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갓집, 시장, 맥줏집과 시위 현장. 여기에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외롭고 힘들고 지루하고 슬프다. 하지만 다른 곳에는 그저 적당한 사람만 있으면 된다. 인기가 좋다고 너무 많은 사람이 오면 원래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서울시립과학관도 마찬가지다. 너무 많은 사람이 오지는 않기를 바란다. 어디에나 적정 인원이라는 게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인기 좋고 사람이 많은 곳은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한다. 하지만 때로는 억지로 끌려갈 때도 있다.

마추픽추도 그런 곳 가운데 하나다. 세계문화유산이자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곳이다. 애초에 왕족의 휴가지로 건설된 작은 도시다. 10년 전에는 하루에 700명이 방문했는데 교통이 발달하면서 이제는 하루에 1만 명도 오르는 곳이 되었다. 당연히 내가 피하고 싶은 곳이다. 게다가 전날 하루 종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다. 심드렁하게 산에 올랐다. “에이 뭐, 유명한 곳이 다 그렇겠지. 뭐가 있겠어.”

마추픽추에 올랐다. 그리고 흐린 날씨가 개었다. 눈앞에 천길 높은 절벽과 함께 고대도시가 드러났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여기에 오는구나.” 사람이 많이 오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오만한 마음이 사라졌다. 부끄러웠다. 그리고 잉카 문명에 대한 경외감이 다시 솟았다.

궁금했다. “이런 절벽 위에 어떻게 거대한 도시를 지을 수 있었을까?” 마추픽추가 세워진 데는 필요한 세 요소를 모두 갖추었기 때문이다. 안전, 물 그리고 돌이다. 밀림 속 가파른 절벽은 안전을 보장했다. 게다가 그 산에는 먹고 살 물과 건물과 계단식 밭을 건설하기에 충분한 돌이 있었다.

사실 아름다운 풍경을 제외하면 마추픽추는 다른 잉카 유적에 비하면 별 것 아니다. 높이부터 그렇다. 내가 마추픽추에 간다고 하니까 고산병을 조심하라는 조언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이번에 내가 가본 잉카 유적 가운데 마추픽추보다 낮은 곳은 하나도 없었다. 마추픽추는 잉카 제국의 수도인 쿠스코보다 무려 1,000미터나 낮은 도시다. 겨우 해발 2400미터에 불과하다. 쿠스코에 있다가 마추픽추에 가니까 오히려 숨쉬기가 편했다.

그리고 마추픽추는 거대한 도시가 아니다. 겨우 200호의 돌집이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에 비해 쿠스코 그리고 마추픽추 행 기차를 타는 오얀따이깜보의 규모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이곳을 건설하는 데 쓰인 거대한 암석들은 모두 6~7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에서 가져왔다. 더 놀라운 것은 돌을 거의 직육면체로 잘라서 접착제를 이용해 평평하게 쌓아 올리는 다른 문명과 달리 돌을 3~12각형뿐만 아니라 곡선으로 다듬어 접착제도 없이 돌과 돌이 꼭 들어맞게 쌓았다는 것이다. 돌을 얼마나 정교하게 쌓았는지 종이 한 장, 바늘 하나 들어갈 틈이 없다는 방송 프로그램의 묘사는 그저 허풍 좋아하는 세상 사람들의 과장이 아니다. 정말 그렇다. 틈이 없다.

당연히 질문이 떠오른다. 그 커다란 돌을 어떻게 수 킬로미터나 떨어진 먼 곳으로 옮겼을까? 그리고 어떻게 그렇게 정교하게 다듬었을까? 잉카인들은 철기도구와 바퀴 달린 수레를 사용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바퀴를 발명하지 못했다는 뜻은 아니다.)

질문은 대답을 요구한다. 여기에는 무수한 이론이 있다. 이론이 많다는 것은 쓸 만한 게 별로 없다는 것과 같다. 내가 앓고 있는 각막미란의 치료법도 무수히 많다. 그 가운데 믿고 사용할 한 가지가 없다는 게 문제다.

가장 널리 퍼진 이론은 이집트 사람들이 피라미드를 건설할 때처럼 통나무를 연이어 바닥에 깔고서 돌을 그 위에서 밀고 당겼다는 것이다. 또 모래와 물로 돌을 정교하게 다듬어서 큰 돌의 경우 보통 8개 이상의 돌과 맞물려 다양한 각을 이루게 했다고 한다. 내가 읽은 블로그뿐만 아니라 현지 가이드들도 모두 같은 이야기를 했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만날 때 즐겁다. 쿠스코 체류 7일째에 만난 디에고 같은 친구 말이다. 디에고는 인터넷에서 유명한 현지 가이드다. 그를 찾아가 반나절을 같이 걸으면서 설명을 들었다. 그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이집트는 평지여서 통나무 위에 거대한 돌을 올려놓고 옮길 수 있겠지만 1000미터에 달하는 계곡으로 둘러싸인 쿠스코에서는 애당초 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 어느 세월에 모래와 물로 돌을 그렇게 정교하게 다듬었겠냐고 반문했다.

“모른다!” 그렇다면 네 생각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가 거침없이 대답했다. 통나무 이론을 믿느니 차라리 외계인 건설 이론을 믿겠다고 했다. 팁으로 살아가는 가이드가 모른다라고 대답하는 일은 쉽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본업은 밀림에서 동물을 연구하는 생물학자였다.

고생물학자 토마스 홀츠의 말마따나 과학에서는 ‘모른다’가 때로는 제일 좋은 답이다. 과학에서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모른다’라는 말을 거침없이 하는 사람을 믿는 게 가장 안전하다. 짐작은 얼마든지 하되 대답은 모른다고 하자.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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