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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으면 죽는다, 고난의 길에 몰려드는 카라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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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 있으면 죽는다, 고난의 길에 몰려드는 카라반

입력
2018.10.23 16:58
수정
2018.10.23 21:36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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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미 이민자 규모 커지는 이유는

온두라스ㆍ과테말라ㆍ엘살바도르 ‘북부 삼각지대’ 치안 불안 심각

카라반 다수는 조직폭력 피해자… 美 지원금 삭감도 행렬 못 막아

온두라스 부정선거 논란 등 정치 불안도 카라반 팽창 한몫

미국으로 향하는 ‘카라반’을 구성한 중앙아메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22일 멕시코 남부 과테말라 국경지대 치아파스주 시우다드이달고시에 모인 가운데 한 이민자가 머리를 짚고 있다. 시우다드이달고=로이터 연합뉴스
미국으로 향하는 ‘카라반’을 구성한 중앙아메리카 출신 이민자들이 22일 멕시코 남부 과테말라 국경지대 치아파스주 시우다드이달고시에 모인 가운데 한 이민자가 머리를 짚고 있다. 시우다드이달고=로이터 연합뉴스

과테말라 국경을 넘어 멕시코를 지나 미국으로 향하고 있는 수 천명의 이민자 행렬 ‘카라반’이 중미를 넘어 미국 정치권마저 뒤흔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미 국가를 향한 원조를 끊겠다고 위협했지만 이민자 행렬을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민자들은 조직 범죄와 정치 불안 등을 피하기 위해 ‘고난의 길(Viacrucisㆍ카라반의 중미 측 명칭)’을 스스로 택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자신의 트위터에 “과테말라, 온두라스, 그리고 엘살바도르는 국민들의 불법 이민을 중단시키지 못했다”며 “해외 원조를 끊거나 상당히 축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민감한 반응은 중간선거 전략의 일환으로 해석되고 있지만, 카라반 자체가 근본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공약인 ‘미국 우선주의’와 치안 강화 정책에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점도 분명하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금 삭감’ 엄포가 실제로 카라반을 돌려 세울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싱크탱크 유라시아그룹은 트럼프 정부 들어 중미 지원금을 상당 부분 삭감했기 때문에 추가 경고가 실효성이 없다고 봤다. 오히려 “온두라스로의 지원금 삭감이 역대 최대 규모라는 카라반의 규모를 불리는 것을 부추긴 게 아니냐”는 지적도 덧붙였다.

카라반의 규모가 커지는 근본 원인은 이들의 출신지인 온두라스ㆍ과테말라ㆍ엘살바도르, 즉 ‘북부 삼각지대’의 심각한 치안 불안이다. 북부 삼각지대는 마라 살바투르차(MS)-13과 바리오-18이라는 양대 범죄조직의 영향력 아래 놓여 있다. 두 집단 모두 미국 내 불법체류자 공동체에서 비롯됐지만, 중미로 추방된 사람들이 고국에서조차 범죄조직을 형성하면서 국가 치안을 뒤흔드는 지경이다.

중미 북부의 살인범죄율이 유독 높은 이유도 이들 조직 때문이다. 3국 정부도 강도 높은 ‘범죄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카라반에 올라탄 이민자 대부분 폭력조직에 피해를 입었거나 가담을 강요당한 이들의 일가족으로, 예상되는 고난을 감안한 채 미국으로 향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정치 불안도 이민자 행렬의 팽창에 한몫하고 있다. 올해 이민자 행렬 대부분은 온두라스에서 시작됐다. 온두라스의 후안 오를란도 에르난데스 대통령은 엄벌주의로 온두라스 치안을 개선했다는 평가와, 보수 권력 독점을 위해 부패를 방조한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지난해 대선에서 야권의 살바도르 나스랄라 후보가 에르난데스 대통령에 석패한 이후 부정선거 논란으로 소요가 발생했다. 경찰과 군을 동원해 반정부 시위를 진압하면서 32명이 숨졌지만 누구도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았고, 그나마 내세울 만하던 치안도 더 나빠졌다.

결국 온두라스 정부에 기대를 버린 일부 국민들이 카라반 행렬에 합류하면서 그 규모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늘어났다. 친미 성향인 에르난데스 대통령은 이민자를 향해 “정치 선동에 흔들리지 말고 돌아오라”고 읍소했지만 효과는 없었다. 야권이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의 지원금 삭감 선언을 환영하고 있다. 대중의 여론도 냉담하다. “어차피 미국의 지원금은 국민의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이유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미국과 어색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는 멕시코는 일단 과테말라 국경 지대 경찰 투입으로 트럼프 대통령 비위를 맞추는 시늉을 했다. 그러나 곧 물러나는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은 적극적이지 않다. 트럼프 대통령에 굴복하는 듯한 태도에 멕시코 여론이 부정적인 탓이다. 12월 취임하는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MLO) 대통령 당선인은 이민자에 훨씬 온정적이다. 이민자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해야 한다며 북부 삼각지대에 투자를 늘리자고 미국에 협조를 제안하기도 했다.

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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