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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책 안 읽는 이유

입력
2018.10.19 18: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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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한켠의 책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서점 한켠의 책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어쩌다 잠깐 미술 담당 기자를 했을 때, 의외로 그림 보는 걸 꽤 즐기는 나 자신에게 좀 놀랐던 적이 있다. 쥐뿔도 모르는 주제에 그림 속 이야기가 한번쯤 마음을 푹 찌르면 이걸 어떻게 기사로 표현해 내나 혼자 설레기도 했다. 그 덕에 한동안 그림 한 점 사볼까 꽤 궁리도 했지만, 곧 포기했다. 부족한 돈이나 형편없는 안목의 문제가 아니다. 그림을 사려면, 그림을 걸어 둘 큰 벽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서다. 그림을 사는 건 그림값 말고도 액자와 여백까지 소화해 낼 수 있는 벽이, 그 벽을 품을 수 있는 집이 필요한 일이다.

□ 얼마 전 재미있는 기사가 나왔다. 미국 호주 공동연구팀이 OECD 31개국 성인 16만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를 분석했더니 책장 있는 집 아이들이 똑똑하다는 결과를 얻었단다. 읽을 필요도 없이, 그저 책장에 책만 꽂혀 있어도 인지능력과 학업성취도가 높아졌단다. 장서도 80~350권 정도면 충분하단다. 가디언 등 해외 언론에 오르내리더니 출판인이나 책 애호가들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에서 이 기사가 화제가 됐다. 성인 가운데 절반 정도가 1년에 책 한 권 안 읽는 나라다 보니 적잖게 반가웠던 모양이다.

□ 개인적으론 외신이 흔히 다루는 가십성 연구라 본다. 책장이 무슨 ‘천연 DHA’라도 내뿜는 게 아닐 텐데 책장 하나 들여놨다고 IQ가 올라갈 리 있겠는가. 책장이란, 그림에서의 벽과 같은 일종의 ‘은유’다. 마음에 쏙 드는 그림 한 점 살 수 있다는 건 경제력, 교육수준, 관심사 같은 배경을 깔고 있다. 마찬가지로 80~350권이 담긴 책장을 집안에다 만들어 둔다는 행위 또한 그런 배경을 전제하는 것이다. 책으로 가득 찬 책장이 있으면 어쩌다라도 책 한번 펴보지 않을까, 같은 행복한(?) 추론은 그 다음 얘기다.

□ 저런 연구에 환호하는 속내는 사실 이 질문이다. 벽도, 책장도 있는데 왜 책은 안 읽는가. 솔직히 우린 답을 이미 안다. 다른 이유는 핑계일 뿐, 간단하게 말해 필요 없어서다. 책 읽기를 그토록 권하는 건 공감의 힘을 높이고 시야를 넓히고 논리를 밝혀 줘서다. 우리 사회에서 공감, 시야, 논리란 쓸데 없는 짓이다. 바깥 세상을 이렇게 접어 버리고 나면 남는 건 자기에 대한 몰입이다. 아무리 ‘책에도 귀천은 없다’지만 그저 ‘불쌍한 나’를 쓰다듬는 나르시시즘 에세이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채우는 것 또한 그 때문이다.

조태성 문화부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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