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그래피티 작가 키스 해링이 그려 기증한 '내셔널커밍아웃데이' 캠페인 포스터.

10월 11일은 ‘성소수자 커밍아웃의 날(National Coming Out Day)’이다. 미국 뉴멕시코 출신 심리학자겸 게이 인권운동가 로버트 아이히버그(Robert Eichbergㆍ1945~1995)와 가톨릭 수녀였다가 72년 ‘레즈비언 페미니스트 해방’이란 인권단체를 창립한 진 오리어리(Jean O’Learyㆍ1948~2005)가 1988년 선언적으로 시작한 운동에서 비롯됐다.

아이히버그가 1978년 시작한 ‘Experience’라는 지역 토론회가 시작이었다. 그는 동성애자의 가시성, 즉 게이로서의 성 정체성을 가족과 친구, 직장 동료들에게 알림으로써 호모포비아를 적극적으로 극복하고자 했다. 그는 “자기가 아는 이들 중에 동성애자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알고 보면 모두가 동성애자를 안다. 이제 그들에게 우리가 누구인지 알려 그들이 지닌 공포와 편견을 바로잡아 줘야 할 때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들은 한 해 전인 87년 10월 11일 50여만명이 참여해 벌인 워싱턴 D.C. LGBT 행진에 고무돼 저 운동을 전국화했다. 캘리포니아 웨스트할리우드에서 시작된 운동은 첫해 미국 18개 주에서 행사를 가졌고, 여론이 확산되면서 인권운동 단체들의 호응 속에 90년 미국 전역과 유럽 여러 나라로 번졌다.

80년대는 AIDS 공포가 확산되던 때였다. 게이 커뮤니티는 위축됐고, 권익운동도 상대적으로 약화했다. 보수 종교단체를 주축으로 한 반발과 광적인 공포증도 덩달아 퍼져 갔다. 그 퇴행에 대한 분노가 87년의 행진으로 나타났다. 마이클 스위프트라는 이름의 한 동성애자가 지역 게이 잡지에 “우리는 당신들의 아들들과 항문 성교(sodomize)를 할 것이다”란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 ‘동성애자 선언(The Gay Menifesto)’을 발표한 건 87년 2월이었다. 1729년, 영국의 아일랜드 착취와 빈곤ㆍ기아의 방치에 분노해 “아일랜드 빈민층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나 국가에 부담이 되는 것을 예방하고, 그들을 공공사회에 유익한 존재로 만들기 위해”서는 “겨울에 아기를 갈라 소금에 절여 눈 속에 재웠다가 후추를 뿌려 먹으면 최고의 진미”여서 “그렇게 하면 아일랜드 빈민들의 식량문제가 해결되고 그와 동시에 아일랜드 놈들을 죽이고 싶어하는 영국의 문제도 해결 된다”고 썼던 조너선 스위프트의 풍자 에세이 ‘겸손한 제안(A Modest Proposal)’을 패러디한 글이었다.

이제 커밍아웃데이를 비판하는 이들은 진영 안에도 있다. 이성애 규범성(Heteronomative)에 반발한 ‘동성애규범성(Homonomative)’이 트랜스젠더 등 다른 성소수자와 인터섹슈얼 등 다양한 젠더를 주변화한다는 비판, 각자의 입장과 여건을 무시하고 커밍아웃을 절대적 선으로 강요한다는 비판, 이성애자들과 달리 동성애자만 커밍아웃을 하자는 건 역설적으로 스스로 ‘비정상’이라는 인식을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Rich) 같은 이들의 비판도 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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