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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원장 반발에… 서울시 공공 복지서비스서 ‘보육’ 제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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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원장 반발에… 서울시 공공 복지서비스서 ‘보육’ 제외

입력
2018.10.15 04:40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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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노동자들이 13일 오후 서울 시청앞에서 '제대로 된 사회서비원 설립'을 요구하는 집회를 연 후 휠체어와 유모차, 이동식 침대등을 끌고 서울도심을 행진하고 있다.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장애인 활동지원사, 사회복지 노동자 등 돌봄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열악한 노동권이 개선되고 이용자에게 제대로 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통한 공적 고용 구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
돌봄노동자들이 13일 오후 서울 시청앞에서 '제대로 된 사회서비원 설립'을 요구하는 집회를 연 후 휠체어와 유모차, 이동식 침대등을 끌고 서울도심을 행진하고 있다. 보육교사, 요양보호사, 장애인 활동지원사, 사회복지 노동자 등 돌봄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열악한 노동권이 개선되고 이용자에게 제대로 된 복지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통한 공적 고용 구조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신상순 선임기자 ssshin@hank

사립 유치원의 비리가 실명으로 폭로돼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지만, 어린이집의 사정은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지난 12일에는 어린이집 원장이 미취학 여아에게 성인물 영상을 보여줬다며 처벌을 요구하는 내용의 청와대 청원이 올라오는 등 보육 현장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부실 급식, 안전사고, 아동학대 등 각종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이 때문에 다수의 학부모들이 민간 어린이집보다 국공립 어린이집을 선호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대다수 국공립 어린이집이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운영하지 않고 민간 사업자에게 위탁 운영하고 있어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다. 감독해야 할 지자체는 신고가 들어와도 어물쩍 넘기기 일쑤다.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서는 문재인 정부의 공약이었던 ‘사회서비스공단’을 설립해 공공부문이 복지서비스를 민간에 맡기지 말고 직접 제공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시범사업을 추진중인 서울시에서 보육 부문을 쏙 뺀 채 ‘서울 사회서비스원(가칭)’ 설립 계획을 내놓으면서 보육교사와 학부모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결국 어린이집 원장 등 이해관계자들의 거센 반발에 밀려 보육 수요는 외면한 반쪽 기구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14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사회서비스공단은 어린이집은 물론 장기요양, 장애인ㆍ노인 돌봄, 사회복지시설 등 국민과 밀접한 복지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종사자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기 위한 대안으로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공약이다. 기존의 국공립 어린이집이나 사회복지관의 경우 민간 위탁 기간이 끝나면 재위탁을 하지 않고 근로자를 정부나 지자체가 직접 고용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최저임금에 제대로 된 수당도 받지 못하고 장시간 노동을 하던 사회복지서비스 종사자들의 처우를 개선함과 동시에 민간 사업자들이 수익을 위해 저지르던 각종 비리도 근절하고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질 좋은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서울 사회서비스원 그래픽=신동준 기자
서울 사회서비스원 그래픽=신동준 기자

하지만 추진 직후부터 민간 사업자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관련 법안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국회에 계류중인 상태. 법안에 담긴 명칭도 애초 ‘사회서비스공단’에서 그보다 폭이 좁을 것으로 보이는 ‘사회서비스원’으로 바뀌었다. 올 하반기 들어 본격적으로 시범사업을 추진중인 지자체조차 최소 규모로 출범할 것을 계획하는 등 갈수록 사업이 쪼그라드는 모양새다.

지난 12일 공공운수노조 사회서비스 공동사업단은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시가 작성한 ‘서울 사회서비스원(가칭) 설립 기본계획안’을 공개했다. 계획안에 따르면 서울시는 내년 상반기 재단법인 서울 사회서비스원을 본부 20명, 센터 근무자 480명 등 총 채용인력 500명 정도 규모로 설립할 계획이다. 권역별 4개 요양센터와 2개 장애인활동지원센터를 두고 모두 1,138명의 이용자에게 서비스한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국공립 어린이집은 물론 사회복지관, 요양시설 등이 모두 제외되고 사실상 재가요양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도에 그친다. 서울시 복지본부 사회서비스혁신추진반의 김현정 정책팀장은 “앞서 열린 공청회 등에서 보육부문 민간사업자의 반발이 매우 크다는 것이 드러났다”며 “보육 부문은 이해관계가 첨예한데 충분한 논의가 없었다는 판단으로 기본계획에서는 제외했지만 앞으로 공론화를 통해 포함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서울시의 보육 배제 방침은 시범사업을 추진 중인 다른 지역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보건복지부는 서울과 대구, 경기, 경남 등 4개 지역에서 실시될 시범사업에서 가급적 보육도 포함하도록 독려한다는 입장이지만 쉽지는 않아 보인다. 대구시 역시 사회서비스원에 시립 어린이집 단 2곳만 포함해 출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다.

사회서비스노조는 서울시가 정부 방침과 달리 보육을 뺀 것이 어린이집 원장들의 반발을 의식한 것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 노조는 “사용자와 노동자의 입장을 청취하겠다던 서울시는 매우 불합리하게도 13명의 사용자와 단 두 명의 노동자만 모아놓고 의견을 들었다”면서 “사실상 재가요양 서비스와 다를 바 없는 기본사업 계획을 즉각 철회하고 반드시 보육을 필수사업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린이집 원장들이 다수 참여한 ‘보육특별위원회’가 구성돼 박원순 시장의 보육공약을 만들고 지지선언을 했다”며 “당선 후 박 시장을 만난 원장들이 ‘사회서비스원에서 보육을 빼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는데 실제로 보육이 제외됐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여성단체도 비판에 가세했다. 지난 11일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은 7개 지부 28개 회원단체 명의의 성명을 발표하고 “정부는 사회서비스공단 설립 약속을 반드시 이행하고, 보육을 반드시 포함하라”고 요구했다. 여연은 성명에서 “시장논리를 탈피할 수 없는 민간주도의 보육 현장은 열악한 노동 환경과 그로 인한 아동 인권 침해 등 많은 문제들을 파생시키고 있다”며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대책을 마련해왔지만 근본적인 대책이 아닌 미봉책에 그쳐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어린이집 측은 보육을 포함하면 질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강변한다. 김영명 한국어린이집총연합회 사회서비스원 설립 관련 특별위원은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보육의 대상인 영유아는 돌봄과 교육이 동전의 양면과 같이 함께 이뤄져야 하는 성장·발달하는 시기이므로 노인이나 환자 등 여타 사회서비스 분야의 대상과는 특성이 다르다”며 “이를 간과한 채 사회서비스원에 보육을 포함시킨다면 영유아에게 양질의 돌봄과 교육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진주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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