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 대법원 대법정 앞 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신상순 선임기자

부산에 사는 A(55)씨는 최근 전ㆍ현직 대법관 8명과 하급심 판사 3명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부산의 수사기관을 선택하지 않고 굳이 KTX를 타고 와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접수한 이유는 이곳이 사법농단 수사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겪은 일이 단순한 착오나 농간이 아니라, 거대한 사법 거래의 한 부분이라는 의심을 하고 있다. 그는 2014년 자신이 제기한 민사소송이 대법원까지 가서 최종 패소한 이유가 대법관 등 법관 비리 때문이라고 믿어 왔다. 이런 그의 의심은 최근 검찰 수사로 드러난 양승태 사법부의 사법농단 실상을 본 뒤 확신으로 굳어졌다. A씨는 “내 사건에 대법관까지 개입되어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사법농단 의혹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겉잡을 수 없이 커지는 분위기다. 법원에 접수된 법관 관련 일반인 민원이 벌써 평년 수준을 크게 웃돌 정도로 불신의 골이 깊다. 11일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법원으로부터 제출 받은 문건에 따르면, 올 8월까지 법원행정처 윤리감사관실로 접수된 법관 상대 진정 및 청원은 2,914건에 달한다. 2016년 전체 접수 건수(1,476건)와 비교할 때 3분의 2가 지난 시점에 이미 두 배에 달한 것이다.

민원의 대부분은 자기 재판 결과가 부당하다거나 재판 진행 과정이 투명하지 못했다는 것들로, 민원인들은 대법원에 법관 징계와 판결 시정 등을 요구했다. 특히 진정 및 청원의 91%에 해당하는 2,654건은 재판 결과에 대한 불만에 따른 것이었다.

대법원에 접수된 민원 건수는 사법 블랙리스트 파문이 불거진 지난해 크게 늘기 시작해 검찰 수사가 본격화한 올해는 폭증세를 이어가고 있다. 진정 및 청원 접수는 2013년 1,370건, 2014년 1,920건 2015년 1,776건, 2016년 1,476건 등 매년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았으나 지난해 3,644건으로 크게 늘었다. 올해는 4,000건을 훌쩍 넘어설 전망이다.

대법원에 접수된 법관 상대 진정청원 건수=그래픽 김경진 기자

국민의 사법부 불신이 커지는 것은 검찰 수사에서 ‘재판 거래’ 정황이 속속 드러났기 때문이다. 기본권의 마지막 보루일 것이라 생각했던 법관들이 신성한 재판을 두고 정권과 거래했을 수도 있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국민 개개인이 관련된 개별 재판에 대한 신뢰도 역시 크게 떨어진 것이다.

양 전 대법원장 시절의 의혹과 더불어 김명수 대법원장의 안이한 대응이 사법 불신을 부추기고 있다는 법원 안팎의 지적도 적지 않다. 일선 법원의 잇단 영장 기각을 방조하는 듯한 태도가 ‘제 식구 감싸기’로 비쳐지고 있다는 것이다. 백혜련 의원은 “사법부 존재 이유는 국민의 신뢰로부터 나오는 것이지 판사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며 “지금은 수사를 거부할 상황이 아니라 뼈를 깎는 쇄신과 적극적인 수사 협조만이 국민 불신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지적했다.

최동순 기자 dosoo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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