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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이 어린이집 관리 않거나, 교사 자주 그만두면 “아동학대 의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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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장이 어린이집 관리 않거나, 교사 자주 그만두면 “아동학대 의심을”

입력
2018.10.20 09:0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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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과에 매몰된 교사 “잘 못한다” 이유로 아이 때려 

 원장, 교사들 소통 방해도… 놀이중심 교육개편 절실 

17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와 ‘정치하는엄마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 비리 근절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노조 설문조사에서 현직 보육교사 228명 중 72%가 급식비리를 봤다고 답했다. 보건복지부는 어린이집 전수조사 방침을 세웠다. 사진=홍인기 기자
17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서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와 ‘정치하는엄마들’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어린이집 등 보육시설 비리 근절 대책을 촉구하고 있다. 노조 설문조사에서 현직 보육교사 228명 중 72%가 급식비리를 봤다고 답했다. 보건복지부는 어린이집 전수조사 방침을 세웠다. 사진=홍인기 기자

어린이집의 문화가 위계적일수록, 원장 및 교사 간 반목이 심하거나 소통이 부족할수록 학대 위험행동, 즉 아이들에 대한 교사의 부적절 행위 발생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이 보건복지부의 위탁을 받아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학대가 발생한 어린이집에서는 공통적으로 △원장 및 교사들 관계가 위계적이고 △업무 과중을 조절하지 않았거나 △교사 간 반목이 일어나거나 △교사 간 소통이 부재하고 △원장과 교사 사이 갈등이 발생했다는 특징이 발견됐다. 국가아동학대정보시스템에 등록된 2015년 어린이집 학대사건 424건을 전수 분석한 결과다.

또 연구진이 전국 어린이집 보육교사 465명, 원장 507명 등 총 972명에게 실시한 설문 응답을 분석한 결과, 지난 2주간 영유아에게 ‘부적절 행위’를 한 적이 있다고 답한 교사가 근무하는 어린이집은 △근무환경과 조직 문화를 비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고 △비교 집단에 비해 담당 영유아 수가 많았으며 △보육실 외 실내 놀이공간이 없는 경우가 유의미하게 더 많았다.

조직 문화나 교사들의 심리적 소진 상태가 곧 보육환경으로 직결된다는 이야기다. 아동학대 문제의 근본적 해결을 위해서는, 폐쇄회로(CC)TV 확충 등의 물리적 감시 강화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어린이집 조직 문화 관리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 “학대를 훈육으로 착각해” 

최근 서울 용산구 숙명여대 연구실에서 만난 연구책임자, 정선아 숙명여대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아동 학대사건은 처음부터 인격적 결함을 지닌 문제적 행위자(보육교사)에 의해 일어난다는 세간의 오해와 달리, 평범한 이들의 전문성 부족과 대집단 운영 기술의 부족에서 문제가 발생한다”며 “아동을 한 인격으로 바라보기보다 정해진 일과 시간 내에 자신에게 복종해 낮잠 자기, 율동 익히기 등 과제를 해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관점 자체가 문제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CCTV만 설치한다고 다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대다수 학대 사건이 ‘대집단 운영’ 시간에 발생한 점에 주목했다. 식사 지도, 율동 지도, 편지쓰기 지도 등 과제 수행이라는 결과 도출 자체에 매몰되고 쫓기는 교사들이 아이를 힘으로 제압하는 가운데 거의 모든 학대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카네이션 만들기와 편지쓰기를 잘하지 못한다고 아기를 혼자 빈 교실에 방치한다거나, 재롱잔치 율동을 익혀야 하는데 잘 따라 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아이를 때리고 밀치는 등의 경우가 많았다”며 “부모를 위한 보여 주기식 보육 활동으로 전문성을 포장하기 위해 다급하다 보니 가혹행위를 했다는 식”이라고 꼬집었다. 학대를 훈육이나 교육으로 착각하고 있는 셈이다.

“도대체 뭘 위해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지 자체를 잊고 있는 거죠. 낮잠 그 시간에 안자면 어떻고, 율동 못 배우면 어때요. 안전하고 따뜻하게 아이를 대하는 것이 최우선이 돼야 하는데요. 특별활동 시간 전까지 꼭 뭘 해야 하고, 낮잠을 재워야 하고, 언제까지 이 율동을 다 못 가르치면 안 된다는 식으로 다그치는 교육 과정, 조직 문화와 전문성 부족 등이 총체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상황인 거죠.”

이런 전문성의 문제는 원장에게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학대 사건이 발생한 시설의 원장들에게서는 △가혹행위가 벌어지는데도 학대라는 인식 자체가 없거나 △오히려 아이를 혼내서라도 목적을 달성하라고 교사에게 강요하거나 △교사에게 아동을 학대하는 장면을 직접 보여주기까지 하거나 △부정적 언어를 사용하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등의 특징이 드러났다.

 ◇ 리더십 공백의 문제 

정 교수는 “무엇보다 교사의 일과와 대집단 운영 방식을 관찰하고 부적절 행위를 방지해야 할 원장이 아동 인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데다, 조직관리에 무관심하는 등 전반적 리더십 부재가 심각한 조직에서 학대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일과시간에 빈번히 자리를 비우고, 적절한 업무량 조절은커녕 업무를 과중시키고, 교사 간 소통을 방해하는 경우 원장이 학대를 사실상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아동학대가 일어난 어린이집의 조직 특성 중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인 것은 위계적 관계다. 각 사례에서는 교사들이 ’블랙리스트’에 오를까 봐 학대 행위에 대한 진술을 거부하기도 했고, 원장의 퇴직 후에야 학대 행위를 신고하거나, 다른 교사의 학대를 보고했는데도 원장이 ‘못 본 척하라’고 지시하는 등의 특징이 드러났다. ‘원장이 교사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라거나 ‘각 반 교실에서 생활해 서로 다른 반의 일을 알지 못했다’는 진술이 나오는 것도 학대 사건 발생 조직의 주요 특징이다. 건강하지 못한 조직 특성이 아동학대로 이어지거나, 이를 묵인하게 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설문조사에서 교사들에게 조직 문화에 대해 물었을 때, 최근 2주간 ‘부적절한 행위’로 분류된 일을 했다고 답한 교사집단의 경우 자신이 근무하는 어린이집의 조직문화가 부정적이라고 답한 점도 같은 맥락이다.

조직 문화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부적절 행위에 대한 빈도가 높은 응답자 그룹이 △원장이 주기적으로 교사회의를 통해 적절한 지도에 대해 안내하지 않고 △원장이 주기적으로 보육실을 참관해 모니터링하고 피드백을 주지 않고 △과도한 행동을 하는 교사에게 주의를 주지 않고 △교사가 자주 그만두거나 새로 들어오며 △동료가 문제 행동을 했을 때 증거가 명확하지 않는 한 지적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설문조사에서 물은 부적절 행위는 △지저분한 옷 기저귀 등을 방치하기 △울거나 아프다고 해도 모른 척하기 △’몇 번을 말했니, 넌 두고 갈 거야’ 등의 말로 위협하기 등이다.

정 교수는 “아동학대 예방을 위해 교사의 스트레스를 관리하고, 교사 간 협력하는 조직문화를 만들 수 있는 원장 리더십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며 “해외 보육시설에 가보면 원장들이 그렇게 바쁠 수가 없는데 우리의 경우 원장 직무에 대한 명확한 규정과 인식이 너무나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아동학대 사건에서 드러난 어린이집 조직특성과 전문성 부족. 그래픽=김경진기자
아동학대 사건에서 드러난 어린이집 조직특성과 전문성 부족. 그래픽=김경진기자

 ◇ 결과 위주 누리과정도 개선돼야 

기본적으로 유아교육과 보육 과정에서 ‘뭔가를 열심히 가르치겠다’는 집착 자체를 버리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즉 표준보육과정(어린이집), 누리과정(유치원)에 대한 놀이 중심 개편이 절실하다는 목소리이다.

어린이집에 보급된 현행 표준보육과정은 ‘표준보육과정에 제시된 각 영역의 내용을 균형 있게 통합적으로 편성한다’거나 ‘보육계획에 의거해 운영한다’는 등 영유아 반의 수업을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하라고 권장한다. 또 동시에 ‘놀이 중심으로 편성하라’는 원칙도 함께 제시한다. 이 두 가지 원칙은 동시에 수행하기 어렵다는 게 연구진의 판단이다.

연구팀은 ‘영유아의 흥미와 요구에 맞춰 보육 과정의 흐름을 계획하고, 이조차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다’는 식의 기준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몇 시까지 꼭 낮잠을 재워야 하고, 반드시 어떤 과제는 수행할 수 있도록 유아들을 가르쳐야 한다는 강박과 지도방식이 결과적으로는 유아들의 발달에 부정적 영향을 주고 있는 셈이죠.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존재 이유는 아이들을 수동적 존재로 길들이는 게 아닙니다. 먹기 싫은 음식을 먹이고, 오지 않는 잠 억지로 재우고, 아이들이 자꾸 ‘선생님 우리 언제 놀아요?’라고 되묻게 만드는 일은 결코 아이들을 위한 게 아니잖아요.”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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