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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시’ 뿌렸다고 옥살이한 재수생, 41년 만에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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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자시’ 뿌렸다고 옥살이한 재수생, 41년 만에 무죄

입력
2018.10.17 1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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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울과 법전을 든 정의의 여신상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앞을 내려다 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저울과 법전을 든 정의의 여신상이 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앞을 내려다 보고 있다. 신상순 선임기자

박정희 정권 당시 대학생들로부터 건네받은 풍자시를 인쇄했다는 이유만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재수생이 41년 만의 재심에서 무죄 선고를 받았다.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 김인겸)는 긴급조치 9호 위반 등 혐의로 1977년 징역 1년을 선고 받아 수감됐던 최상호(65)씨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긴급조치 9호 위반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가 위헌ㆍ무효이므로 대법원과 헌법재판소 판결 취지에 따라 무죄로 판결을 선고한다”고 밝혔다. 다만, 그가 위조된 주민등록증을 소유했다는 혐의는 인정해 징역 4월에 선고유예를 내렸다.

홀로 상경해 대학 입시를 준비하며 학원 강사로 일하던 최씨는 76년 2월 25일 대학생 이모씨 등의 요청으로 풍자시가 담긴 유인물을 인쇄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당시 검찰은 최씨 공소장에 ‘5ㆍ16 후의 국내 제반 정세에 대한 사실을 왜곡 표현하고 긴급조치를 비방하는 내용이라는 점을 알았음에도 “이 내용을 등사해 학원가에 돌리면 인기가 있겠다. 의미심장한 내용이다. 잘들 해보라”고 격려하며 유인물 등사ㆍ제작ㆍ배포행위를 방조했다’고 적었다. 또 최씨가 위조된 주민등록증을 가지고 있었다며 공문서 위조 혐의도 적용했다. 법원은 같은해 9월 1심에서 징역 2년 및 자격정지 2년을 선고했고, 다음해 2월 2심에서 징역 1년 및 자격정지 1년을 선고했다.

이 풍자시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말뿐인 민주주의이고 긴급조치가 국민의 권리를 탄압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최씨는 “당시 학생들이 가져온 원고를 보고, 내가 하고 싶던 이야기라 인쇄를 도왔다”며 “독재정권에 맞서 목숨을 바친 분, 더 억울한 분도 많다”고 소회를 밝혔다. 최씨는 “고문 받고 끌려갔다고 하니 지인들도 피하고, 변호해 줄 사람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자백했다”며 “유인물을 배포한 대학생 수백명은 다 빠지고, 시골에서 상경해 아무 힘도 없던 제게 다 뒤집어 씌운 것”이라고 말했다. 최씨는 “친구가 주민등록증을 주워 통금에 걸리면 쓰라며 준 것을 가지고 있었다는 이유로 갑자기 끌려가 쇠사슬에 묶여 조서를 꾸몄다”면서 “재심 결과가 실망스러워 상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4공화국 유신헌법상 대통령은 필요시 내정ㆍ외교ㆍ국방ㆍ경제ㆍ재정ㆍ사법 등 국정전반에 필요한 긴급조치를 발동할 수 있는 초법적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 권한에 따라 74년과 75년에 걸쳐 긴급조치 1~9호를 차례로 발동했다. 특히 75년 5월 발동된 긴급조치 9호는 그간 나온 긴급조치의 ‘종합판’과 같은 강력한 조치였는데, 유신헌법을 반대하거나 반대운동을 청원ㆍ보도한 경우 영장없이 체포할 수 있도록 했다. 79년 10ㆍ26 사태로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할 때까지 4년 이상 효력을 발휘해, 이 긴급조치로만 800여명의 지식인ㆍ학생 등이 구속돼기도 했다.

정반석 기자 banse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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