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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종전선언 후과와 우리의 안보

입력
2018.10.12 18:26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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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종전선언 아이디어는 가히 숭고하다. 남북 간의 적대적 관계 종식은 한민족의 바람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불안한 정국으로 지금껏 지불한 ‘한반도 안보 프리미엄’ 비용의 감면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문제는 종전선언이 ‘정치적 선언’이기 때문에 ‘언제든 취소 가능하다’는 발언이 국민을 혼란에 빠뜨렸다는 점이다. 종전선언을 추진하려는 정부의 취지와 의도에 모두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아이디어가 현실 세계에서 완전체로 결실을 맺으려면 그 명분과 당위성이 정당하게 실행될 수 있는 제도적 기반과 기제 마련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그다음 제도와 기제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일련의 보완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아이디어에 동의하면 이를 수반하는 제도에서 합의한 약속사항을 신념을 갖고 실천해야 한다. 그래야 신뢰가 구축되고, 신뢰가 쌓이면 아이디어를 수반하는 제도와 기제는 올바르게 작동할 것이다.

우리 정부는 종전선언을 북한 비핵화를 위해 반드시 성사돼야 할 전제조건으로 인식한다. 북한 비핵화를 위해 미국과 국제사회가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종식하고 안전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설명한다. 더 나아가 북한 비핵화가 지속되면 평화협정을 위한 평화협상을 병행할 수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매력적인 아이디어다.

하지만 외교 역사는 약속을 지키려는 의지에 따라 결과가 결정된다는 교훈을 준다. 우리는 북한과의 적대관계를 청산하기 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했다. 한국전쟁 이후 1953년에 체결된 정전협정, 1974년의 ‘남북상호불가침협정’과 1992년의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ㆍ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 등이 증명한다. 북한은 그러나 공통된 약속인 도발과 핵개발을 중단하지 않았다.

여기서 혹자는 이 모든 약정에 미국이 빠진 사실로 종전선언의 필요성을 반론으로 제기할 수 있다. 북한에 최대 위협이자 주적이 미국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러나 가장 두려워하는 미국이 한국에 군을 주둔시킨 상황에서도 무력 도발을 계속 감행했다. 북한이 지금까지 모든 약속만 잘 지켰어도 종전선언은 순조롭게 이뤄졌을 것이다.

종전선언 옹호론자들은 종전선언의 후과를 간과한다. 적대관계 종식의 보장 체계로 평화협정과 평화체제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북한과 중국의 구상을 아는지 반문하고 싶다. 두 나라의 구상은 1999년 4자회담 때부터 일치했다. 아니 1953년 정전협정 체결 후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들은 유엔군사령부 해체,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폐기를 견지한다.

중국은 유엔에서 1960년과 1964년을 제외하고 1953년부터 1971년까지 유엔군사령부 해체를 요구했다. 1953년 6월 제네바회의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처음 공식 제기한다. 아시아에서는 1954년 대만을 시작으로 1960년대에 월남과 1971년 일본에서의 미군 철수를 주장했다. 소련에도 1980년대 관계 정상화 협상 조건으로 몽골과 극동러시아에서의 소련군 철수 감축을 제시했다. 중국 주변 지역에서의 외국군 철수는 중국의 염원이다.

종전선언 지지자들은 대안으로 다자안보협력체제를 제시한다. 다자안보체제는 신뢰뿐 아니라 이익의 합의를 전제한다. 냉전시기에도 사상과 이념을 초월해 미ㆍ중과 미ㆍ소의 적대관계를 개선시킨 절대적 요인은 이익이었다. 이익의 합의체가 공동의 적이든 경제든 안보이익이든 맞아떨어져야 한다. 북한의 경제발전과 개방 의사는 설득력이 없다. 비핵화의 전제로 제시됐기 때문이다.

북ㆍ중 양국 입장이 본질적으로 바뀌지 않는 이상 종전선언과 우리의 안보문제는 무관하지 않다. 좋은 아이디어를 살리기 위해서는 좋은 전략이 수반돼야 한다. 북한의 입장만 전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우리만의 설득력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종전선언 후과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입장 파악이 시급하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ㆍ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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