라고 한다. 가난한 서민들은 삼시 세 끼를 다 챙겨 먹지 못한다. 가오 선생 부인도 하루 두 끼만 먹는다고 한다. 출근하는 가오 선생은 세 끼를 먹고 자신은 한 끼를 줄여 ‘전통을 지킨다’며 웃는다.

가오 선생 부부가 주문해 먹은 차오여우몐.

치커우고진의 하루, 동굴집 객잔 침대에 누웠다. 독주가 온몸에 퍼졌다. 리자산촌 두 노인이 하루 두 끼 ‘얼둔판’을 지키는 삶에 감정이입한다. 취기로 인해 오래가지는 않았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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