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사이 여론 위기감 줄어
평화가 곧 경제란 기대감 덕
민심, 안 바뀐 경제에 더 좌우

한달 전 이야기다. 본보 9월 11일 자에 실업쇼크로 실의에 빠진 거제 통영 울산 등지를 다룬 르포기사가 실렸다. 실직 남편 대신 하늘의 별 따기인 허드렛일이라도 구하러 나선 주부의 현실은 고단했다. 기사를 읽고 적은 댓글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었다. “같은 이유는 아니어도 인생 살면서 이런 일 생길 수 있다. 왜 나만? 이라는 생각으로 억울해 하지 말자. 나 역시 30대 말에 남편이 실직을 했다. 이미 망해가는 회사였고, 월급도 제대로 못 받은 상태가 여러 달이었다. 급한 대로 남편은 택시 핸들을 잡았고, 나는 정수기 필터를 갈러 다녔다. 어린 애한테 더 어린 애를 맡기고 집을 나서야만 했다. 죽고 싶었지만 잘 견뎠고 견디고 보니 아이들은 장성했고, 이젠 좀 숨통도 트였다. 안 죽고 견뎌내길 잘했고 아이들도 착하게 커줬다. 지금 이 순간만 잘 버텨 봅시다.” 고통을 먼저 겪어낸 엄마는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으니 인내하라는 정부에 그 흔한 토를 달지 않았다. 살아 낸 경험담으로, 소통하고 위로하는 서민들의 정서를 나눴을 뿐인 댓글은 그러나 어느 글보다 아리고, 어떤 정책보다 힘을 주었다.

한달 전 회자된 것에 30대 맞벌이 부부가 펑펑 울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집 없는 사람들의 절망감을 보여준 때문이었다. 20, 30대는 자기가 벌어서 아파트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이 틀리지 않은 까닭에, 젊은이들의 꿈이 건물주가 되어버린 현실이 나타났다. 정부 인사와 호황업종의 대기업 인사가 나눈 대화도 호재를 찾기 어려웠다. “내년엔 얼마나…” “나빠지진 않겠지만 최근의 성장세는 아니에요.” 구심점 찾기도 힘들어 하던 야권도 이때만은 정색을 하고 청와대의 권한 집중과, 여권의 부재를 지적했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모든 것이 청와대에 의해 이뤄진다면서 ‘청와대 정부’란 유행어를 소개했다. 위기감이 커진 여당은 청와대의 경제정책 방향에 대해 설명을 듣는 자리를 마련했다. 그리고는 국민들이 생각하는 체감도와 너무 다른 이야기들이 나온다며, 정말 청와대 말이 맞다면 잘 알려 그 체감의 차이를 줄여 달라고 주문했다.

그런 한달 뒤 모든 게 변해버렸다. 주문이 걸리기라도 한 듯 여론의 불안감이 사라지고 아우성도 작아져 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조선업종 구조조정 현장인 거제도의 실업급여는 전년보다 50% 이상 올라가 있고, 자동차 구조조정이 겹친 군산에서는 사람들이 떠나면서 인구 27만명선 붕괴 위기에 처한 현실은 여전하다. 서울의 아파트 평균 가격은 7억원을 넘어 8억원에 근접하면서 살인적인 가격을 자랑했던 도쿄마저 앞지르고 있다. 2017년 도쿄의 아파트 가격은 평균 5, 000만엔, 우리 돈으로 5억원이 조금 넘는다고 한다.

정말 바뀐 것은 현실이 아니라 위기감인 것 같다. 이해찬 민주당 대표는 사흘 전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경제가 잘 돌아간다는 얘기를 제가 지금까지 공직 생활하면서 들어본 적이 거의 없다"고 했다. 경제문제가 어렵다는 뜻이지만, 이전의 위기감은 보이지 않는다. 한 달여 전 그가 첫 고위 당정청 회의를 할 때는 “민생경제를 책임지겠습니다”라는 백드롭을 걸었다. 2년 전 촛불정국 초기에 정치권이 민심을 따라가는데 벅차했다. 주말에 촛불 민심이 탄핵을 가리키면 정치권은 미적대며 정국 주도권을 놓쳤고, 그러면 다시 주말에 촛불시위가 이를 되살려내는 살얼음판 국면이 반복됐다. 한달 가까이 그런 시간을 보낸 뒤 마침내 탄핵정국이 본격화할 수 있었다. 이와 달리 민심 읽기에 실패한 적도 없지 않다. 2002년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이들 중 41%가 5년 뒤에 보수 후보 지지로 이동했다. 자신을 진보적이라고 생각한 유권자 가운데 보수 후보를 지지한 비율은 42%로 이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어났다. 보수 후보에게 자신의 진보적 가치관을 유지하는데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본 이유는, 경제에서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는 필요가 더 커 보였기 때문이다.

이태규 뉴스1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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