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분쟁지역] 에티오피아 내전 해결 청신호

2016년 8월 21일 브라질 리우 올림픽 남자 마라톤대회에서 은메달을 딴 에티오피아의 페이사 릴레사가 결승선을 통과한 뒤 팔로 X자를 만들며 반정부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X자 세리머니’는 에티오피아에서 벌어진 오로모족에 대한 에티오피아 정부의 탄압을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리우데자네이루=AP 연합뉴스 자료사진

과거 에티오피아 지역을 지배했던 왕조인 솔로몬 왕조는 19세기 이전까지는 에티오피아 전역을 통일시키지 못했다. 여러 종족이 독자적으로 세력을 유지하는 형태였다. 16세기에는 유명한 커피 산지인 하라르에 있었던 이슬람 국가, 아달 왕국이 솔로몬 왕조를 침략했다. 18세기에는 오로모족이 침략해 현재의 오로미아 지역에 독립국가도 세웠다.

19세기 중반부터 솔로몬 왕조는 여러 종족을 통합하고 외세의 침략을 물리치며 에티오피아를 통일해 나갔다. 그러나 정복전쟁을 통해 다른 종족들을 굴복시켰고 서구의 식민지배와 같은 방식으로 가혹하게 통치를 하였기 때문에 다른 종족들이 반감을 갖게 됐다. 1974년 공산 정권이 들어설 때까지 황제들은 중앙집권적 통치 구조를 강화하고 다른 종족을 배제하였으며 암하라족의 문화, 종교, 언어를 강요하는 정책을 실시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영국의 통치를 받게 된 에리트레아와 오가덴 지역이 에티오피아에 통합되었으나 국경 분쟁이 이어졌다. 이탈리아의 침략과정에서 또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된 에리트레아는 에티오피아와 전쟁을 통해 1991년 결국 독립한다. 소말리아는 소말리족이 주로 살고 있는 오가덴 지역에 대한 영토 회복을 주장하며 1977년 에티오피아를 침공했다. 결국 에티오피아는 이웃국가인 에리트레아ㆍ소말리아와 적대적 관계를 이어가야 했고, 두 국가는 반정부활동 조직의 근거지가 돼 에티오피아 내전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지난 2005년 6월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젊은이들이 돌을 들고 시청으로 달려가고 있다. 아디스아바바=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소수가 다수 종족 지배ㆍ탄압해 내전 발생

에티오피아는 햄, 셈, 쿠시어족이 모두 함께 살고 있으며 종족 수도 80개에 이른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다양한 어족 및 종족 집단이 모두 함께 살고 있는 다종족 국가다. 주요 종족은 오로모족 34.4%, 암하라족 27%, 소말리족 6.2%, 티그레이족 6.1% 등으로, 오로모족이 최대 종족이지만 역사적으로 북부의 암하라와 티그레이족이 지배종족으로 다수종족인 오로모족을 비롯해 다른 종족을 지배해 왔다.

에티오피아 내전은 결정적으로 셀라시에 황제와 멩기스투 공산정권이 오로모족과 소말리족 등 다른 종족을 탄압하였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1974년 민중 봉기로 인해 공산정권이 수립되면서 종족 자결권에 대한 열망이 더욱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공산정권은 종족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지 않았고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폭력을 통해 해결했다. 이에 대해 여러 종족이 공산정권을 ‘암하라의 압제자’로 인식하게 되었고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투쟁했다.

특히 에티오피아 정부는 다수 종족인 오로모족을 ‘식민지화’ 전략이나 다름없는 ‘암하라화’ 정책을 통해 가혹하게 탄압했다. 무엇보다 오로모인을 에티오피아인으로 대한 것이 아니라 식민지의 피지배민으로서 취급하였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정부 정책에 저항하고 오로모 정치조직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정부에 의해 강제 수용소나 형무소에 수감되거나 살해됐다. 2016년 브라질 리우올림픽 남자 마라톤에서 은메달을 딴 오로모족 출신의 페이사 릴레사는 시상 당시 에티오피아 정부의 오로모족 탄압을 폭로하는 ‘X자 세리머니’ 퍼포먼스를 벌이며 오로모족의 실상을 세상에 알리기도 했다.

정부 탄압에 대해 오로모족은 정치ㆍ군사적 조직을 결성해 반정부활동을 벌였다. 오로모족은 1973년 오로모해방전선(OLF)과 군사조직인 오로모해방군(OLA)을 조직하여 강력한 저항을 하였다. 1991년 5월 멜레스 제나위가 이끄는 에티오피아 인민혁명민주전선(EPRDF)이 공산정권을 무너뜨렸고 대통령이 된 후 종족연방제를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 종족연방제는 언어ㆍ문화적 다양성을 보장하고 종족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종족에 기반을 둔 지방자치를 인정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그러나 2005년 선거 결과는 뜻하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 종족에 기반을 둔 연방주의가 필연적으로 종족집단간 경쟁으로 이어지고, 각 정파가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됐다. 선거에서 다른 종족들이 집권당인 EPRDF에 도전하려 하자, 제나위는 이를 폭력적으로 탄압했다. 그 해 5월 15일 있었던 집권 여당의 총선 부정 의혹에 대해 6월과 11월에 잇따라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이를 보안군이 진압하는 과정에서 총 193명의 시위자가 사망하고 763명이 부상을 당했다. 2만명은 구금을 당했다. 제나위는 오히려 정치적, 사회적, 종교적 자유를 억압하고 통제했다.

EPRDF는 티그레이, 암하라, 오로모 등 3개 종족이 이끄는 티그레이인민해방전선(TPLF), 에티오피아인민민주운동(EPDM), 오로모인민민주조직(OPDO) 등의 연합체였으나, 티그레이인이 1991년 민주화 이후 30년간 권력 독점했다. 6% 인구를 차지하고 있는 티그레이인이 정부를 주도하며 다수인 오로모족과 암하라족을 배제시켜 반정부 시위와 게릴라 공격이 발생했고 결국 2018년 2월 15일 EPRDF의 하일레마리암 데살렘 총리의 퇴진으로 이어졌다.

1991년 이전에는 암하라족과 티그레이족에 대해 오로모족과 소말리족이 저항을 했지만, 1991년 이후에는 티그레이족에 대해 암하라족과 오로모족이 힘을 합해 저항하는 상황이 됐다. 한마디로 에티오피아의 종족 간 갈등은 상황이 맞아떨어진다면 언제든지 합종연횡을 통해 재편되며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아비 아흐메드 에티오피아 총리.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아비 아흐메드(왼쪽에서 두번째) 에티오피아 총리와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오른쪽에서 두번째) 에리트레아 대통령이 지난 7월 종전 선언에 서명하고 있다. 에티오피아 FANA방송 트위터 캡처
◇종족갈등 풀어야 지속가능한 발전 가능

에티오피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문제는 무엇일까. 황제의 통치 시기, 공산정권, 제나위가 이끌었던 EPRDF 정권 모두 종족갈등을 풀지 못한 게 문제였다. 과거 역사에서 발생했던 부당한 종족 관계를 청산하고 모든 종족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정치적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난 4월 42세의 젊은 아비 아흐메드가 총리로 취임했다. 반년밖에 안 됐지만 에티오피아는 역사상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무슬림인 오로모족 아버지와 정교회 신자였다가 개종한 암하라족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비 총리는 오로모, 암하라, 티그레이 등 3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한다. 그래서 종족과 종교를 뛰어넘어 국민을 통합할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까지 이어진 그의 개혁 정책은 내전과 국경 분쟁을 종식하고 국민과 국가를 통합하여 진정한 발전으로 나아가는 행보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에리트레아와 종전을 선언하고 9월에는 평화협정을 체결해 20년간 이어진 무력 분쟁을 종식시켰다. 또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3국 정상이 에리트레아의 아스마라에서 회담을 개최해 아프리카 뿔 지역의 협력을 논의함으로써 이 지역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최근에는 1977년 소말리아의 에티오피아 침공 이후 중지했던 에티오피아항공이 41년 만에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 운항을 재개했다. 아울러 에티오피아를 방문하는 모든 아프리카인에 대해 도착비자를 발급하도록 문호를 개방했다.

지난 7월 에티오피아와 에리트레아가 상업용 비행기의 직항노선 운항을 20년 만에 재개한 가운데, 에티오피아 측 항공기를 타고 온 승객이 에리트레아 아스마라국제공항에서 기다리던 친척과 만나고 있다. 같은 달 아비 아흐메드 에티오피아 총리와 이사이아스 아페웨르키 에리트레아 대통령은 국경분쟁을 끝내는 종전선언을 발표하고 외교 관계 정상화에 합의한 바 있다. 아스마라=로이터 연합뉴스

에티오피아 경제는 현재 고속 성장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에티오피아를 아프리카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네 마리 사자’로 넣는데 주저하지 않고 있다. 경제발전은 아비 총리가 추진하는 개혁정치를 성공으로 이끄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뿌리 깊은 종족 갈등이 가장 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고려와 정책적 배려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지난 9월에 발생한 두 차례의 민족 간 유혈사태는 에티오피아가 추진하는 개혁정책 과정에서 국민을 통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김광수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HK 교수

김광수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HK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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