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번식 통해 변해 우리 안에는 얌전한 모습 가축이

그린란드에서 살고 있는 사향소. 제이콥 빈터 연구원 제공

2015년 봄, 한 장의 사진이 날 사로잡았다. 덴마크에서 온 동료 연구자가 그린란드에서 찍은 거라며 자랑하듯 보여준 사진 속엔 치렁치렁한 털과 커다란 뿔을 가진 낯선 동물이 거친 숨을 내뿜고 있었다. 고위도 북극에만 서식한다는 대형 초식동물. 언젠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정지한 듯한 화면 속에서 눈을 맞으며 가만히 서 있던 모습이 기억났다. 그리고 이듬해 여름, 북극의 해양조류를 연구할 기회가 생겨 그린란드를 찾았고 사진과 영상으로만 보던 사향소를 만날 수 있었다. 몸길이 1.5m에 무게는 400㎏ 가까이 나가는 덩치 큰 녀석들은 느릿느릿 걸어 다니며 한가로이 풀을 뜯다가 이내 사라졌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엔 발굽이 찍힌 자국과 보드라운 털 뭉치가 남았다. 쉽게 보기 힘든 북극 동물을 만났다는 사실에 가슴이 두근거렸고 그들과의 조우는 긴 여운으로 남았다. 하지만 사향소에 대한 문헌을 찾던 중 알래스카에서 이미 가축화되어 농장에서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허탈해졌다.

그린란드에서 연구 도중 발견된 사향소 무리. 치렁치렁한 털, 커다란 뿔이 특징이다. 이원영 선임연구원 제공

사향소 털은 양모보다 따듯하고 질기며 캐시미어보다 부드럽다고 알려져 있다. 다 큰 사향소 수컷은 1년에 보통 3㎏의 털을 생산한다. 따라서 북극에 사는 원주민들에게는 예전부터 중요한 의복 소재가 되었다. 사향소의 털을 뜻하는 영단어 ‘qiviut’는 원래 그린란드 이누이트 원주민 언어로 포유류 솜털 혹은 조류 깃털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6세기 말부터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하면서 사향소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18세기 무렵엔 캐나다에서 사향소 가죽을 영국으로 보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하지만 사향소는 양이나 소처럼 쉽사리 가축이 되지 않았다. 가축화를 위해선 해당 동물의 성격과 갇힌 공간에서의 번식 가능 여부가 중요한데 사향소는 예민한 성격 탓에 쉽게 성공하지 못했다. 1929년 그린란드에서 아이슬란드로 옮겨진 7마리의 사향소 가운데 6마리는 도착하자마자 죽고 말았다. 사향소는 또 양이나 가축소가 가진 질병에도 취약했으며 갇힌 공간에선 번식을 못했다.

눈밭을 배경으로 느릿느릿 걸어 다니며 한가로이 풀을 뜯는 그린란드의 사향소 무리. 이원영 선임연구원 제공

북극의 생태를 연구해온 미국 존 틸 주니어 박사는 사향소 가축화를 위한 연구기관을 설립하고 야생에서 태어난 지 4~5개월 지난 개체들을 포획했다. 어린 사향소는 큰 성체에 비해 덜 예민했고, 어릴 때 길들여진 녀석들은 매우 유순히 인간을 따랐다. 게다가 넓은 농장 환경에서 위생적인 환경을 조성해주자 번식도 성공적으로 이뤄졌다.

가축화된 사향소는 덩치가 작고 뿔이 없다. 위키커먼스 캡처

농장에서 동물을 쉽게 다루는데 사향소의 뿔과 커다란 몸뚱이가 장애가 되었다. 사람들은 인위적으로 뿔이 없고 아담한 크기의 개체들을 골라서 선택적으로 번식을 시켰다. 이렇게 몇 세대가 지나자 농장엔 야생에서 보기 힘든 뿔 없는 작은 개체들이 생겨났다. 1964년 알래스카에서 33마리로 시작한 가축 사향소의 숫자는 1976년엔 100마리로 늘어났다. 지금은 알래스카 북부와 서부 해안 지역 농장에 약 5,300마리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린란드에서 마주친 고위도 북극에만 서식한다는 대형 초식동물 사향소 무리. 제이콥 빈터 연구원 제공

결국 가축화를 둘러싼 사향소와 인간의 줄다리기는 면역학과 유전학으로 무장한 인간의 승리로 끝났다. 사향소는 끝내 인간의 손에 길들여져 농장 울타리에 갇히고 말았으며, 이제 야생 개체군은 캐나다와 그린란드 북부 일부 지역에 남아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원영 극지연구소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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