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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ㆍ영국 시각장애인들의 특별한 연주 기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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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ㆍ영국 시각장애인들의 특별한 연주 기대하세요”

입력
2018.10.20 04:40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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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황도민 도미넌트 에이전시 대표 

황도민 도미넌트 에이전시 대표가 점자로 만든 전경호씨의 마림바 연주회 프로그램북을 들고 있다. 황 대표는 “시각장애인 관객을 위해 전씨 연주회 프로그램북은 꼭 점자로 만든다. 11월 공연 프로그램북도 점자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황도민 도미넌트 에이전시 대표가 점자로 만든 전경호씨의 마림바 연주회 프로그램북을 들고 있다. 황 대표는 “시각장애인 관객을 위해 전씨 연주회 프로그램북은 꼭 점자로 만든다. 11월 공연 프로그램북도 점자로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다음 달 9일 영국 브리스톨에선 특별한 콘서트가 열린다. 한국과 영국의 연주자가 모여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연주하는데 앞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딱 한 명, 지휘자뿐인 공연이다. 전원이 시각장애인인 단원들은 몸에 착용한 ‘모션 센서’를 통해 지휘자의 지시를 감지한다. 한영 공연관계자들이 합작한 ‘시각화된 소리를 위한 진동 (Vibration for Visualized Sound 이하 VVS)’ 프로젝트는 영국 공영방송 BBC가 공연 제작과정을 다큐멘터리로 제작한다.

18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황도민(32) 도미넌트 에이전시 대표는 “이번 공연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벽을 허무는 첫 단추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통음악이나 무용 등 다양한 장르의 국제교류 공연을 기획해온 황 대표는 VVS 프로젝트의 기획총괄을 맡았다.

사실 이 프로젝트의 밑그림은 황 대표의 중학교 3학년 시절부터 그려졌다.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아버지는 오케스트라용 스네어드럼을 가르쳤고, 황 대표는 세트드럼을 독학으로 익혀 밴드활동을 시작했다. 황 대표의 연주를 본 박광서 한국종합예술학교 교수는 타악 전공을 권했고, 황 대표는 한예종 예비학교를 거쳐 2005년 음악원에 입학했다.

하지만 신체적인 어려움에 발목이 잡혔다. “제가 시각장애 6급이에요. 생활할 때 지장은 없지만, 오른쪽 눈은 형태만 희미하게 보이는 정도죠. 마림바 같은 거리감이 중요한 악기를 연주할 때 많이 힘들었어요. 그래도 (음악계) 근처에 있고 싶은 마음은 있었고 방법을 찾은 게 공연 기획이었죠.” 음악에 대한 남다른 열정이 황 대표를 또 다른 길로 안내한 셈이었다. 실제, 적성에도 맞았다. 2010년 서울국제타악기 페스티벌에서 처음 공연 기획 실무를 익힌 그는 이듬해엔 공연기획사도 차렸다.

무용, 음악 페스티벌과 해외투어 공연을 주로 기획했던 황씨는 마림비스트 전경호(30)씨를 만나면서 저변도 넓혔다.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1급 시각장애인인 전씨는 19세였던 2007년 KBS교향악단과 협연한 실력파 연주자로, 2012년 한예종 음악원에 입학하며 화제를 낳았던 인물이다. 서로의 연주회를 찾아 격려하던 두 사람은 2016년 소속사 대표와 연주자로 계약을 맺었다. 지난해 8월 핀란드와 그 해 12월 인도에선 각각 전경호 초청공연도 열렸다. 장애인들의 공연이 현실적으로 쉬운 건 아니다. 황 대표는 “국내 장애인 예술가는 세계무대에서 꾸준히 러브콜을 받고 있지만 솔로 혹은 협연, 아니면 장애인으로만 구성된 전문단체 초청공연이 주를 이룬다”며 “비장애인 예술가와 협연은 제약이 있어 시도자체가 이뤄지지 못하는데, 가장 큰 원인은 지휘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장애인들의 공연 어려움을 설명했다.

VVS 프로젝트에서 쓰일 모션센서 '버즈 비트' 시연 모습. 지휘자가 팔에 기기를 차고 손을 저으면 연주자에게 진동이 전달된다. 바하칸 마토시안 제공
VVS 프로젝트에서 쓰일 모션센서 '버즈 비트' 시연 모습. 지휘자가 팔에 기기를 차고 손을 저으면 연주자에게 진동이 전달된다. 바하칸 마토시안 제공

이들에게 행운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왔다. 해외 공연을 추진했던 핀란드 기획사 관계자가 “영국에 장애인 예술가 지원 기관이 있으니 협업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한 것. 이렇게 인연이 닿은 사람이 영국 민간단체 ‘휴먼 인스트럼먼츠’의 악기개발자 바하칸 마토시안이다. 작곡가인 바하칸은 전경호씨의 연주를 본 후 올해초부터 시각장애인을 위한 ‘모션 센서’ 제작에 들어갔다. ‘버즈 비트’란 이름의 이 센서는 지휘자 움직임을 감지, 무선신호로 연주자가 착용한 수신기에 진동을 일으키는 기기다. 황 대표는 “7월 영국 리허설에서 센서가 지휘자의 스타카토, 레가토 지시를 구분해 연주자 수신기에 전달했다”며 “‘버즈 비트’ 성능이 계속 보완되고 있어서 연주자들도 상당히 고무적이다”고 말했다.

VVS 프로젝트엔 걸출한 실력자들이 함께 한다. 바이올리니스트 이보라, 플루티스트 장성주, 피아니스트 김예지, 트럼보니스트 원희승 등이 대표적이다. 카네기홀 초청연주와 평창동계올림픽 문화공연, KBS교향악단 협연 등을 소화해 낸 실력파 시각장애인 연주자들이다. 영국에서도 시각장애인 연주자 7명이 합세한다. 지휘는 뮤지컬 ‘데드독’,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유 카르멘 에카옐리차’의 음악을 만든 찰스 헤이즐우드가 맡는다. 영국 브리스톨 세인트 조지스에서 열리는 공연의 경우엔 5일 리허설부터 9일 공연까지 제작과정이 BBC다큐멘터리로 제작될 예정이다. 황 대표는 “이번 공연에 모든 참여자들이 큰 기대감을 갖고 있다”며 “프로젝트에 뜻을 같이 하는 지휘자를 추가로 섭외할 수 있다면 국내 공연도 추진하고 싶다. 이제 시작이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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