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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무관심에 겉도는'금융질서 문란자'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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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국 무관심에 겉도는'금융질서 문란자' 제도

입력
2018.10.10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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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용카드ㆍ통장 발급 정지 등 

 금융범죄자에 최장 12년 족쇄 

 

 최근까지 120명 블랙리스트 불구 

 세부 분석 없어 범죄 유형 ‘깜깜’ 

 유죄 확정만 등록해 효과도 의문 

금융질서문란자. 신동준 기자
금융질서문란자. 신동준 기자

정부가 금융범죄자에 최장 12년간 금융거래를 제한하는 금융질서문란자 제도를 도입한 지 3년 만에 120명이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형사 처벌과 별개로 본인 명의의 통장 발급을 비롯해 각종 금융거래가 중단되는 제재를 받는다. 금융범죄자를 엄벌해 경각심을 일깨운다는 취지인데 정작 현장에선 금융당국의 무관심으로 제도가 겉돈다는 지적이 나온다.

9일 한국일보가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3월 제도 시행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금융질서문란자로 등록된 사람은 120명으로 집계됐다. 금융사가 통장매매, 대출사기 등 범법행위자 관련 정보를 금융정보 집중기관인 한국신용정보원에 등록하는데, 통상 관련 범행으로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이 대상이다. 문란자로 등록되면 금융권에 관련 정보가 공유돼 길게는 12년 동안 통장 개설, 신용카드 발급, 대출 등 모든 금융거래가 막힌다. 개인 연체 정보가 신용정보원에 길어야 1년 남짓 보관되는 것과 견주면 제재 수위가 높다.

문제는 금융질서문란자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범행을 저질렀는지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제도 시행 근거인 개정 신용정보법에 따라 금융회사는 대출 사기, 보험 사기, 통장 매매, 신용카드 도용 등 10가지 분류 기준에 따라 문란자를 등록하는데, 이러한 분류 이상의 구체적 범행 관련 정보를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나 정보관리기관인 신용정보원 모두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예컨대 등록자 120명 중 58명을 차지하는 ‘위변조ㆍ허위자료 제출’은 대부분 허위 보이스피싱 신고일 것으로 추정하는 수준이다. 이는 피해자 계좌에 소액을 입금한 뒤 당국에 보이스피싱 피해를 당했다고 허위 신고해 계좌를 동결한 뒤 이를 풀어주는 조건으로 돈을 요구하는 범죄 행위다. 등록자 명단을 공유하는 금융사들도 자세한 이유를 모른 채 제재를 가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 기관은 “아직 사례가 적어 분석 작업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알맹이 없는 정보로는 금융범죄에 대한 경각심을 깨우고 예방에 기여한다는 제도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도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된다. 지난해 보험사기로 적발된 사람은 8만3,000명으로 역대 최대치였지만 정작 이 가운데 금융사기문란자로 등록된 이는 2명에 불과하다. 당국이 등록 남발에 따른 부작용을 막기 위해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경우에 한해 문란자로 등록하도록 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제도가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운영된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다. 정부 관계자는 “범행 이후 유죄 확정까지 시차가 있다 보니 블랙리스트 등록에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했지만, 정작 등록 당사자인 금융사의 분위기는 다르다. 한 시중은행 소비자담당 팀장은 “금융사가 직접 관련된 게 아니라면 굳이 법원 판결을 기다렸다가 거센 민원을 각오하며 해당 고객을 문란자로 등록할 유인이 전혀 없다”며 “다른 금융사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등록을 금융사 자율에 맡기다 보니 제도 집행 과정에서 형평성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금융사 재량에 따라 ‘12년 족쇄’ 적용 여부가 갈리기 때문이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지난해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러한 지적을 받고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정부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금융위 관계자는 “등록을 원활히 하는 방법을 비롯해 등록 유형 등 제도 전반에 대해 현재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김병욱 의원은 “정부가 제도만 발표하고 지금까지 제도 효과 검증을 한 번도 하지 않은 건 직무유기에 가까운 문제”라고 지적했다.

김동욱 기자 kdw128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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