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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다룬 영화에 빗발치는 ‘상영금지가처분’ 신청… 법원 판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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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다룬 영화에 빗발치는 ‘상영금지가처분’ 신청… 법원 판단은?

입력
2018.10.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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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최근 실화를 다룬 영화가 잇따라 개봉하면서 사건 당사자, 피해자, 유족 등이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일부는 영화가 사실을 왜곡했다거나 당사자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법적 대응도 불사한다. 대개 이런 경우 손해배상 청구뿐만 아니라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법원의 판례에 비춰 봤을 때 일부 내용을 수정하는 경우는 있어도 영화 상영 자체를 하지 못하게 하는 건 매우 드물다. ‘표현의 자유’와 ‘인격권 침해’ 등의 가치가 충돌했을 때, 법원은 주로 표현의 자유 쪽에 서기 때문이다.

지난 16일 문제가 되는 일부 장면의 제작을 금지한 1심 판결을 뒤집고 촬영 및 제작을 허가한 영화 ‘아버지의 전쟁’ 선고 또한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뤄졌다. ‘아버지의 전쟁’은 1998년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벙커에서 숨진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을 다룬 작품이다. 1심은 영화가 허구의 사실을 창작함으로써 김 중위와 유가족의 명예 및 인격권을 훼손했다고 판단했다. 관련 장면 47개의 제작 및 상영금지 결정을 내렸다.

반면 제작사 및 감독 측의 항소 끝에 진행된 2심 재판에서 서울고법 민사40부(부장 배기열)는 “법원에서 ‘예술적 창작물’인 영화의 상영 자체를 금지하거나 혹은 그 영화 내용을 직접적으로 수정ㆍ삭제해 달라는 취지의 피해자 청구를 인용하는 것은, 사법 절차를 통해 예술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제한하는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상업적 흥행이나 관객의 감동 고양을 목적으로 하는 상업영화의 특성을 들어 “의도적인 악의 표출에 이르지 않는 한 사실을 다소 각색하는 것은 용인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역사적 사실을 다루는 영화에 대해선 표현의 자유를 보다 넓게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을 다룬 영화 ‘그때 그 사람들’ 소송이 대표적이다. 영화 속 일부 장면이 박 전 대통령을 희화화하고 명예를 훼손했다며 아들 지만씨가 제기한 소송으로, 1심에선 문제가 되는 3개 장면을 삭제하는 것으로 조정됐지만 항소심에서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학문적ㆍ예술적 탐구와 표현은, 그로 인한 가치가 이미 시간의 경과로 세인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는 역사적 인물의 인격적 법익을 보호함으로써 달성되는 가치보다 소중한 것으로 배려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의 경우 그 인물에 대한 탐구와 평가의 자유가 보장돼야 한다”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자(死者)의 정치ㆍ사회적 행적과 그와 관련된 생활상 등을 표현한 경우엔 사자의 인격적 법익을 중대하게 침해한 경우에 한해서만 표현을 금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재판부는 문제가 된 일부 장면 때문에 고인이 된 아버지에 대한 경애와 추모 등의 감정이 침해됐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제작사 측이 진만씨에게 1억원을 배상하라 명했다. 즉 재판부는 고인인 전직 대통령을 소재로 한 영화가 고인의 인격적 법익을 침해했으나 그 침해가 영화 상영 등을 금지해야 할 정도로 중대하지는 않다고 본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배경으로 다룰 때, 영화제작자에게 국가기관이나 언론기관이 행하는 것과 같은 정도의 ‘충분한 사실 확인 작업을 요구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판결한 사례도 있다. 영화 ‘실미도’가 이에 해당한다. 당시 심리를 맡았던 재판부는 “사건이 있은 지 30년 이상이 경과한 후 제작된 영화인 만큼 세부 내용이 역사적 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인격권 침해 내지 명예훼손의 성립을 인정하면 역사적 사실에 대한 탐구 또는 표현ㆍ창작의 자유가 크게 위축돼 부당한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 경우 “영화 내용 중 문제되는 부분이 진실이라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어야”한다.

표현의 자유를 보다 높게 평가하는 법원의 경향은 실제 연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영화의 표현과 제한 법리에 관한 탐색적 연구’에 따르면, 1995년부터 2014년 2월까지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이 제기된 영화 22건 중 원고가 승소한 경우는 4건에 불과하며, 이마저도 일부 승소에 그쳤다.

김진주 기자 pearlkim7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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