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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막으려 설치했는데... 교사 감시하는 어린이집 CC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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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막으려 설치했는데... 교사 감시하는 어린이집 CCTV

입력
2018.10.22 04:40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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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노원구에 있는 국공립 어린이집 교사 A(34)씨는 올 초 동료 교사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당황스런 일을 겪었다. 교실에서 몇몇 교사들이 자리를 하고 있었는데 원장이 들이닥쳐 “넌 왜 그렇게 웃고 있냐?“고 지청구를 놓은 것. 그 때는 ‘지나가다 웃음소리를 들었겠거니’ 했는데, 이후 원장 행동이 심상치 않았다. A씨가 어린이집 여기저기를 이동할 때마다 기가 막히게 위치를 알아내 인터폰으로 연락하는 건 물론, 지병 때문에 자주 화장실을 가는 그에게 “화장실은 왜 그렇게 자주 가냐”고 질책하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A씨는 “어느 날 원장실을 지나는데 원장이 폐쇄회로(CC)TV를 보면서 교사 동선을 파악하고 있더라”며 “감시를 받고 있다는 생각에 등골이 오싹해지면서 더 이상 어린이집을 다닐 수 없어 사직서를 냈다”고 털어놨다.

2015년부터 아동학대 방지 목적으로 의무 설치하게 한 CCTV지만 일부 어린이집들이 교사 감시 용도로 사용하고 있어 논란을 빚고 있다. 원장이 영상을 교사들끼리 돌려보게 하며 품평회를 하는가 하면, 갈등을 빚다 퇴직한 교사에게 “아동학대로 신고하겠다”고 협박하는데 이용하는 등 다양한 행태의 피해 사례가 교사들 입을 통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교사들은 CCTV 카메라 너머에 있는 부당한 감시의 눈을 고통스러워한다. 경기 지역의 한 민간 어린이집 교사 B(39)씨는 출근할 때마다 실시간으로 원장으로부터 복장 지적을 받는다고 토로했다. 원장실에서 CCTV를 보고 나서, 혹은 관리책임자가 아닌 어린이집 대표 조차 집에서 휴대폰으로 영상을 들여다보고는 곧바로 전화나 문자로 질책을 해온다는 하소연이다. 같은 어린이 집에 근무하던 동료 교사는 올 2월 ‘근무 중에 휴대폰을 자주 본다’는 이유로 실제 해고되기도 했다.

경기 지역의 한 국공립 어린이집에서는 한 교사가 노조를 만들려고 하자 원장이 학부모들을 불러 교사들이 일하는 장면이 찍힌 CCTV영상을 상연하는 일이 있었다. CCTV가 ‘노조를 만들면 아이들 돌보는 일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는 근거로 사용된 것. 교사 휴식시간 문제로 갈등을 빚은 또 다른 어린이집에서는 교사들이 “어떻게 당신들이 근무하는지 CCTV로 매일 확인하겠다”는 원장의 위협을 들어야 했다.

이 같은 CCTV 감시는 위법 소지가 다분하다. 현행 영유아보육법은 CCTV영상을 영유아 안전과 어린이집 보안을 위해서만 최소한으로 수집하도록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장이라 하더라도 그 외 용도로 이용할 경우 두 번 경고 후 교체 처분까지도 내려질 수가 있다.

하지만 실제 처벌 사례는 드물다. CCTV 열람 시 관리대장에 목적과 시간, 장소를 적도록 하고 있지만 허위로 이를 작성할 경우 딱히 방법이 없다. 간혹 신고를 받고 관할 지방자치단체에서 점검을 나가도 ‘아동학대 방지 목적’이라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교사들 역시 요주의 인물로 찍힐까 쉽게 신고에 나서기 어렵다.

정정희 경북대 아동학과 교수는 “아동학대 같은 문제가 CCTV만 설치하면 해결된다는 인식 자체가 잘못됐다”며 “교사 1인당 아동 수 등 근로환경 개선 노력이 병행되지 않으면 아동학대 문제 해결은 고사하고 노동 감시 같은 부작용이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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