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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두 얼굴의 미국을 상대하는 법

입력
2018.10.24 10:33
수정
2018.10.24 19:2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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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는 우리의 선의의 조치들에 박수를 치고 뒤에 돌아가서는 압박의 몽둥이를 계속 휘두르겠다고 하고 있으니 우리가 두 얼굴 중에 어느 얼굴과 대상해야 좋겠는가.” 지난 20일 조선중앙통신에 실린 북측 개인필명의 논평이 새삼 눈길을 끈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이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 줄 경우 핵과 미사일 실험 중단과 생산시설의 폐기뿐 아니라 현재 보유 중인 핵무기와 핵물질 모두를 폐기할 용의가 있다고 밝혔지만, 제재 유지 입장을 여전히 고수한 채 북한의 추가 양보만을 촉구하는 미국 측을 향한 불편한 속내가 그대로 엿보인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나 핵심 측근들이 북한을 향해 발신하는 메시지는 고도의 전략적 화법으로 해석된다. 미국 측은 김정은 위원장을 신뢰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반복해서 강조하면서도 제재와 압박이라는 몽둥이는 놓지 않으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믿는 것처럼 말을 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믿을 수 없다는 뜻으로도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6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문제에서 엄청난 성공을 거뒀다고 말했으며, 15일에는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북한 문제가 매우 잘되고 있다며 관계가 매우 좋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2차 북미회담 시점과 관련해서는 9월 24일에는 조만간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가, 가급적 이른 시일 내(10월 7일)에서 중간선거 이후(10월 9일)로, 이제는 아예 공식적으로 내년 1월 1일 이후가 될 것이라고 미뤘다. 11월 6일 중간선거 이후에 하는 거라면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고, 제재가 계속 유지되는 한 초조한 쪽은 북한이라는 전형적인 피 말리는 심리전을 펼치고 있는 듯하다. 종전선언도 마찬가지다. 일찌감치 해줄 듯 시사했지만 안 해 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장사꾼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는 북한과의 거래에서 무언가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있다는 판단을 유지하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브랜드정책인 ‘최대의 압박’이 북한의 비핵화 결단을 이끌어냈다는 성과를 자랑하고 싶어 한다. 더구나 미국 국민들이 낸 세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제재라는 수단 하나로 북한을 사실상 굴복시켰다는 자부심이 엿보인다. 미국의 전임 대통령들 가운데 아무도 이루지 못한 성과, 즉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자신의 차별화된 힘과 능력을 전 세계와 미국 대중들에게 과시하고 싶어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실제로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라는 목표에 도달하기 이전까지 제재가 완화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만든다. 북한은 지난해 말까지 상상하기 어려웠던 전향적인 비핵화 조치들을 선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미국의 상응조치로서 종전선언의 문턱을 낮추고 어쩌면 남북경협 재개를 위한 최소한의 대북제재 완화를 희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한 푼도 손해 보지 않으면서 최대의 이익 목표를 달성하는 최고수 장사꾼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래도 희망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미국은 북한과의 협상 판을 깨지 않으려 한다. 미 국방부는 북한을 가장 자극해 왔던 한미연합 공중군사훈련인 ‘비질런트 에이스’ 훈련의 연기를 결정했다. 실제로 이번 훈련의 중지로 대형연합훈련은 올해 4개가 중지되거나 연기됐다. 남북관계의 발전과 군사적 긴장 완화가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결단이 올바른 판단임을 확인해주면서 보다 안심하고 지속적으로 비핵화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이 될 수 있다. 우리는 남북-북미-한미 정상 간 합의들이 이행되도록 계속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한반도에서 평화프로세스를 추진 중인 한국정부의 노력을 강력히 지지한다.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말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 이 말이 두 얼굴의 미국을 상대하는 지침처럼 들린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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