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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작가와 작품 분리할 수 없지만 감상할 가치 없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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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작가와 작품 분리할 수 없지만 감상할 가치 없는 건 아니다”

입력
2018.10.22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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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日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 방한 

조숙한 천재로 데뷔해 일본 현대문학을 이끄는 중진 작가가 된 히라노 게이치로를 18일 서울 광화문 대산문화재단에서 만났다. 고영권 기자
조숙한 천재로 데뷔해 일본 현대문학을 이끄는 중진 작가가 된 히라노 게이치로를 18일 서울 광화문 대산문화재단에서 만났다. 고영권 기자

천재도 성실할 수 있다는 걸 입증한 일본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43). 교토대 법학부생이었던 1999년 최연소로 아쿠타가와상을 받으며 데뷔한 뒤 약 20년간 ‘최고의 작가’에서 내려온 적이 없다. 한국의 ‘문학 일류(日流)’를 이끄는 작가이기도 하다. 히라노가 올해 4회를 맞은 ‘한중일 동아시아문학포럼’에 참석하려 지난주 서울을 찾았다. 2008년 포럼 첫 회에 젊은 작가로 소개됐던 그는 올해 일본 작가 대표 격인 기조발제자로 나섰다. 서울 종로구 대산문화재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히라노는 포럼 4회에 개근했다. 한중일을 연결하는 문학의 힘을 믿어서다. “한중일 작가들은 제 나라 언어로 번역된 같은 책을 읽고 있다. 책의 공동체 안에 사는 거다. 작가들이 만나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고 반드시 ‘이해’에 이르는 건 아니다. 상대를 전부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히려 오만하다. 문학을 통해 서로를 ‘배려’하게 되고, 그것으로 의미가 크다.” 히라노는 일본 우익의 퇴행적 역사관을 비판해 왔다. 지난해엔 간토대지진 당시 대량 학살된 조선인 희생자 추도식에 도쿄지사가 추도문을 보내지 않은 것에 항의하는 문화예술인 성명에 동참했다. “일본 정부는 잘못을 인정하고 한국과 중국에 확실하게 사과해야 한다. 특히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한 분 한 분에게 사죄해야 한다.”

국내 번역되지 않은 최신작 ‘어떤 남자’에서 히라노는 일본의 자이니치(재일동포) 차별 문제를 꼬집는다. “자이니치 3세인 변호사가 주인공이다. 나는 차별을 싫어한다. 차별당하는 사람들의 곁에 내가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펜으로 차별에 항의하는 싸움을 계속 할 거다. 차별 피해자를 비롯한 약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면, 소설과 문학은 존재 이유가 없다.” 히라노는 ‘문학의 가치’를 거듭 강조했다. “문학 같은 건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매일 듣는다. 도움이 되든 안 되든, 문학엔 분명히 가치가 있다. 조언, 깨달음, 사유, 위로, 감동이 문학 안에 있다. 무엇보다 문학은 아름답다. ”

일본 역시 책 읽지 않는 나라가 됐다. 소설가의 고민을 물었다. “요즘 베스트셀러 기준은 10만권, 인구(1억3,000만명) 약 0.1%에 해당하는 숫자다. 국민의 99.9%가 사보지 않아도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거다. 그래서 책이 무용한가. 책이 없으면 살 수 없다고 말하는 0.0001%가 여전히 있다. 그들의 정신을 지지하는 역할을 하는 한, 소설을 쓴다는 건 의미 있는 일이다.”

미투 운동은 보수적인 일본 문단도 흔들고 있다. 성차별∙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작가의 작품을 어떻게 평가할지를 히라노는 깊이 고민했다고 한다. “작가와 작품은 분리할 수 없다. 그런 작가를 미화해선 안 된다.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도 중요하다. 단, 윤리적으로 문제 있는 예술가, 문인의 작품은 감상할 가치가 없다는 식의 태도에는 선을 긋고 싶다. 작품과 작가 어느 쪽에도 ‘죽음’을 선고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라는 불가사의한 존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최문선 기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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