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1>산시성 치커우고진 ①리자산촌(李家山村)

※[최종명의 차이나는 발품 기행]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최종명은 2005년부터 중국 400여 도시를 여행한 중국문화여행 작가입니다. 명나라의 지리여행학자 서하객처럼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숨겨진 역사와 문화, 사람사는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일종의 중국 유람잡기이자 문화유산답사기입니다.

산비탈에 동굴집이 층층이 들어선 산시성 리자산촌. 관광객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중국 화가 우관중이 극찬한 산시성 리자산촌의 동굴집 야오둥.

아주 오래된 마을을 고진(古鎭)이라 부른다. 중국에는 넓은 영토만큼 고진이 셀 수 없이 많다. 산촌이기도 하고 수향(水鄕)이기도 하다. 천년 세월을 버티며 살아온 흔적, 인정이 넘치는 마을이다. 오지일수록 고달픈 발품이지만, 여행의 맛은 깊다. 아름다운 풍광과 어울리는 가옥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반갑게 인사하는 동네다. 도시 생활을 벗어나 여유를 느끼기 좋아 점점 관광지로 변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때묻지 않은 마을이 대륙 곳곳에 살아 있다. 깊이 숨었기에 더 멋진 마을, 치커우고진(磧口古鎭)을 찾는 길도 평탄하지는 않다.

뤼량 터미널에서 치커우고진 가는 길에는 공사 구간이 많다.

치커우는 산시성 중서부 뤼량(吕梁)에서 북쪽으로 약 60km 떨어진 마을이다. 버스는 2시간마다 출발한다. 게다가 비포장도로와 공사 구간이 많다고 하니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터미널 부근에서 배낭을 들고 어슬렁거리면 언제나 눈을 마주치며 달려오는 차량이 있다. 덜컹거리는 고물차지만 공사 중인 도로를 잘도 빠져나간다. 1시간 만에 치커우에 도착했다. 다시 산길을 10여분 더 가파르게 오르면 첫 목적지인 리자산촌(李家山村)이다.

리자산촌의 대략 위치. 구글맵☞https://goo.gl/maps/baFTs73c1oS2
◇당대 화가가 극찬한 황토고원의 동굴집

마을로 들어서니 황토 동굴집인 야오둥(窯洞)이 펼쳐진다. 아담한 산자락에 동굴을 파고 살아온 지 600년이 넘는다. 명나라 시대인 15세기 중반에 처음 거주한 집성촌이다. 70도 경사의 산비탈에 층층이 이어진 가옥 구조가 독특하다. 지붕 바로 위가 집 마당이다. 줄줄이 11층 높이까지 있어 ‘동굴빌딩(窯洞大厦)’이라 부른다. 우기에는 산사태가 나기 쉬운 땅이라 돌로 배수구나 벽을 치장한다. 지붕과 문은 기와와 벽돌로 쌓는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포근하다. 기본 골격이 흙이니 짓는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듯하다.

지붕이 마당인 ‘동굴빌딩’ 구조의 리자산촌 가옥

런던 대영박물관과 파리 세르누치박물관에서 전시를 한 수묵화의 대가 우관중(1919-2010). 중국 전역을 유람하며 평생 자연을 담은 그가 가장 좋아했고 화폭에 담은 ‘3곳의 발견(三大發現)’ 장소가 있다. 장가계(張家界), 강남수향(江南水鄕), 황토고원(黄土高原)이다. 황토고원 중에서도 리자산촌 스케치는 일생일대 수작으로 꼽는다. 1989년 리자산촌을 찾은 우관중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도화원(桃花園)으로 세계 어디를 가도 찾기 힘든 건축물’이라는 극찬을 남기기도 했다. 사진작가나 화가가 자주 찾아와 지금은 숙박도 가능하다.

◇동굴빌딩 할아버지의 도인 같은 홀로살이
곰방대로 담배 피고 식사 준비를 하는 동굴집 할아버지.

능선을 오르락내리락, 한가하게 거닐다 대문도 없는 집으로 들어섰다. 곰방대를 문 할아버지는 무표정하지만 선한 눈매로 인사를 받아준다. 혼자 산다고 한마디 툭 던진다. 토항(土炕)과 할아버지, 할머니 초상화가 한눈에 보인다. 어두컴컴한 동굴에 나란히 걸려 있어서인지 살아생전 다정했던 부부의 온기가 전해진다. 수건과 우산, 호박과 전구가 어지러운 듯 하면서도 질서있다. 안방이자 주방이다. 담배 연기를 다 뿜어낸 할아버지는 느릿느릿 식사 준비를 한다. 방 구들에 앉아 재료를 썰더니 밖으로 나가 화로 아궁이를 연다. 물이 끓자 면을 넣고 삶는다. 오전 10시 30분에 아침이라니, 점심인가?

노부부의 초상화가 나란히 걸려 있는 동굴집 내부.
면을 삶기 위해 아궁이에 불을 피우는 할아버지.

마을은 돌길(石道)로 연결돼 있다. 엑스자(X) 형태로 조성된 길이다. 무너진 길을 보수하고 보금자리를 객잔으로 고치기도 한다. 나팔꽃이 누런 산촌을 산뜻한 색감으로 붓칠하고 있다. 처마 밑 전선에 앉은 새는 미동도 않고 지저귄다. 정면에서 보면 도시의 집과 다르지 않은데 위에서 내려다보면 입구만 보인다.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집 위로 나무와 풀이 자라나는 형상이다. 온 동네에 대추나무가 많다. 불쑥 강아지 한 마리가 혀를 내밀며 나타났다. 닭과 고양이, 강아지가 집주인의 동선을 주시하는 모습도 재밌다. 옥수수를 말리고 토마토도 붉은빛을 보이기 시작한다.

황토고원이지만 꽃도 피고 풀도 자란다. 마을은 돌길로 연결돼 있다.
산촌의 강아지, 닭, 고양이도 한가롭게 보인다.
대추나무 앞으로 불쑥 강아지가 나타나기도 한다.

◇수줍은 미소로 인심 한 봉지… 리자산촌 할머니

양지바른 마당에 말리려고 펴놓은 호두가 한가득이다. 아치형 문이 셋이다. 인기척을 듣고 가운데 문에서 할머니가 나온다. 호두를 사고 싶다고 표정 연기를 했다. 10위안(약 1,700원)어치 달라고 했더니 창고에서 일하던 아저씨가 비닐봉지에 담는다. 한주먹 정도면 좋겠다 싶었는데 배낭에 넣어야 할 정도로 많다. 게다가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가더니 대추 한 움큼을 담은 봉지를 들고 배낭을 열라고 한다.

마당에서 말리고 있는 호두를 담는 할머니. 벽에는 ‘출문견희’라는 덕담이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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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도 혼자 산다. 방을 구경할 수 있겠냐고 부탁하니 민망해하며 소녀마냥 조심스레 웃는다. 방문 옆 나무판자에 출문견희(出門見喜)가 덕담으로 붙었다. 외출할 때 언제나 좋은 일만 생기라는 뜻이다. 사람마다 기쁜 일이 다르겠지만 일반 중국인은 대체로 천강횡재(天降横財)를 말한다. 시골 구석에 오니 요즘 보기 드문 문구를 만나는 횡재도 한다.

할머니도 국수로 요기 중이다. ‘아점’ 시간에 중국인이 식사하는 모습은 아직 낯설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산골 할아버지, 할머니와는 깊은 대화가 어렵다. 귀를 세워 들어도 짐작조차 어렵다. 방안을 둘러보니 할아버지 동굴보다는 형편이 좀 낫다. 텔레비전, 세탁기, 장롱, 찬장도 있다. 무엇보다 가족사진 액자가 인상적이다. 흑백사진에는 인심 좋은 할머니 주위로 이웃, 아들과 손자, 며느리까지 다 있는데 할아버지가 없다. 혹시 바로 옆 젊은 모습의 흑백사진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갑자기 애잔함이 밀려온다.

동굴집에 앉아 식사를 하는 할머니.
할머니 집의 가족사진 액자.

장롱과 장롱 사이에 흥미로운 장면이 눈에 띈다. 중국인이 최고의 미덕으로 믿는 복록(福禄)이 있고 아래에 조상과 관련된 대련(對聯)이 있으니 신주를 두는 장소가 분명한데, 음료수 병에 양념 담는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으니 뜻밖이다. 오른쪽에 쓰인 보정정상향결채(寶鼎呈祥香結彩)와 왼쪽 은대보희촉생화(銀臺報喜燭生花)는 종사(宗祠)에 자주 등장한다. 여행 중에 만나는 낯선 물건이나 문구에 집착하면 이야기가 풍부해진다. 어렵사리 왔는데 하나라도 더 배우자는 집념이다.

조상 신주를 두던 공간을 양념 보관함으로 사용하는 할머니.

이제 네 글자가 남았다. 어조사 지(之)가 사이에 딱 자리 잡았다. ‘사격하는 신’인가, ‘신의 격사’인가? 상련과 하련으로 이뤄지는 대련 위치를 보면 답이 쉽다. 어떤 특별한 신을 지칭하지 않고 신지격사(神之格思)로 읽는다. ‘보통 사람이 도저히 도달하기 힘들게 뛰어난 사상과 높은 경지에 이른 인물’을 상징한다. 재물신인 관우나 도교 전진파(全真派)의 조사인 여동빈 정도는 돼야 오를 수 있는 경지다. 중국인의 마음이나 생활에 도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히 높다. 사실 일상 자체가 도교적이다.

할머니 집을 나와 산길을 걷다가 상점이자 객잔을 둘러본다. 이미 동굴집을 개조한 숙박 시설이 여섯이나 된다. 화가나 작가뿐 아니라 일반 여행객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여행객들이 지붕 위에 빼곡하게 서서 마을을 조망한다. 우관중이 불러온 사람들이다. 1박을 하며 산촌을 여유롭게 즐길 요량이었는데, 한적한 산촌이 약간 시끄러울 판이다.

할머니 집 앞마당에서 내다보는 풍경.
리자산촌의 객잔이자 상점.

산길 10리를 어떻게 걸어가나 고민하고 있는데 어떤 부부가 혹시 한국사람이냐고 묻는다. 혼자 여행을 다니면 간혹 전생에 옆집에 살았음직한 중국 친구를 만나게 된다. 그들 부부도 여행객이다. 가오보(高波) 선생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편하게 산을 내려간다. 다음날까지 그 부부와 일정을 함께 했다. 산골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오전에 밥을 먹는 이유도 알게 됐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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