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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미약 감형, 법원은 쉽게 인정 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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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신미약 감형, 법원은 쉽게 인정 안했다

입력
2018.10.24 04:4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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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 범인 김성수(29)씨 측이 우울증진단서를 제출하면서 심신미약(심신장애로 사물변별ㆍ의사결정 능력이 부족한 상태)을 이유로 한 감형 시도 논란이 빚어지고 있지만 법원 판단은 매우 신중한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판례를 보면 법원이 우울증 등 정신장애나 음주 상태를 심신미약으로 쉽게 인정하지 않고, 인정한다 하더라도 감형에 까다로운 자세를 보인다는 얘기다.

대법원 판례는 ‘정신적 장애가 있는 자라고 해도 범행 당시 정상적인 사물변별 능력과 행위통제 능력이 있었다면 심신장애로 볼 수 없다’고 명시했는데, 실제 판례에서도 법원은 정신질환 자체보다 범행 당시와 전후 상황에 주목했다.

원인 불명의 인격장애를 겪다 입대 후 부대 간부 등의 따돌림과 괴롭힘에 못 이겨 수류탄을 던지고, 실탄이 장전된 소총을 쏴 부대원 5명을 살해한 A씨는 정신감정 결과 심신미약으로 나왔음에도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2016년 대법원은 △A씨가 어둠으로 사물 식별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때까지 기다렸다 범행을 시작한 점 △도주 과정에서 수색대를 6번 마주쳤으나 그때마다 다르게 둘러대며 체포를 모면한 점 등을 들어 범행 당시 인격장애 증상이 있었으나 사물을 변별할 능력과 의사를 결정할 능력은 정상 범주 내에 있었다고 판단했다.

어릴 때 머리를 다쳐 지능이 낮아진 B씨도 술을 마시고 이웃과 싸우다 ‘욱’ 하는 심정에 둔기로 살해한 뒤 암매장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으나 심신미약을 인정받지 못했다. 재판부는 “다소 지능이 낮더라도 위법성을 쉽사리 알 수 있었고, 범행 이후 범행을 은폐하고 흔적을 없애려 한 부분을 볼 때 심신상실 내지 심신미약 상태에 있지 않았다”고 봤다.

법원이 심신미약을 인정했지만 감형되지 않는 사례도 있다. 자살을 수 차례 시도할 정도로 극도의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다 복무지를 이탈한 공익근무요원 C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C씨는 인천의 한 고교에서 공익근무요원으로 근무하다 정당한 사유 없이 13일간 복무를 이탈해 병역법 위반으로 고발당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6개월을 선고 받고 뒤늦게 심신미약을 주장하며 정신과 진료기록과 투신 시도 사실 등을 법원에 제출했고, 항소심 재판부는 이를 토대로 C씨 측의 심신미약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항소심은 2014년 △C씨가 같은 죄명으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도 또 범행을 저지른 점 △병역의무는 대한민국 존립에 필수불가결한 의무란 점에서 엄중 처벌해야 한다며 형량을 줄이지 않았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심신미약은 ‘감형’이 아닌 ‘감경’ 사유이기 때문에 법정형 범위가 달라지는 것이지 이미 정해놓은 형량을 줄인다는 의미가 아니다”며 “설사 심신미약을 인정한다 해도 범행이 계획적이거나 피해가 중하면 감경 없이 높은 형을 선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2016년 강남역 묻지마 살인범이 조현병을 이유로 감형된 사례에서 보듯 재판부에 따라 정신질환 등을 이유로 형량을 낮추는 사례가 종종 발생하는 만큼, 관련법 조항을 좀 더 구체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행법은 심신미약자의 의미나 행위의 내용을 정확히 밝히지 않고 있어 △정신장애 항목을 세분화하고 △사물변별 능력과 의사결정 능력에 대한 개념화를 확실히 해 치료대상과 처벌대상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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