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 외부 소음 감지해 반대 음파 발사

게티이미지뱅크

소음은 현대인을 괴롭히는 대표적인 공해 중 하나다. 지속적인 소음은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릴 뿐 아니라 신체ㆍ정신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소음이 난청이나 수면장애는 물론 심하면 심장병 뇌졸중 인지장애 등도 유발한다는 사실은 이미 여러 연구에서 증명됐다. 국내 아파트 거주자의 80% 이상이 층간 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있다는 설문 조사도 있다.

최첨단 과학기술로 무장한 기기들이 속속 등장하는 시대에 미세먼지를 걸러주는 공기청정기처럼 소음을 줄여주는 장치는 없는 걸까. 소음으로 고통받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이론상으론 충분히 가능하다. 대표적인 것이 헤드폰이나 이어폰의 노이즈 캔슬링(소음 제거) 기술이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적용된 헤드폰을 착용하면 주변의 잡음이 줄어들고 음악만 또렷하게 들린다. 귀를 완전히 덮는 헤드폰뿐만 아니라 작은 이어폰으로도 이런 기능이 가능하다. 단순히 귀를 틀어막아 소음을 차단하는 방식이 아니라는 뜻이다.

◇소음은 소음으로 잡는다

노이즈 캔슬링의 원리는 간단하다. 소리는 물체의 진동에 의해 생긴 음파가 귀청을 울리어 귀에 들리는 것을 말한다. 소리는 파동의 형태로 전달되는데 소음과 정반대의 파형을 지닌 음파를 만들면 소음을 제거할 수 있다. 소음을 반대 모양의 소음 파장으로 제거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3의 진폭을 지닌 음파에는 -3 진폭의 음파를, 진폭이 -5인 음파에는 진폭 5의 음파를 대응시키면 두 음파가 합쳐져 진폭이 0인 상태가 이어지게 된다. 이처럼 두 음파가 서로를 상쇄하는 과정을 상쇄간섭이라고 한다.

이론상 흑색 선의 음파에 정반대의 음파를 합치면 소리가 사라지는데 이를 상쇄간섭이라 부른다.

노이즈 캔슬링 시스템은 1936년 미국 발명가 폴 루엑이 특허를 취득하면서 시작됐는데 1950년대에 기내 소음이 심한 항공기와 헬리콥터에서 근무하는 파일럿을 위해 처음 개발됐다. 1984년 독일 항공사 루프트한자가 음향기기 회사 젠하이저에 파일럿용 노이즈 캔슬링 헤드셋 개발을 요청하면서 노이즈 캔슬링 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됐다. 1992년 일본에선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적용된 차량이 처음으로 선보이기도 했다.

특별한 기술이 적용된 만큼 노이즈 캔슬링이 적용된 헤드폰은 일반 헤드폰과 구조가 다르다. 음향기기로부터 소리를 전달하는 스피커 외에 외부 소음과 정반대의 음파를 만들어주는 장치가 감춰져 있다. 이 장치는 외부에서 귀로 전달되는 소음을 감지하는 마이크와 이 마이크가 감지한 소음을 토대로 반대 파형의 음파를 만드는 회로로 구성돼 있다.

마이크가 외부 소음을 감지해 회로에 전달하면 회로에선 이 소음의 진폭과 파장, 진동 주기, 진동수 등을 분석해 해당 소음과 반대 파동의 음파를 만들어 소음을 제거한다. 이 같은 과정을 위해선 별도의 전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배터리가 사용된다.

◇“고음역과 불규칙한 소음은 제거하기 어려워”

마이크와 회로를 통한 노이즈 캔슬링은 능동적인 방식으로 소음을 조절한다는 뜻에서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또는 액티브 노이즈 컨트롤이라 불린다. 패시브 방식은 헤드폰 커버나 흡음재 등을 사용해 소음을 차단하는 것을 말한다. 헤드폰의 소음 제거 능력을 수치로 쓸 땐 대부분 액티브와 패시브 방식의 효과를 더해서 표기한다. 헤드폰을 오래 사용할 경우 소음 제거 능력이 점점 떨어지기도 하는데 이는 헤드폰 커버 재질이 마모되는 등 패시브 방식의 효과가 차츰 줄어드는 탓이다.

헤드폰 내부 마이크로 외부 소음을 감지한 뒤 회로를 통해 분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면 자연스럽게 시간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런 기기들은 어떻게 실시간으로 소음과 반대 파형의 음파를 만들어내는 걸까. 헤드폰 피아톤 시리즈로 유명한 국내 음향기기 전문기업 크레신의 김태영 연구원은 “시간의 차이보다는 소음 음파와 정확히 반대되는 음파를 정확한 타이밍에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최적화된 소리는 운행 중인 비행기나 지하철 기체에서 나는 소음처럼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중저음이다. 중저음은 파장이 길고 진동 횟수가 적어서 상대적으로 반대 음파를 만들어내기 쉬우며, 반복적인 소리는 예측이 쉽기 때문이다. 반면 파장이나 지속시간이 일정하지 않은 소리나 파장이 짧은 고음 부분은 제거가 쉽지 않다. 김 연구원은 “인간의 가청 주파수 대역 범위는 약 20㎐(헤르츠)~20㎑(킬로헤르츠ㆍ1,000헤르츠) 정도이고 사람의 목소리는 300㎐~5㎑ 정도인데 현재 구현되는 액티브 노이즈 캔슬링 기술은 20㎐~2㎑ 정도여서 2㎑ 이상 대역의 고음은 대부분 패시브 방식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사람 목소리가 포함된 중고역대는 패시브 방식으로 차단하고 저음역은 액티브 방식으로 제거한다.

◇자동차 소음ㆍ코골이 소음도 차단

헤드폰의 소음 차단은 마이크의 위치에 따라 성능도 달라진다. 마이크가 헤드폰 외부에 있는 피드 포워드 방식은 저음역부터 중고역대까지 광대역을 제어한다. 마이크가 내부에 있는 피드백 방식은 헤드폰 덮개를 파고드는 저음을 집중적으로 차단한다. 노이즈 캔슬링 기술 초기엔 피드 포워드 방식이 주를 이루다 차츰 피드백 방식으로 바뀌었고 최근에는 두 가지가 혼합된 하이브리드 방식의 제품들이 출시되고 있다. 성능은 물론 하이브리드 방식이 가장 좋다. 김 연구원은 “마이크가 귀에 가까이 있을수록 귀에 전달되는 소음의 음파를 정확히 감지해 제거할 수 있다”며 “노이즈 캔슬링 회로가 헤드폰 내부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 중 일부를 소음으로 파악해 제거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를 보완해 제거된 일부 음역의 소리를 키워 원음을 살린다”고 설명했다.

노이즈 캔슬링은 헤드폰이나 이어폰에만 쓰이는 기능은 아니다. 최근에는 차량 내부의 소음을 제거하는 데도 쓰인다. 특히 자동차 주행 중에는 엔진 흡기관이나 배기관의 공명음, 타이어와 노면의 마찰음, 주행풍이 차체에 부딪히면서 내는 풍절음 등 각종 소음이 끊이지 않고 귀에 잘 들리지 않는 저주파나 고주파의 소음도 많다. 과거엔 흡음재나 차음재로 소음을 차단ㆍ흡수했으나 최근에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활용해 차량 내 소음을 제거하고 있다. 지난해 이스라엘 스타트업 기업 콰이어트라이프 테크놀로지스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으로 코골이 소리를 줄여주는 수면 안대를 내놓기도 했다. 코골이 소리와 반대 음파를 스피커로 내보내 상쇄시키는 방식인데 지하철이 플랫폼에 들어올 때 나는 소음과 비슷한 수준인 70㏈(데시벨) 크기의 소음을 15~17㏈ 정도 줄여준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음 제거 성능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국제적으로 공인된 수치는 아직 없다. 외부 소음 ‘99% 차단’이라고 쓰여 있어도 관련 국제기관에서 공인해준 수치는 아니라는 이야기다. 최근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크게 향상된 무선 헤드폰 WH-1000XM3를 출시한 소니코리아 관계자는 “국내와 달리 일본 업계 공식 측정 방식이 존재하지만 이를 통해 도출된 데이터가 소비자에게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아 외부에 밝히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며 “개인마다 선호하는 음향 수준이 다르므로 소비자가 직접 청음하고 성능을 경험하는 것이 좋다”라고 말했다.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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