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나뭇가지에 기대고 누어서 석양을 쳐다보며 느긋한 표정을 짓는 고독한 짐승, 그게 바로 살아 있는 표범이다. 최종욱 수의사 제공

숲속으로 들어가면 거의 보이지 않는 고리 같은 까만 점무늬에 나무 위로 자기 크기 만한 산양 한 마리를 턱 물고 올라가 조용히 큰 나뭇가지에 기대고 누어서 석양을 쳐다보며 느긋한 표정을 짓는 고독한 짐승, 그게 바로 살아 있는 표범이다. (표범 몸의 점무늬가 워낙 독특해서 장미나 매화꽃에 비유하기도 한다.)

표범은 사자, 호랑이 같은 대형 고양이과 동물과 집고양이나 오실롯(ocelot) 같은 소형 고양이과 동물의 중간 정도 크기(50~90kg)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소나 멧돼지같이 크거나 사납고 힘센 동물들 대신 주로 만만한 사슴이나 영양, 작은 토끼, 너구리, 원숭이 같은 중소형 포유류들을 사냥한다.

사냥한 먹이는 무조건 나무 위로 끌고 올라가서 걸쳐 놓은 후 느긋하게 여유를 즐기며 먹는다. 그렇지 않으면 사자나 하이에나 그리고 곰에게 바로 빼앗기기가 쉽다. 보통 50㎏ 정도 되는 무거운 먹이도 4~6m 높이의 나뭇가지까지 입으로 들어 올릴 수 있다.

나무 위에 살아 천적이 거의 없는 원숭이들이 특히 표범을 두려워한다. 나무 위로 도망쳐도 그 높은 곳까지 쫓아가서 사냥을 해버리기 때문이다. 워낙 몸이 가볍고 유연해서 하늘에서 덮치고 소리 없이 다가가는 통에 그 재빠른 원숭이들도 소리 한번 못 지르고 당하게 되는 것이다. 마치 인간의 스나이퍼(저격수) 같은 소리 없는 공격을, 그것도 어둠을 틈타서 해댄다. 아마도 그들은 일본 전국시대의 암살 집단인 닌자들과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동물원에서는 자주 볼 수 있을 뿐, 실제로 표범은 멸종 위기 종이다. 최종욱 수의사 제공

표범을 포함한 사자, 호랑이, 재규어, 퓨마 같은 대형 고양이과 맹수들은 동물원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으니 마치 멸종 위기 동물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표범은 실제 야생에선 인도(벵골), 아프리카 표범을 제외한 거의 모든 아종이 멸종 위기다. 한국 표범인 아무르 표범도 100마리도 채 남지 않은 멸종 위기 1급인 위기의 동물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동물원에서 워낙 조용히 살아 관심조차 받지 않는 표범이 무슨 멸종 위기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고양이과 맹수 동물들이 동물원에 많은 것은 개체 수가 많아서가 아니라 인기가 많아서다. 동물들을 소수 번식시켜 동물원들끼리 교환·분양해 한두 마리씩만 전시하는 등 동물원의 명맥이라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현대의 동물원을 멸종 위기 동물들의 마지막 ‘노아의 방주’라고 합리화시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건 병 주고 약 주는 것과 비슷한 거다.

그런데 사람이 우유 먹여 키우고 돌봐서 길들인 표범들을 과연 진정한 표범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무늬만 표범인 그들이 정식 표범이 되려면 야생에 나가기 전에 지독한 생존 훈련을 거쳐야 하고, 야생에 나가서도 일 년 정도 여러 번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고 마침내 살아남았을 때 비로소 그들을 야생 표범이라고 부를 수는 있을지 모른다.

한창 숲이며 정글이며 자연을 개간했던 20세기 초, 표범은 용맹스러운 사냥꾼들이 정의를 위해 타도할 사냥 대상이 되었고, 그야말로 대량으로 멸종을 당해야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하지만 야생에서는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온다. 야생의 표범은 솔직히 말해서 인간들에게 엄청나게 무서운 존재들이다. 실제로 정면에서 사람을 공격하는 커다란 호랑이나 사자보다, 은밀한 곳에 숨어있다 불쑥 나타나 날렵하게 움직이는 표범이 사람을 더 많이 해쳐왔다고 한다. 1910년 아프리카에선 무려 400명의 인명을 해친 살인 표범이 잡히기도 했다.

그래서 철도 등을 놓기 위해 한창 숲이며 정글이며 자연을 개간했던 20세기 초, 표범은 용맹스러운 사냥꾼들이 정의를 위해 타도할 사냥 대상이 되었고, 그야말로 대량으로 멸종을 당해야 했다. 그들 맹수 사냥꾼들은 세계 어디서든 영웅으로 추앙받고 금전적인 보상까지 두둑하게 받았다. 맹수라는 이유로 호랑이와 표범 덩달아 그들 주변에 사는 곰과 늑대와 여우까지 모두 씨가 말려 버렸다.

일제 강점기의 한반도도 표범의 대표적인 사냥터가 된 곳이라 할 수 있다. 한국 표범은 경남지방에서 잡힌 1973년 7월 창경원의 표범을 마지막으로 완전히 자취가 사라졌다가 최근에 발자국이나 실체를 봤다는 목격담들이 꽤 많이 나오고 있다. 아마도 일제 때의 대량 학살과 6.25 전쟁을 피해 깊은 산중에 은신한 극소수의 표범 자손들이 살아남아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수군수군 하지만 아직은 촬영이라든지 뚜렷하고 확실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만일 살아남아있다면 차라리 인간들에게 존재 자체를 발각되지 않고 사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 마음대로 산을 휘젓고 다니면서 약초를 채취하고 운동도 해야 하는데, 표범이 살아있다면 사람이 활동하기에 엄청 곤란해질 것이다. 그러면 표범을 잡아달라는 민원이 빗발칠 것이고, 최근 탈출한 퓨마와 같은 과정을 밟을 것이다.

표범이 죽어라 숨어서라도 한 쌍이라도 지구상에 끝까지 살아 있기를 바란다. 픽사베이

이런 역사에서 보듯 표범의 멸종은 인간들이 자연마저 자기들 마음대로 분할하고 차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사실 표범뿐만이 아니다. 현재 지구상 주요 동식물 멸종의 90%는 천적도 기후변화도 아닌 오직 인간의 사냥과 자연 파괴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표범이 죽어라 숨어서라도 한 쌍이라도 지구상에 끝까지 살아 있기를 바란다. 유구한 지구는 동족을 함부로 대하거나 다른 종들을 마구 짓밟는 예의 없는 동물 종에게 지배할 기회를 오래 주지 않았다. 그것이 수억 년의 지구 역사를 지탱해온 힘이고 질서이자 진리이니까.

최종욱 수의사

(광주 우치동물원 수의사,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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