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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내가 쓴 돈이 내 돈이다

입력
2018.10.14 11:09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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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조원대 유동자금이 집값 급등을 부추겼다는 이유와 금융불균형을 바로잡아 거시경제를 안정적으로 운영하자는 취지로 한은이 금리를 연내 한 차례 올릴 전망이다. 돈의 사용 대가인 금리가 올라가면 수 많은 경제행위들이 돈이 흐르는 방향에 맞춰 새로운 모습으로 정렬한다.

사람마다 돈에 대한 생각과 경험이 다르다. 오너와 경영자가 반씩 섞여 품격 있는 농담 따먹기를 하다가도 진지한 고민을 서슴없이 나누는 모임이 하나 있는데, 오너들의 깊은 고민 중 하나가 가업 승계다. 최대주주 할증과세까지 감안해 상속세 65%를 내고 나면 자칫 껍데기만 남은 회사를 경영능력도 부족한 자식이 말아먹지 않을까 겁난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오너들이 승계 대신 사모펀드에 파는 것도 적극 고려하고 있다. 저금리로 유동성이 풍부해지면서 사모펀드들이 서로 경쟁하느라 값을 후하게 쳐주기도 하고, 경쟁사가 인수하는 것보다 대규모 구조조정 없이 고용이 승계되는 경우가 많아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어서다.

자본시장에서 주가조작은 남의 이익을 빼앗는 가장 악질적인 범죄 중 하나다. 미국 사람들은 퇴직연금과 같은 자기의 노후자금을 그들이 강탈한 것으로 보아 불법으로 챙겨가는 돈에 대해 아주 엄격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주가 조작을 투기꾼들끼리의 도박 정도로 생각한다. 돈이 어떻게 흐르는 것이 정당한 지를 더 많이 알수록, 돈의 흐름에 함부로 손을 대거나 쥐꼬리만한 내 이익과 아직 정해진 임자는 없지만 엄청나게 큰 공동의 이익을 서슴없이 맞바꾸는 염치없는 편법이 줄어든다.

최근 런던과 베를린을 다녀온 한 금융사 CEO는 두 도시 모두 유럽의 실리콘 밸리가 되려고 경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자리 옆 대형 맥주 공장을 개조해 들어선 ‘팩토리 베를린’이 독일 최대의 스타트업 캠퍼스로 주목 받는다. 몇 년 만에 베를린 집세가 두 배 올랐어도 활력을 찾은 경제를 생각하면 오버슈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이 기간 동안에도 돈은 물처럼 흘러서 그 나름의 생존을 위해 많은 흔적을 남겼다. 80년대 중남미에 들어갔던 돈이 90년대 러시아와 아시아 이머징마켓을 전전하다 외환위기를 지나며 인터넷 시장으로 몰렸다. 2000년대 초반 닷컴 거품이 꺼진 다음엔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들어가 한껏 레버리지를 일으켜 금융위기를 낳고, 2010년대 원유와 금에 돈이 몰리면서 에너지가격을 마구 흔들어댔다. 지금은 유니콘 스타트업과 암호화폐 주변을 배회한다. 이 안에 개인과 기업과 국가의 성공과 실패가 다 들어있다. 결국 돈은 다시 흐를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제각각 다른 성적표를 또다시 받게 될 것이다.

돈의 흐름이 보여준 지난 30년간의 치열한 공방에도 불구하고 아직 세상은 그다지 달라진 게 없어 보인다. 세금을 통한 소득재분배가 저소득층의 형편을 일부 개선하고 있지만 지원할 때 잠시 반짝할 뿐 그 효과가 영속적이지 못한 한계를 드러냈고, 그렇다고 경제가 좋아져 극심한 불평등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젊은 세대, 우리 나라, 우리 민족에 돌이킬 수 없는 잘못된 유산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과거와 같은 높은 성장은 어렵기도 하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꾸준히 3% 내외의 성장을 하면서 탈락자들을 최소화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다. 부자들을 경제적으로 응징하는 쪽보다는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되게 도와주는 것이 낫다. 경제 민주화도 돈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제대로 아는 데서 시작된다. 내가 가진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나라의 흥망이 달라지고 다가올 세상이 바뀐다. 내 생각을 바꿔야 내가 사는 세상이 바뀐다. 내가 가진 돈이 내 돈이 아니고 내가 쓴 돈이 내 돈이다.

구자갑 롯데오토리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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