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치(french)’라는 단어가 끼어든 만국 공통어가 몇 개 있다. 대표적인 게 프렌치 프라이, 프렌치 키스, 그리고 프렌치 시크다. 프렌치 프라이는 미국 제3대 대통령 토머스 제퍼슨이 프랑스에서 기름에 튀긴 감자를 처음 먹어 보곤 그 맛에 반한 연유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 프렌치 프라이가 전 세계에 퍼진 건 미국의 맥도널드와 버거킹의 덕이니 아이러니다.

프렌치 키스는 설왕설래(舌往舌來)다. 프랑스 사람들이 진하게 키스하는 모습을 본 영국인들이 비하하는 의도로 그리 불렀다 한다. 불어로는 키스를 ‘베제(baiser)’라고 하는데 영어와 달리 성교의 의미도 있다.

하고 싶은 말은 세 번째 단어 프렌치 시크다. ‘시크(chic)’는 영어도 불어도 같은 철자, 같은 발음으로 쓴다. 사전적 풀이는 ‘멋지고 세련된’이다. 사람이 시크하다고 할 때는 ‘단순, 깔끔, 도회적, 쿨함, 차가운, 냉소적’ 그런 복합적 이미지다. 김혜수가 2009년 한 드라마에서 입에 달고 다녔던 ‘에지(edge) 있게’와 비슷하다.

그런데 시크에 ‘프렌치’라는 접두사가 붙으면 의미가 좀 달라진다. 프렌치 시크는 패션이나 라이프 스타일의 영역으로 진화한 단어다. 프렌치 시크를 ‘에포트리스 시크(effortless chic)’라고도 한다. 멋을 내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멋있어 보이고(참 이상하다), 꾸민 듯 꾸미지 않은 듯 멋있고(참 자연스럽다), 무심한 듯 방치했지만 그마저도 계산한 듯 멋있어 보이는(참 얄밉다) 것이다.

내게 갑자기 프렌치 시크를 환기시킨 건 김정숙 여사의 샤넬 트위드 재킷을 둘러싼 소란이다. 지난주 문재인 대통령의 유럽 순방에 동행한 김 여사가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와 루브르 박물관에 갈 때 입은 옷이다. 이 재킷은 샤넬이 2015년 서울에서 연 컬렉션에 등장했다. 수석디자이너 칼 라거펠트가 한글에 영감을 받아 옷에 우리 글자들을 새겨 넣었는데 김 여사가 이 옷을 빌린 것이다. 그런데 강용석 변호사가 옷태가 안 난다고 비아냥거렸다. 류여해 전 자유한국당 최고위원은 샤넬 대여야말로 특권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패션잡지 출신 칼럼니스트 김경씨가 한 신문에 이 둘을 비판했다.

김경씨는 이렇게 일갈했다. “돈만 내면 누구나 살 수 있는 명품 브랜드는 프랑스인이 진정 높이 사는 ‘시크’가 아니다. 두 대통령 부인이 팔짱 끼고 10대 소녀 같은 미소로 무장하고 루브르 박물관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것, 그런 꾸미지 않은 삶의 태도가 바로 프랑스인들이 진정 사랑하는 프렌치 시크다. 이 바보 멍충이들아.” 나는 이 칼럼에 공감한다. 본질을 읽을 줄 아는 마음을 강조한 걸로 이해했다.

루이뷔통 계열사의 전 CEO 미레유 길리아노가 쓴 책 중에 ‘프랑스 여자는 늙지 않는다’라는 제목(2016년 국내 발간)이 있다. 저자는 그 해답을 바로 프렌치 시크에서 찾았다. 파리에서 특파원으로 근무할 때 동네 카페에서 혼자 에스프레소를 시켜 놓고 조용히 책을 읽거나 뜨개질을 하는 중년 여성이나 할머니를 많이 봤다. 그들은 늘 이방인에게도 상냥하게 미소를 띠며 인사했다. 편안하고 부드럽고 자유로운 차림, 섬세한 언행, 그 표정과 실루엣에 우아함과 여유가 배어 있었다. 할리우드 여배우가 도발적이고 화려하고 분방하고 섹시한 느낌이 강하다면, 프랑스 여배우들은 사랑스럽고 품격 있고 신비하고 관능적 분위기를 준다. 거기에 서늘한 지성미까지 풍긴다.

프렌치 시크가 두려워하는 건 노화가 아니라 매력을 잃는 것이다. 프렌치 시크는 치열한 ‘안티 에이징’보다 우아한 ‘웰 에이징’이다. 트렌드가 아닌 내면이다. 패션이 아니라 삶의 애티튜드(attitude)다. 프렌치 시크에 대해 아는 척 한마디 거들었다.

한기봉 언론중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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