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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충동 시달리는 자살예방 상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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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충동 시달리는 자살예방 상담원

입력
2018.10.18 04:40
수정
2018.10.18 08:49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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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상담 잘 받았다고, 괜찮다던 사람이 며칠 후에 결국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가 뭘 잘못해서 죽인 것 같아요. 이러다 나도 죽겠다 싶더군요.”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한 이모(29)씨는 졸업 후인 2015년 서울 한 자살예방센터에 취업했다.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온 청소년 상담자가 결국 자살했다. 감당하기 힘든 충격이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도 이씨는 정상적으로 출근을 해야 했고, 또 다른 누군가의 자살 상담을 들어줘야 했다. 이씨는 17일 “트라우마나 심리치료라도 받고 싶었지만, ‘나 역시 힘들다’고 얘기했다간 사명감이 없다는 비판을 받을까봐 함부로 얘기를 꺼내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그렇게 상담원으로 근무한 2년간 만성 스트레스와 수면장애, 우을증에 시달리다 결국 작년 말 일을 그만 뒀다.

하루에 ‘죽고 싶다’는 전화만 최대 100여통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자살예방 상담원들이다. 그들이 혼신을 다한 상담으로 얼굴도 모르는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고 있지만, 그것이 더해질수록 그들의 정신건강은 피폐해지고 있다.

2011년 ‘자살예방 및 생명존중문화 조성을 위한 법률’(자살예방법)이 제정되면서 현재 중앙자살예방센터를 비롯해 광역지방자치단체 15곳, 기초자치단체 200여곳에서 전담인력이 자살예방사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들의 처우는 열악하기 그지 없다. 서울시자살예방센터의 경우 2, 3명씩 돌아가며 12시간씩 근무하는데, 하루 상담전화만 80~100건에 달한다. 또 다른 자살예방센터의 상담원 윤모(34)씨는 “자살 위기 상담은 절반 정도고, 나머지 절반은 장난전화”라며 “여성 상담원이 전화를 받으면 ‘한 번 만나주면 죽지 않겠다’고 성희롱을 하는 상담자들도 있다”고 전했다. 장난전화인 줄 알면서도 그냥 끊을 수도 없다. 자살예방 상담원은 ‘어떤 경우에도 화를 내거나 전화를 먼저 끊으면 안 된다’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

[저작권 한국일보]자살충동상담원 그래픽=박구원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자살충동상담원 그래픽=박구원 기자

제대로 된 고용보장을 받지 못한다는 점도 이들의 스트레스를 부추기는 요인이다. 대다수 자살예방센터는 민간위탁으로 운영되는데, 3년에 한번씩 위탁기관이 바뀌는데다가 전국의 자살예방 상담원의 73.6%가 1년 단기 계약직인 비정규직(보건의료노조 지난해 실태조사)이다. 고용 불안에 높은 업무강도까지 더해져 평균 근속기간은 2.7년에 불과했다.

상담원들이 오히려 자살충동을 느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2016년 중앙자살예방센터의 ‘자살예방사업 실무자의 정신건강 실태분석’에 따르면 ‘최근 1년 이내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실무자 156명 중 34명(21.9%)이 ‘그렇다’고 답했다. 일반인(5.2%)보다 4배 이상 높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인력난을 최우선 해결과제로 꼽는다. 주상현 보건의료노조 서울시정신보건지부장은 “지난해 기준으로 일본의 2.1%에 불과한 한국의 자살예방 관련 예산을 늘려 인력을 확충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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