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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게임 '마녀사냥'도 아니잖나

입력
2018.10.19 18:26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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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장애’ 질병 분류한 WHO의 결정

복지부 장관 수용 입장에 업계 반발

게임산업 중요해도 공중보건 직시해야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파란을 일으켰다.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중독을 질병으로 분류하면 한국도 이를 곧장 수용하겠다”는 최근 국정감사 발언 때문이다. 결코 무리한 얘기는 아니다. 스스로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게임에 빠져 건강이나 일상생활에 문제를 일으킨 사례는 더 이상 얘깃거리도 안 될 정도로 흔해졌다. 그래서 WHO는 4년간 세계 전문가들의 의견과 입장을 수렴해 6월 새 국제질병분류(ICD-11)에 ‘게임이용 장애(Gaming Disorder)’를 등재해 질병으로 분류한 것이다.

WHO의 결정이 갑작스러운 것도 아니다. WHO는 그동안 전문가들의 의견과 분석 등을 수렴하기 위한 대규모 국제 워크숍만 4차례 이상 진행했다. ICD-11에 게임이 질병으로 등재되고, 2022년부터 적용된다는 것도 널리 알려진 상태다. 그럼에도 박 장관 입장에 대한 업계와 정부 내 반발은 마치 방금 불에 댄 듯 격렬하다. WHO의 신뢰와 권위로 보면, 그 결정을 수용한다는 박 장관의 입장은 지극히 상식적인데도 그렇다.

반발의 갈래는 다양하다. 국내 게임산업 진흥정책을 총괄하는 문체부는 ‘놀랍게도’ 게임을 질병으로 분류한 WHO의 결정이 잘못된 것이며, 게임은 질병이 아니라는 반격을 하기 위해 해외 학자들까지 대거 동원한 연구결과를 조만간 발표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게임업계는 “게임을 질병화 하는 건 국내 게임산업의 근간을 흔드는 처사”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정치권도 나서고 있다.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게임을 질병으로 등재하는 건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가져온 극단적 결과”라고 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의원은 “게임산업이 어렵다”며 “정부가 오히려 게임산업 육성 방안을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언론 역시 “게임산업이 고용과 세수를 창출하는데도 정부로부터 박대를 받고 있다”거나, “문화콘텐츠 수출의 55%를 차지하는 게임산업이 붕괴하게 생겼다”는 업계 주장을 다투어 기사화했다.

하지만 마치 게임이 ‘마녀사냥’에 몰려 화형선고라도 받은 듯한 이런 반발과 비명은 지나칠뿐더러, 합당하지도 않다. 우선 ‘게임이 정부로부터 박대를 당하고 있다’는 얘기부터 무리다. 게임업계가 산업의 족쇄로 꼽는 ‘셧다운제’가 시행되고, 확대 논의가 진전됐던 지난 정부라면 혹시 모르겠다. 그러나 현 정부 들어 지금까지 게임산업은 전에 비해 오히려 우대를 받아왔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때 “아들이 게임을 많이 한 덕분에 영상디자인 전문가가 되었다”며 “게임 규제를 대폭 완화하겠다”는 공약까지 한 터다.

게임 규제부터 빠르게 무력화됐다. 지난 정부 말 복지부가 수립했던 ‘청소년 게임중독 선별조사 강화안’은 실종됐다. 정부 용어조차 ‘게임중독’ 대신 ‘게임 과몰입’이라는 묘한 표현이 공식화했다. 셧다운제도를 모바일게임으로 확대하려던 여성가족부 계획도 백지화됐다. 확률형 게임에 대한 우려와 비판은 업계 자율규제론에 희석됐고, 게임을 4대 중독물질로 관리하자던 국회의원의 목소리도 사라진 지 오래다.

반면 문체부 콘텐츠실은 게임진흥에 사활을 건 듯한 느낌이며, 산하 한국콘텐츠진흥원 역시 타장르 지원사업 보조금까지 암암리에 게임사업에 우회 배정할 정도로 게임 지원에 공을 들이고 있다. 최근엔 정부와 국회에서 공히 게임산업에 4차산업 차원의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장까지 힘을 얻고 있을 정도다. 이런 현실에서 볼 때 박 장관에 대한 반발은 마치 “왜 복지부 장관이 눈치 없이 나서느냐”는, ‘윗선의 핀잔’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게임산업은 프로그래밍에서부터 스토리와 디자인 등 고도의 지적 노하우가 융합되는 분야다. 향후 다양하게 응용될 기술을 육성하기 위해서라도 미래산업의 하나로 지원되는 게 옳다. 그럼에도 게임에서 비롯되는 최소한의 공중보건 문제까지 외면하는 건 정부의 명백한 직무유기다. 복지부가 어렵사리 내놓은 입장이 적절히 이행될 수 있도록 대통령이라도 나서야 한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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