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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형제복지원과 사립유치원, 그 닮은 꼴

입력
2018.10.18 18:2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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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유치원 운영 비리가 사회 이슈가 되었다. 그런데 형제복지원 사건을 좀 아시는 독자 입장에서는 복지원과 사립유치원 비교가 너무 과장된 것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다. 1980년대 이른바 부랑인 수용시설이었던 형제복지원 운영 비리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원장 일가의 비리 수준이 지금 유치원 문제와 비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개별 운영 단위로서 형제복지원 비리와 유치원 회계부정을 동일시하면서 이야기하려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은 아니다. 그럴 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공통점이 눈에 보인다. 지역사회에 여전히 남아 있는 이른바 ‘지역유지-정∙관계-언론’ 간 유착 먹이사슬 구조다.

형제복지원 비리가 당시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조사나 수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이유는 원장 일가가 중심이 되어 지역사회 공무원과 정치인, 경찰의 이른바 스폰서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복지원 운영 비리를 눈감아 주고 문제 삼지 않는 조건으로 물적 대가를 챙긴 정황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다. 약간의 ‘투자’를 바탕으로 원장 일가는 막대한 부를 축적하여 그 가족들이 지금까지 떵떵거리며 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물론 이런 먹이사슬 구조가 가능했던 배경으로 당시 전두환 정권 차원에서 중앙으로부터의 비호도 있었다. 이건 나름 민주화가 된 오늘날 분명히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그러나 지역사회 차원의 비리와 먹이사슬 구조에 중앙부처로서 교육부가 눈을 감고 왔다는 점은 분명히 밝혀야 할 사안이기도 하다.

국공립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지자체에서 만들려 해도 사립유치원과 어린이집 원장들이 압력을 가하고 반대해서 힘들다는 이야기는 이미 늘 떠돌았다. 부모들이 그렇게 바라는 국공립 보육ㆍ교육시설 확대가 단순히 국가의 재정적 여력이 없어서만은 아니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많은 전문가, 언론인, 정치인 등이 있었지만 ‘감히’ 문제제기를 못했다. 필자도 모르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뚜렷한 증거도 없었고 게다가 입을 열었다가 원장님들로부터 어떤 봉변이나 압력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기검열 기제로 작용해 침묵하였다. 용기가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었던 점을 이번 기회에 반성한다. 만약 유치원 비리를 끈질기게 추적하고 증거자료를 모은 시민감사관의 노력과 재선에 악재가 될 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세상에 알린 박용진 의원의 용기가 없었더라면 나는 여전히 입을 다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용기 있는 이들의 노력으로 사립유치원 원장들이 공모하여 돈을 만들고 이 돈을 바탕으로 지방의회, 지역사회 공무원, 정치인, 언론을 대상으로 회유와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밝혀지고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비리를 조사한 시민감사관을 상대로 “10억을 주겠다.”고 제안했거나 택배로 금괴를 보낸 사례마저 등장하고 있다. 괜히 줬다가 들통날 가능성이 큰 이들 시민감사관에게도 대담하게 그런 시도를 할 정도면, 집단으로서 유치원 원장들이 정책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역사회 주체들과 어떤 ‘은밀한 네트워크’를 맺었으며 그 대가로서 학부모와 아이들을 볼모로 하여 마음껏 돈을 쓰고 살았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여러 법률 개정안과 대책이 나오고 있다. 지금 분위기만 본다면 유치원 비리문제가 모두 해결될 것 같다. 그러나 아니다. 수십 년에 걸쳐 구축된 지역사회 먹이사슬 구조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언론보도가 잦아들고 사회적 관심이 다른 데로 가게 되면 정관계를 무대로 하여 어떤 시도가 있을지 모른다. 이미 몇 년 전에 드러난 형제복지원 사건도 이제야 본격적인 조사를 하려는 단계이다. 유치원 운영 비리 척결,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불가역적 개혁이 구조화될 때까지 관심과 감시의 눈초리를 몇 년은 유지해야 할 때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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