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발 촉진하는 취지 무색해져

공정거래위원회 고병희 카르텔조사국장이 지난달 정부세종청사 공정위 기자실에서 6개 제강사 철근 판매가격 담합행위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공정위는 현대제철, 동국제강, 한국철강, 와이케이스틸, 환영철강, 대한제강에 총 1천194억원의 과징금을 매겼다. 연합뉴스

제품 가격을 서로 짜고 함께 올리거나 시장을 나눠먹는 등 담합을 저지른 기업에 면죄부를 주는 제도가 있다. 담합에 가담한 사실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자진 신고하면 과징금 등 처벌을 면제해주는 ‘리니언시’ 제도다. 담합 행위 특성상 증거가 잘 남지 않고 제때 인지하지 못하면 광범위한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는 만큼 기업의 자수를 유도해 적시에 담합을 적발하기 위해 1997년 도입됐다. 하지만 당초 취지와 달리, 리니언시로 적발되는 담합 사건의 약 70%는 공정위가 조사를 시작하고 나서야 기업이 자수하는 경우인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제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근 6년간(2013년~올해 6월) 리니언시가 적용된 담합 사건 198건 중 135건(68%)이 공정위가 조사를 시작한 이후 리니언시가 접수된 ‘사후신고’ 건으로 집계됐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담합 사실을 자진 신고하고 이를 토대로 공정위가 조사에 착수한 ‘사전신고’ 건은 45건(22.7%)에 그쳤다. 리니언시와 조사 개시가 동시에 이뤄진 건은 18건이었다.

이는 공정위가 혐의를 포착하기 전에 담합을 자수하든 조사가 시작된 뒤 마지못해 협조하든, 기업 입장에선 동일한 과징금 면제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현행 공정거래법은 △조사 이전에 담합 사실을 가장 먼저 자수한 자(1순위 자진신고자) △조사 개시 이후 처음으로 담합 사실을 진술하고 조사에 협조한 자(1순위 조사협조자) 모두에게 과징금을 100% 깎아주고 있다. 기업 입장에선 담합으로 막대한 이익을 본 후 사실을 숨기고 있다가, 조사 동향이 포착되면 재빨리 자수해 처벌을 면제받는 ‘기회주의적’ 행태를 반복할 수 있는 셈이다. 이러한 조건은 특히 풍부한 정보력을 토대로 경쟁당국의 움직임을 빠르게 포착할 수 있는 대기업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 이황 고려대 교수는 “조사를 개시한 후에 접수되는 리니언시는 (그 의도를) 순수하게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에 해외에선 자진신고자와 조사협조자를 다르게 대우한다. 국회입법조사처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은 1순위 자진신고자에 대해 과징금을 100% 면제해주고 있지만, 조사 개시 이후 신고자는 과징금을 30~50%만 깎아준다. 이정민 단국대 교수에 따르면 일본 또한 조사 개시 이후 신고자는 과징금의 30%만 면제한다. 2012년 국민권익위원회도 공정위에 “조사 개시 이후 담합을 신고한 조사협조자와 자진신고자를 차별화해 신고 경쟁효과를 유도해야 한다”며 제도 개선을 권고했다. 기업의 카르텔을 최대한 빠르게 무너뜨리려면 자진신고에 더 많은 혜택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신중론도 적잖다. 담합을 적발하는 과정은 크게 두 가지다. 담합 사실을 포착하고, 기업들이 가격이나 물량 등을 사전 합의하고 실행한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이 교수는 “최초 사전신고를 받고 조사에 착수한다고 해도 모든 담합 증거를 확보한다는 보장이 없다”며 “조사 개시 이후 조사협조자에 대한 혜택이 줄고 이들의 자진신고가 감소하면 공정위의 최종적인 담합 입증 역량이 약화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남훈 건국대 교수는 “원칙적으로 차등화가 맞으나, 이 경우 리니언시가 위축되는 역(逆)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운열 의원은 “리니언시 제도가 담합을 적발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 이를 위축시켜선 안 된다는 입장도 이해하나, 담합에 참여한 기업들이 리니언시를 악용해 부당 이득을 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며 “공정위가 이 같은 양 원칙간 균형이 적절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개선안을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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