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 11월 개통된 압록강 제1철교는 30여년 동북아시아 철도네트워크의 핵심 고리로서, 평시 여객과 화물은 물론 전시(시베리아출병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 병력과 병참을 수송하여, 일본세력을 대륙으로 확장시키는 지렛대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1930년대 이후 한국과 만주의 산업개발, 침략전쟁의 확대 등으로 일본-한국-만주-중국의 교통운수가 폭증하자 제1철교를 비롯한 단선철도는 심각한 체증을 빚었다. 이에 일제는 일관신속수송을 실현하기 위해 1937년부터 봉천-부산 철도를 복선으로 개량하는 공사를 시작하여 1943년까지 일단 완공했다.

압록강 제2철교는 한만연락간선철도 복선화공정의 일환으로 1936년 착공하여 1943년 5월 15일 개통되었다. 제1철교에서 70m 상류지점에 위치한 제2철교는 전장 943.3m로서, 잠함공법으로 세운 교각에 경간(徑間) 94m와 62m 교형(트러스)을 여러 개 조합하여 설치하고, 수심 깊은 곳에는 압연강철재로 지탱하는 조교(弔橋)를 가설했다. 제2철교는 도로를 겸비한 복선철교로서 개폐형이 아닌 고정형이었다. 조선총독부는 여러 제국대학의 교량학 권위자로부터 특별 자문을 받아, 강철을 최대한 절약하면서도 폭격에 잘 견디고 신속하게 복구할 수 있는 고도의 내탄구조(耐彈構造)를 갖춘 다리를 건설했다. 제2철교 개통 후 제1철교는 평시 인도교로, 비상시 철도교로 사용되었다.

제2철교는 아시아ㆍ태평양전쟁 중 한반도와 대륙을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국제철교로 기능했다. 전쟁 막바지에 미군의 공격으로 이른바 ‘대동아공영권’의 해상교통이 마비 상태에 빠지자, 일제는 대륙-본토의 ‘비상결전수송’을 한반도종관철도에 전가시키는 정책을 강력히 추진했다. 미군의 폭격에서 벗어난 제2철교는 일제 패망까지 일-한-만-중의 교통을 지탱한 일등공신이었다.

해방 이후 제2철교는 새 역할로 각광을 받았다. 6ㆍ25전쟁 때 중국이 제2철교를 통해 방대한 군인과 물자를 북한에 투입하여 지원했기 때문이다. 제2철교는 내탄구조 덕택에 연합군의 폭격에 부분적으로 손상을 입으면서 신속하게 보수되어 북한의 생명줄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 6ㆍ25전쟁 이후 북경-평양에 국제열차운행이 재개되었다. 북한에 수십만 중국군이 주둔한 데다가, 중국이 북한 부흥을 지원했으므로 제2철교는 여전히 바빴다. 제2철교는 북-중 대동맥의 공로를 인정받아, 1990년 ‘조중우의대교(朝中友誼大橋)’라는 거창한 칭호를 받았다. 지금도 제2철교는 북-중 무역의 7할 이상을 실어 나른다. 2012년까지 주 4편이던 평양-북경 열차운행 횟수도 2013년부터 매일 운행으로 증편되었다.

70여년 북-중 메인루트였던 제2철교는 심하게 낡은 데다가 수송력에 한계를 지녀, 북한과 중국은 2010년 12월 그 12㎞ 하류에 ‘신압록강대교’ 건설을 시작했다. 단둥과 신의주의 남부지역을 잇는 ‘신대교’는 길이 3㎞가량인데, 접근도로를 포함하면 20㎞나 되고, 끝은 용천에 이른다. 용천은 2004년 4월 열차폭발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작업원의 조작 실수로 초산암모니움과 석유를 실은 열차가 서로 충돌하여 화재가 발생하고 열차가 폭발했다. 그 수 시간 전에 김정일이 탄 열차가 용천을 통과하여 테러라는 소문도 나돌았다. 161명 사망, 1,300명(일설에는 3,000명) 이상 중경상을 입은 최근 철도사고 사상 최대급이었다.

‘신대교’ 총공사비 3,500억원은 중국이 부담했다. ‘신대교’는 중국 대련-단둥 고속도로와 접속하고, 1일 2만대 차량 왕복이 가능하다. 제2철교 도로의 자동차 통행이 1일 최대 500대이므로 현재보다 40배 이상의 수송력을 지닌다. 중국은 2014년 10월 ‘신대교’ 본체와 접근도로를 완성했다. 북한은 2016년 7월 접근도로 건설을 착공하면서 중국에 지원을 요청했다가 거절당하자 공사를 중지했다.

압록강 국제철교는 사람 물자 외화 정보의 유통을 촉진한다. 당연히 개혁ㆍ개방의 공기도 스며든다. 중국 덩샤오핑은 ‘창을 열면 더러운 공기와 함께 모기와 파리도 들어오지만 신선한 공기도 들어온다’고 말했다. 북한이 정말로 ‘신선한 공기’를 더 많이 마시고 싶다면 먼저 끊어진 제1철교를 다시 연결하고 중단된 ‘신대교’ 공사를 재개하라고 권하고 싶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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