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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적어 생리대 교체도 못해요” 백화점 판매직의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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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실 적어 생리대 교체도 못해요” 백화점 판매직의 고통

입력
2018.10.17 11:37
수정
2018.10.17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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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고객용(화장실)은 이용할 수가 없어요. 고객용 시설은 이용을 못하게 하기 때문에…. 이용하다 걸리면 난리가 나죠. 백화점 관리자한테. ‘왜 고객용 시설을 이용하냐’면서. 그리고 고객들한테 컴플레인(항의)이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요.”(17년차 백화점 노동자 H씨)

“매장 내 의자가 있지만 손님이 없다고 앉아 있을 수는 없고요. 의자에 앉아 있다고 하는 거면 뭔가 페이퍼 작업이나 이런 걸로 앉아 있을 수 있는 거지, 그냥 앉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14년차 면세점 노동자 A씨)

백화점이나 면세점에서 일하는 판매직 여성 근로자들이 화려한 겉모습 뒤편에 감춰진 열악한 근로 여건에서 고통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근무환경은 질환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에게 ‘앉을 권리, 쉴 권리’는 구두선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서비스연맹)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주최로 17일 국회에서 열린 ‘백화점 면세점 판매직 노동자 근무환경 및 건강실태 연구결과 발표와 현장노동자 증언대회’에서 이런 실태가 담긴 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이번 조사는 서비스연맹 의뢰를 받아 김승섭 고려대 보건대 교수가 올 1월부터 10월까지 판매직 근로자를 상대로 실시했다. 백화점 27개 브랜드 1,990명, 면세점 41개 브랜드 816명 등 2,806명이 조사 대상으로 참여했으며, 이중 96.5%(2,708명)가 여성 근로자였다.

응답자의 77.4%는 고객용 화장실 사용을 이용하지 말라는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받아 봤다고 답했다. 하지만 직원용 화장실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지 않은 여건에서 고객용 화장실 사용이 금지되니 기본적인 생리현상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빈발할 수밖에 없다. 응답자 59.8%는 ‘지난 1주일간 근무중 화장실에 가고 싶었는데 가지 못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매장에 인력이 없어서(62.4%ㆍ복수응답), 화장실 칸 수가 부족해서(24.2%), 화장실이 멀어서(21.6%) 화장실 이용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화장실 이용이 어려우니 일부러 물을 적게 마시는 근로자도 있다. 응답자 절반 가까이(42.2%)는 ‘지난 1주일 동안 근무 중 화장실에 가야 하는 상황이 생길까봐 목이 마른데도 물을 안 마신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화장실을 참다가 방광염으로 이어진 근로자(20.6%)도 5명 중 1명 꼴이었다. 20~49세 여성 근로자 전체의 방광염 발병률(6.5%)보다 세 배 이상 높은 비율이다.

화장실 규제로 생리대 교체가 여의치 않을 지경이다. 응답자 39.9%는 ‘지난 6개월간 생리대 교체를 못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으며 17.2%는 ‘지난 6개월간 생리대 교체를 하지 못해 피부 질환, 염증 등이 생긴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판매직 근로자의 의자 사용을 금지하는 문제도 여전했다. 응답자 27.5%는 ‘매장 내 의자가 없다’고 답했고, 37.4%는 ‘의자가 있지만 업무가 없을 때도 원해도 앉을 수 없다’고 답했다. 3분의 2가량(64.9%)이 의자 사용이 어려운 것이다.

근무 시간 내내 서 있어야 해 다리와 발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지난해 한 해 동안 하지정맥류 또는 족저근막염 진단을 받은 적 있다고 응답한 근로자 비율이 각각 15.3%, 7.9%에 이른 이유다. 이는 20~49세 여성 근로자의 평균 발병 비율인 0.6%(하지정맥류), 0.5%(족저근막염)보다 수십배 높은 수치다.

이용득 의원은 “앉을 권리, 휴식할 권리, 화장실 이용은 최소한의 인권인데 백화점과 면세점에서는 이런 최소한의 인권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강규혁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의자 비치, 휴게시설 설치 등이 산업안전보건법 등에 담겨져 있음에도 정부의 무관심과 사업주의 무시로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성택 기자 highn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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