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만큼 한국 사회의 독특성을 보여 주는 상징도 없다. 아파트는 풀과 나무가 어우러진 마당도 없는 좁은 콘크리트 사각형에 수많은 가구가 다닥다닥 붙어 서로에게 무관심하게 살고 있는 공간이다. 그 모습만 보면 영락없는 깨끗한 양계장이다. 그런데 이 아파트 때문에 사람들은 난리고, 정권과 차기 대권 주자의 운영이 달려 있으니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왜 이런 기현상이 벌어진 것일까? 한국인은 아파트를 갈망하는 유전자라도 갖고 태어나는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 삶을 보면 왜 이런 기현상이 일어나는지 알 것도 같다. OECD 국가들과 비교해 보면 한국인의 고용 안전성은 최하위이고, 자살률은 두 번째로 높고, 삶의 만족도는 전쟁 중인 나라보다 낮다. 가장 슬픈 현실은 어려울 때 의지할 사람이 없다는 비율이 가장 높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이렇게 참담한 사회에서 당신이 의지할 곳은 어디인가. 당신이 실직하고 사업에 실패했을 때, 당신이 병들어 일을 못할 때, 가족 중 누군가가 중병에 걸렸을 때, 당신이 나이가 들어 혼자 살아가야 할 때, 누가 당신의 안전을 보장해 주겠는가? 누가 따뜻한 손을 내밀어 주겠는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기른 당신의 자녀가 당신의 안전을 보장해 줄 수 있다면, 당신은 축복받은 사람이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렇다고 국가가 당신이 직면하는 삶의 위험을 덜어 주는 것도 아니다.

2016년 기준으로 한국의 GDP 대비 복지지출은 10.4%로 OECD 평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꼴찌 수준이다. 결국 믿을 것이라고는 당신이 모아놓은 재산뿐이고, 그중에서도 부동산이야말로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투자처인 것이다. 예전만 못하지만 2016년 기준으로 정기적금의 수익률이 1.7%에 그쳤을 때 부동산의 수익률은 6%에 달했다.

문재인 정부가 이야기하는 소득주도성장도 소득 증가가 소비 증가로 이어져야 효과가 있는데, 소득이 증가하면 부채가 덩달아 증가하면서 돈이 부동산으로 몰리고 있으니 정책 효과가 제대로 나타날 수 없는 상황이다. 부동산이 미래에 발생할지 모르는 사회적 위험에 대한 확실한 안전망이라고 믿는 사회에서 어떤 정책이 효과를 발휘하겠는가.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고, 정부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최상의 정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문제를 달리 생각하면 답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어쩌면 부동산 문제는 부동산 정책으로 풀 수 없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라. 누구나 원한다면 화려하지는 않지만 안정적 주거가 보장되는 공공주택이 충분하고, 실업, 질병, 노후, 돌봄, 자녀교육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면 우리가 아파트를 이토록 갈망해야 할 이유는 없다. 우리가 똘똘한 집 한 채를 가져야 하는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사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이 겪고 있는 문제는 아니다. 유럽에서도 공적 복지가 취약한 사회에서 부동산은 개인과 가족의 안전망 역할을 해 왔다.

그래서 답은 생각보다 간단할 수 있다. 물론 간단하다고 실행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국민의 안정된 삶을 보장하는 튼튼한 복지국가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에 일희일비하기보다는 모든 국민이 실업, 질병, 노령, 산재, 돌봄, 주거, 교육 등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안전한 삶을 보장하는 복지국가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아파트 값을 규제하기보다 아파트에 투자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지름길인지도 모른다. 19세기 진화론자였던 찰스 다윈이 빈곤에 대해 이야기했던 문구를 패러디해보면 “만약 아파트 가격의 상승이 자연의 법칙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정부가 만든 정책에 의해 만들어졌다면, 정부의 죄가 너무나 크다.” 초심으로 돌아가 촛불시민의 소망처럼 담대한 복지국가의 길을 걷길 바란다.

윤홍식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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