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출연료 체불’ 미니다큐 만든 중견배우 “계약서 써도 한푼 못 받아"

알림

‘출연료 체불’ 미니다큐 만든 중견배우 “계약서 써도 한푼 못 받아"

입력
2018.10.24 04:40
수정
2018.10.25 09:22
2면
0 0

곽민석 “고용부에 진정해도 해결 안돼… 상처받은 이들 이름 불러주고파”

[저작권 한국일보] 배우 곽민석은 최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10분53초짜리의 미니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올렸다. 2016년 웹드라마 ‘행복한 인질’의 제작사가 배우와 스태프에게 출연료 및 임금 체불을 한 내용이 담겨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배우 곽민석은 최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10분53초짜리의 미니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올렸다. 2016년 웹드라마 ‘행복한 인질’의 제작사가 배우와 스태프에게 출연료 및 임금 체불을 한 내용이 담겨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배우 곽민석(48)씨에게 2년 전 기억은 악몽으로 남아있다. 그는 출연계약서까지 쓰고 참여했던 웹드라마 ‘행복한 인질’의 제작사 ㈜유카리스티아로부터 출연료를 한 푼도 받지 못했다. ‘행복한 인질’의 PD, 촬영감독, 조명감독 등 40여명은 지난해 9월 임금 및 출연료가 체불됐다며 고용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5만~10만원을 받는 단역 배우들도 포함됐다.

소득은 없었다. 노동부는 계약서가 아닌 근무시간이 명시된 확인서나 재직증명서를 제출하라고 했다. 임금 체불은 해결되지 않은 채 상황은 지리멸렬해졌다. 그렇게 2년이 흘렀다. 곽씨는 최근 ‘행복한 인질’에 참여했던 배우와 스태프를 인터뷰한 10분53초짜리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동영상사이트 유튜브에 올려 방송계의 어두운 실상을 알리고 있다.

23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난 곽씨는 “2년이나 지난 일을 동영상으로 제작한 이유는 이런 폐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고 했다. 선후배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억울한 사연이 되도록이면 널리 퍼졌으면 한다. “그 당시 제작 PD는 대학을 졸업한 사회초년생이었고, 음향ㆍ분장팀 등은 팀원들에게 선지급을 해주며 빚을 떠안고 있는 상황이었죠. 잘못된 시스템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고 최대한 알리고 싶었어요.”

곽씨는 1998년 영화 ‘땅 위에서도 하늘처럼’으로 데뷔했다. 대학로에서 연극을 하며 영화‘범죄의 재구성’ ‘키다리 아저씨’ ‘달콤, 살벌한 연인’ ‘모던보이’ 등에서 단역으로 활동했다. 영화 ‘소수의견’에선 국회의원을 연기했고, ‘성난 변호사’에선 부장검사 등을 연기하는 등 조연급으로 올라섰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선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 ‘초인가족’에선 기업의 전무를 연기해 시청자들이 얼굴을 보면 “아!”하는 배우가 된 지 오래다.

중견배우인 곽씨가 ‘행복한 인질’의 임금 체불을 알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선 데는 2008년 겪었던 일이 크게 작용했다. 그는 단역으로 MBC 드라마 ‘돌아온 일지매’에 출연했지만 출연료는 받지 못했다. 책임 지지 않으려는 방송사와 제작사에 따지려고 했다. 그러나 주변에서 말렸다. “배우생활 오래하고 싶으면 (출연료)포기하라”는 식이었다.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달라지지 않은 방송계 현실이 그를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만들었다.

곽씨는 “계약서를 안 쓰면 안 쓰는 대로, 쓰면 쓰는 대로 임금이나 출연료가 떼인다”며 “계약서 자체를 괘씸죄로 간주하는 나쁜 관행이 없어지질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열흘간 밤샘 촬영을 하며 완성했던 ‘행복한 인질’은 여전히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있다. 제작사 대표는 촬영 중 “드라마 판권이 해외에 팔린다”며 스태프를 회유했고, 배우들에겐 “다음 작품 할 때 캐스팅해 꼭 보상하겠다”는 감언이설을 흘렸다. 그러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함께 출연했던 한 후배는 한국을 떠나기도 했다. 곽씨는 유튜브에 영상을 올린 후 소식이 끊겼던 이 후배에게서 문자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후배는 “세상에 고생 많으셨네요. 저는 이것(출연료 체불) 생각하면 다신 연기하고 싶지 않아요. 너무 끔찍한 것 같습니다”라며 아직도 아파하고 있었다. 곽민석은 재능 있는 후배들이 날개를 펴지 못하는 현실에 눈물을 짓기도 했다. 곽씨 역시 이번 일을 겪고 나서 이름을 인준에서 민석으로 바꿔 활동 중이다. ‘행복한 인질’ 출연자 명단에 올라간 자신의 이름이 불편해서다. 새롭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양창완 이달형 최덕문 김동준 정은찬 등 이번 일로 상처받은 선후배님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요. 생활고에 못 이겨 촬영 현장을 나와 경기 안산의 한 납품회사를 다니는 제작부 후배까지 생각나네요. 손으로 눈을 훔치며) 왜 자꾸 눈물이 날까요.”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