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투표권' 외치던 청소년들, 두발자유화ㆍ스쿨미투에 입 열다

9일 오전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서 만난 ‘참정권’ 외치는 청소년들. 왼쪽 하단부터 이은선(18)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대표, 남우현(18) 서울시 청소년의회 의장, 이재건(17)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청소년카페 매니저, 형지원(18) 대안학교 이우고 재학생, 위수한(18) 이우고 재학생. 박지윤 기자
“어른들만의 민주주의는 필요 없다!”

6ㆍ13 지방선거를 코 앞에 두고 있었던 지난 5월, 서울 종로구 서울시선거관리위원회 앞에 나타난 교복 차림에 흰 가면을 쓴 청소년이 호기롭게 ‘출사표’를 던졌다. 대한민국 880만 청소년을 대표하는 ‘기호 0번’ 교육감 후보의 등장이었다. 스스로를 ‘대한민국 교육현장의 최고 전문가’라 칭한 그는 자신만만했다. “어른들이 망쳐 놓은 교육, 우리 청소년이 되살리겠습니다” 이 참신한 퍼포먼스를 벌인 이들은 그보다 3주 전 ‘18세 투표권’을 얻어내기 위해 국회 앞에서 천막 농성 벌였던 주역들, 전국의 350여 개 청소년ㆍ교육 단체들로 이뤄진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의 활동가들이었다.

“뭔가 진짜 될 것 같다는 분위기였는데 말이죠.” (이은선(18)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대표) 삭발 투쟁까지 불사하며 미성년자 투표권을 외쳤지만, 4월 국회가 파행되면서 결국은 또다시 '미완의 과제’가 됐다. “그래서 실망도 더 컸어요. 하지만 좌절감만 남은 건 아니었죠.”(남우현(18) 서울 청소년의회 의장) 비록 교육감을 직접 선택할 권리를 얻진 못했지만, 청소년의 손으로 ‘진보 교육감 후보’를 직접 가려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농성이 한창이었던 4월, 후보 단일화 추진기구였던 ‘2018 서울촛불교육감추진위원회’는 시민경선단의 참여자격을 기존 18세에서 13세로 대폭 낮췄다. “현행법상 청소년은 정당활동은 물론 선거운동에 참여할 수 없어요. 하지만 교육감 경선은 정당 경선이 아니기 때문에 청소년이 참여해도 위법이 아니었던 거죠.” 하나의 문이 닫히자 또 다른 문이 열린 것. 당장은 아쉬워도 두드림을 멈출 수 없는 이유였다.

청소년 참정권 쟁취 운동을 시작한 지 반년을 훌쩍 넘긴 10월, 성인이 될 날이 가까워 오는 청소년 활동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간 국회 앞 천막 농성장에서, 페미니즘 교육 청원 시위에서, 입시 경쟁 바깥의 대안교육 현장에서 목소리를 내 온 ‘소신 있는 청소년’들이다. 이들이 모인 이유는 하나, ‘스쿨 미투’로 점화돼 ‘두발 자유화 논란’까지 뜨겁게 번진 학생 인권 문제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학생다움이란 게 대체 뭐길래, 헌법보다 앞서나요?” 그저 순응하기보단, 과감히 ‘딴지’를 걸기로 작정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기호 0번 청소년 교육감’ 출마 퍼포먼스에 참여한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활동가들. 이은선 제공
◇상식이 통하지 않는, 차별과 억압의 학교

“중학교 땐 커튼 높이부터 신발이 놓여있는 각까지 선생님이 원하는 수준에 맞춰야 했어요. ‘군대’ 같았달까요. 고등학교에 들어가니 성적순대로 책상 크기도 다르더라고요. 상위권 학생들이 들어가는 심화반 책상은 저희 것보다 훨씬 널찍했죠.” (위수한)

‘무언가 잘못됐다’는 자각이 들기 시작한 것은 교복을 입기 시작한 때부터였다. “중학교 때부터 스카이반이 따로 있었어요. 점심시간에 성적 우수생들만 따로 공부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는데, 선생님이 회초리를 들고 그 앞을 지켰죠. 지나가는 애들이 떠들면 ‘우등생들 공부에 방해된다’면서 때렸어요.”(이은선) 온돌이 깔린 따뜻한 ‘전용 독서실’에서 언제든지 인터넷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전용 컴퓨터’만 제공받는 게 아니었다.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했을 때 소위 ‘좋은 스펙’이 될만한 교내상들도 성적 우수생의 차지였다. ‘교칙’마저 성적에 따라 차등 적용되기도 했다. “두발 규정을 조금이나마 바꿔보려고 일부러 파마를 하고 학교에 간 적이 있어요. 당시 저희 반 1등을 도맡아 하던 친구도 저처럼 파마를 한 학생이었죠. ‘원래 곱슬인데요’란 그 애의 변명은 ‘어, 그렇구나’하고 바로 받아들여진 반면, 저는 여기저기 불려 가 혼쭐나기 바빴어요.” 모두가 ‘틀렸다’는 걸 알고 있지만, 정작 ‘틀렸다고 외치는 목소리’는 없었다. “뭘 안다고 나서!” “그런 건 커서 해도 늦지 않아”란 어른들의 멸시에 맞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9월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가 처음으로 출범했을 당시. 이은선 제공

“학교라는 곳이 생각보다 상식 밖이에요. 교복 규정 중 도무지 납득이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겨울철에 반드시 교복 재킷을 입고 나서 그 위에 패딩 점퍼를 입으라는 것이었어요. 뻣뻣한 재질로 된 동복 상의를 점퍼 안에 입게 되면 활동성이 급격히 떨어지거든요. 그렇다고 그것만 입기엔 당장 너무 춥고요. 게다가 여학생들은 겨울에도 홑겹 치마 아래 스타킹만 신어야 했죠. 체육복 바지는 절대 금지. 당시 전교 부회장이었던 저는 규정을 고치려고 전교생 서명까지 받아냈지만 결국은 묵살됐어요.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더라고요.”(형지원) ‘교복을 갖춰 입어야 한다’는 학생의 본분이 보다 편안하고 따뜻한 복장을 선택할 권리보다 앞섰다. 남학생의 ‘반바지 교복’을 도입해달란 오랜 건의사항도 재난에 가까웠던 올여름이 돼서야 학부모들의 요구로 겨우 관철됐다. 지난 6월 청와대 국민청원제를 본 따 신설된 ‘서울시 교육감 학생 청원제’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서울시 청소년의회가 거듭 도입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당시엔 ‘현실 여건상 불가능’이란 답변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조희연 교육감의 공식 공약이 되자 갑자기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더라고요.”(남우현)

전국 4개 시ㆍ도(서울, 경기, 광주, 전북) 지자체에서 제정된 학생인권조례는 전혀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걸까. “인권위원 활동을 하다 보면 수백 건 가까운 학교현장 개선 요청을 제보받는데요. 사실은 학생인권조례 하나만 지켜져도 1/4 정도로 줄어들 것들이에요. 조례를 위반한 이 학교들 다 1,000만원 이하 과태료 대상이거든요? 그런데 2012년 제정 이후 7년째, 학생인권조례 어겨서 징계받은 학교 나왔단 소식은 한번도 못 들어봤죠.”(남우현) 이미 ‘사문화’돼 버린 지 오래지만 그나마도 있는 지역과 없는 지역의 격차는 크다. “조례가 없는 곳에선 아직까지도 체벌이 남아있는 경우가 허다해요. 저는 울산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요구하는 운동을 했었어요. 꼬박 1년을 준비했는데 다 수포로 돌아갔죠. 지역 정치인들은 관심이 없고, 주민발의라도 하려면 만 19세 이상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모두 해당사항이 없으니까…” 이쯤 되면 이 청소년들이 어째서 ‘투표권 쟁취’에 그리도 열을 올리는지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결국 이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저희가 깨달은 건 이거예요. 학교가 학생인권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보느냐, ‘덮어야 할 문제’로 보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운명이 너무나도 극명하게 갈린다는 사실이요. 결국엔 학교의 의지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실이란 거죠. 그때 깨달았어요.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안 되겠다고.”(남우현)

지난해 4월 위수한(18) 학생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주최한 ‘19대 대선 사교육 경감 관련 공약 평가 국민 100인 평가단 컨퍼런스’에 참여해 발언하고 있다. 위수한 제공
◇학습 성취도에 큰 차이 없으면 두발 자유 허용하자?

“저는 특성화고 진학에 실패 후 방황하다가 직업 체험형 대안학교인 ‘오디세이 학교’(서울시 고교자유학년제 실험학교)에 들어갔어요. 1년 정도의 교육과정이 끝나고 인문계 고등학교로 돌아오는 순간, 바로 들은 말이 ‘파마부터 풀고 와’였죠. 심지어 두발 자유 방침을 내걸고 있는 학교인데. 조례고 뭐고를 떠나서, 일단 선생님 맘에 안 들면 하라는 대로 고쳐야 해요. 정말 암담해지더라고요.”(이재건) 오디세이 학교에서는 하염없이 기르든, 색색으로 물을 들이든 ‘내 머리카락은 내 마음대로’가 원칙이었다. 비단 용모 규정만 그런 게 아니었다. 무엇을 배울지, 어떻게 배울지 선택하는 것도 학생들의 몫이었다. 그 과정에서 잃었던 자기 효능감을 되찾았던 것도 잠시, 일반고로 돌아오자마자 무력감이 엄습했다. 신체의 자유는 헌법상 명시된 기본권. 기본권이란 나서서 쟁취해야 할 게 아니라 당연하게 주어지는 권리라고 배웠지만 현실은 달랐다. 학교는 여전히 ‘묻거나 따지지 말고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했고, 주위 친구들은 이미 ‘학습된 무기력’에 갇혀 있었다.

“서울시 두발자유화 방침이 발표되고 나서 실시한 여론 조사 결과를 보고 사실 좀 놀랐어요. 응답자 절반 이상인 52%가 두발 자유화에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더라고요. 학생들 의견도 찬성, 반대가 7:3 정도로 갈려요. 너무 오랜 시간 통제를 받아오면서 ‘이건 당연한 건가 봐’하는 내면화 과정을 거친 탓이 아닐까 싶어요.”(남우현) 두발 규제 금지를 명문화한 학생인권조례는 이미 3년 전 대법원의 인정을 받았지만 정작 학교에선 상식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는 탓이다. “머리 자르려고 미용실에 가면 ‘그 학교는 투블럭(옆머리를 미는 헤어스타일) 돼요?’라고 묻는 분들이 있어요. 그 말인즉슨 아직까지 그 흔한 투블럭 스타일조차 허용 안 되는 학교가 있다는 뜻이죠.” 인권조례가 없는 몇몇 지역의 경우, 삭발을 ‘반항의 표시’로 보고 반성문을 작성하게 한다는 사례도 빈번하다.

염색이나 파마까지 허용했을 경우, 빈부격차가 적나라하게 드러날 수 있어 반대한다는 주장을 청소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학교가 언제부터 그렇게 ‘평등 지향적’이었는지 되묻고 싶어요. 전교생을 점수로 줄 세워버리는 ‘성적 차별’은 당연하고, 4만~5만원짜리 파마ㆍ염색으로 드러나는 빈부격차는 걱정이다? 말이 안 되는 거죠.”(이은선) 게다가 요즘 학생들은 더 이상 가방이나 신발, 패딩의 브랜드로 경제적 수준을 가늠하지 않는단다. “주로 얼마나 비싼 학원을 다니는지, 과외는 몇 개 듣는지, 그래서 성적은 얼마나 잘 나오는지로 평가해요. 계층 사다리가 막히면서 성적이야말로 그 학생의 경제 지위를 드러내는 지표가 된 거죠.”(남우현) 결국 오늘날 학교 사회에서 계급 간 위화감을 증폭시키는 것은 죄 없는 ‘머리 모양’이 아니라 교사들이 앞장서 조장하는 ‘성적지상주의’라는 말이다.

‘두발 자유화를 해도 학업 성취도엔 큰 변화가 없을 것’이란 주장과 ‘오히려 개성과 창의력이 절로 발현될 것’이란 가정은 분명 두발 자유화의 주된 옹호 논리지만, 청소년들은 이 역시 불편하다. “솔직히 제가 당장 노란색으로 염색한다고 없던 창의력이 갑자기 샘솟을 것 같지는 않거든요. 사실 이건 완전히 논점을 벗어난 얘기예요. 반복해서 말하지만 ‘내 머리를 마음대로 할 권리’는 학생의 능력, 자질과는 별개로 당연히 가져야만 하는 것이라고요.”(남우현) 즉 두발 자유화의 전제가 ‘너희들이 만약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으면, 머리 모양 정도는 마음대로 하게 해 줄게’가 돼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기본권은 ‘내가 노력해야 겨우 받아낼 수 있는 보상’이 아니어야죠. 적어도 학생도 국민이라면, 헌법의 보호를 받는 민주국가의 일원이라면요.”(이은선)

지난 6월 이은선(19)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공동대표가 '이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문화제에 참석해 청소년 참정권 요구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은선 제공
◇스쿨미투, ‘평판’ 운운하며 덮는 학교가 더 나빠

“터질 게 터졌다고 생각했어요. 저 또한 아주 오랫동안 ‘학교 내 성폭력’의 피해자였죠. 이미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했어요. 여학생의 몸을 은근슬쩍 만지는 건 기본이고, ‘손녀 같아 귀엽다’면서 자기 다리에 앉히는 일이 다반사였죠. 술을 마시고 학교에 와서는 여성의 나체사진을 띄워놓고 낄낄거리거나 여학생 화장실에 난입하기도 했어요. 그게 불과 열 한 살 때의 일인데, 그땐 정말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이은선) 그저 불운했던 거라 생각하고 싶었지만, 비슷한 일들은 중학교, 고등학교에서도 반복됐다. “남교사가 롱 패딩을 입고 온 학생에게 ‘네가 안에 아무것도 안 입고 왔을지 어떻게 아냐’고 희롱하는가 하면, 지나가던 교감선생님은 제 무릎 위에 앉아있는 친구를 보고는 ‘저 자리 부럽네’라는 식의 농담을 공공연히 던졌을 정도니까요.” 피해 건수만 따져봐도 스쿨 미투가 지금에야 봇물처럼 터져 나온 게 오히려 놀라울 정도다.

학교 내 성폭력 문제는 교사에 의한 성범죄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불법 촬영범죄나 단톡방 성희롱 문제도 꽤 심각하다. “최근 고등학교 여자화장실에서도 불법 촬영 카메라가 발견되는 일들이 꽤 있었어요. 특히 여고는 축제 기간에 여자화장실을 남자화장실로 바꿔 개방하는 과정에서 카메라가 설치되는 일들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의혹이 제기됐다면 곧바로 전수조사에 나서는 것이 당연하지만, 학교의 반응은 대체로 미온적이다. “만약 불법 촬영 카메라 전수조사를 한다면, 학생들에게 미리 고지를 해야 한다면서 미적거리기 일쑤예요. 학생이 주범일 수도 있는데, 그럼 ‘범인한테 예고하고 잡겠다’랑 뭐가 다른지 그저 의문이죠.”

남학생들끼리 속해 있는 단체 채팅방에서 또래 여학생들을 성적으로 대상화하고 희롱하는 문제는 여전하지만, 처벌은 여전히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 “문제의 채팅방에 속해있는 내용이 공개된 적이 있어요. 학교는 혹시라도 학생들 입시에 불이익이 되거나 학교 평판에 금이 갈까 봐 오히려 피해 여학생들에게 ‘왜 남의 채팅 기록을 훔쳐봤느냐’며 비난의 화살을 돌렸죠. 정작 남학생들은 별다른 징계 없이 가벼운 사과로 상황을 모면했어요.”(위수한) 제 손으로 치마를 건드리는 교사만 가해자인 게 아니라, 공공연히 눈감아주는 교사 또한 ‘스쿨 미투’의 공범이라는 걸, 학생들은 아는데 교사들만 모르는 셈이다.

결국 핵심은 ‘학교 내 성폭력’ 그 자체보다 그것에 대처하는 학교의 태도다. “사건 자체는 개별 교사나 학생의 일탈일 수 있죠. 문제는 실체도 없는 ‘학교 평판’ 운운하며 쉬쉬 덮어버리는 학교의 태도예요. 그래서 우리는 학교의 2차 가해야말로 완벽한 ‘권력형 범죄’라고 봐요.”(남우현) 실제로 학교 내 성희롱, 성폭력 사건이 터지면 그 즉시 학교는 학생들에게 ‘SNS에 올리지 말라’는 경고부터 한다. “교사들은 학생들을 입막음하기 위해 이렇게 말해요. ‘우리 학교에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다는 게 외부에 알려지면, 학교 평판이 타격을 입을 것이고 결과적으로는 대학 수시에서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고. 입시에 민감한 학생들의 심리를 교묘하게 자극하는 거예요. 어쩌다 근처 학교의 스쿨 미투 얘기가 들려오면 ‘저 학교 애들은 이제 대학 가기 글렀네’라고 빈정 거리기도 하죠.”(이은선) 자신이 당한 범죄 피해 사실을 입 밖으로 내는 순간 ‘학교 전체’의 운명을 망친 공공의 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스쿨 미투를 보도하는 언론이 좀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10개 학교를 놓치더라도 한 학교의 대응방식을 철저하게 추적 보도해야 해요. ‘선생님이 학생에게 어떤 파렴치한 짓을 했는지’에만 초점을 맞추는 게 아니라 ‘결국, 고작 이 정도로의 처리로 끝났습니다’를 보여주는 보도가 있어야 한다고 봐요.”(남우현)

지난 9월 이재건(18)학생이 제10회 ‘서울청소년창의서밋’ 이야기포럼에서 장애청소년 인권에 관한 발언을 하고 있다. 이재건 제공
◇다시 ‘청소년 참정권’… 도대체 언제 정치를 배우나요?

“결국은 이 모든 문제들이 ‘청소년이 스스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에 발생한 일들이라고 봐요. 많은 어른들이 우릴 보고 ‘너희는 아직 미성숙하기 때문에 그런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 말해요. 하지만 자기 결정권은 누구든지 태어날 때부터 지니는 거에요. 그 권리를 감히 빼앗거나 유보시키거나 지연시킬 수 있는 권한은 누구에게도 없다는 거죠. 오히려 그걸 ‘잘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학교의 진짜 역할이 아닐까요.”(남우현)

“아직도 ’학교의 정치화’를 걱정하시는 어른들껜 이렇게 되묻고 싶어요. 그럼, 우린 도대체 언제 정치를 배울 수 있나요? 민주시민의 자질은 스무 살만 넘으면 ‘뿅’하고 생기는 건가요. 교과서에 나오는 ‘선거 원칙’ 달달 외운다고 선거를 잘하게 되는 건 아니잖아요. 좋은 후보를 가려낼 수 있는 안목과 판단력은 결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게 아니라고 봐요”(위수한) 이들은 청소년들이 정말로 선동에 취약하다면 그것은 ‘정치를 금지당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충분한 기회와 접근성이 보장된다면, 왜곡된 일부의 시선에 휘둘릴 위험은 저절로 줄어들 것이라고. “선동은 ‘잘 몰라서’ 당하는 거잖아요. 청소년도 누구나 쉽게 정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세상일수록 우리 모두의 분별력과 판단력은 올라갈 거라 생각해요.”(이은선)

이제 이들에게 남은 목표는 전국의 모든 청소년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학생인권법’(초중등교육법 개정)을 만드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제정하는 ‘학생인권조례’는 이미 사문화된 데다 극히 일부 지역에만 적용된다는 점에서 한계가 명백하다는 이유다. “학생인권법이 제정되는 시기에 교권에 대한 논의도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교사가 학생을 때리거나 통제할 수 있는 권리가 교권은 아니거든요. 학생들을 통제해야 할 부담이 사라지면 오히려 학생들과 어떻게 교감하고 소통해 나갈 수 있을지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지는 거죠. 결국엔 학생과 교사 모두에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학생인권과 교권은 함께 가는 개념이지 결코 대립되는 개념이 아니란 걸, 모두가 알아주셨으면 해요.”(이은선)

마지막으로 이들은 말한다. 머지않아 자유로운 정치 놀이터가 된 학교를 꿈꾼다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나의 문제’를 남이 손이 아닌 ‘내 손으로 직접 해결할 수 있는 기회’랍니다.”

박지윤 기자 luce_jy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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