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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다수의 방관 속에 마녀사냥 당한 보육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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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다수의 방관 속에 마녀사냥 당한 보육교사

입력
2018.10.17 04:4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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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 어린이집 교사 투신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 온 ‘보육교사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청원 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갭처
김포 어린이집 교사 투신 사건과 관련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 온 ‘보육교사의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청원 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갭처

지난 11일 오후 10시 55분 경기 김포지역 유명 맘 카페에 ‘우리에겐 소중한 아이입니다’라는 글이 올라왔다. 국화축제를 보러 간 4살 조카가 담임 보육교사에게 안기려다 밀침을 당해 나뒹굴었으나 교사는 돗자리 털기에만 바빴다는 내용이다. 글쓴이는 상황을 직접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들었다면서도 어린이집 이름을 공개했다.

글은 순식간에 다른 맘 카페로 퍼졌다. 보육교사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얼마 안 가 교사 실명과 사진이 올라왔다. 악성 댓글이 달렸고 교사에겐 욕설이 담긴 개인 쪽지가 쏟아졌다. 어린이집도 항의 전화에 하루 종일 시달렸다.

대기 발령을 받은 교사는 사건 발생 불과 이틀만인 13일 새벽 “선생님이 못 일으켜줘서 미안하다’는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투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이 기초적인 조사를 시작하기도 전이었다.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기도 전에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과도한 신상털기와 마녀사냥식 여론몰이 공격에 견디지 못해서였을 게다. 익명의 그늘에 숨어 가혹한 언어로 상대방을 괴롭히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여론몰이에 수많은 희생양이 나왔음에도 여전히 고쳐지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문제는 이런 식의 여론몰이가 여전히 끝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이번에는 조카 글을 올린 글쓴이와 맘 카페, 맘 카페 회원이 공분 대상이 됐다.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고 관련 기사 댓글은 ‘맘충’ 등 혐오 표현으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맘 카페 폐쇄와 수사 촉구 청원 글로 도배됐다. ‘신상털기와 악성 댓글로 교사가 목숨을 버렸으니 억울함을 풀어달라’는 청원 글은 16일 오후 5시 현재 5만6,000명이 넘는 동의를 받았다.

송도국제도시 캠리 불법 주차부터 인천 여중생 사망사건까지 국민적 공분을 사는 일이 터질 때마다 다수의 과도한 신상털기나 마녀사냥식 여론몰이는 반복됐다. 부작용이나 가해자 인권은 거대한 분노에 휩싸여 사그라졌다. 결혼을 앞둔 예비신부이자 담임을 맡았던 원생에게 ‘엄마보다 더 사랑한다’는 얘기를 들었던 교사는 불과 이틀 만에 가해자에서 피해자가 됐다. 어쩌면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게 아니라 다수 방관 속에 살해를 당한 것일 수도 있다. 분노를 쏟아내기 전에 ‘혹시 또 다른 보육교사는 아닐까’ 한번 생각해봤으면 한다.

이환직 기자 slamh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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